오늘은 '지구의 날'…'어스데이, 버스데이' 4월 22일의 비밀

강찬수 2023. 4.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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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지구의 날을 앞두고 지난 1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샤우 저수지의 갈라진 땅에 잡초가 자랐다.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일부 지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22일은 '지구의 날' 제53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1970년 미국에서 처음 열렸던 '지구의 날' 행사를 기억하면서, 위기를 맞은 지구 환경과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날이다.

올해 지구의 날을 54회라고 하지 않고 53주년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 행사가 이뤄진 다음 행사가 해마다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의 날 행사는 미국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과 25세의 하버드대 법대생 데니스 헤이스의 주도로 마련됐다.
1970년 첫 지구의 날 행사에는 2000만 명의 미국인이 참가했고, 토론회·강연회·집회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대규모 환경 행사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미국은 대기오염·수질오염·해양오염·쓰레기 문제 등 환경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기 때문이다.


환경오염 심각했던 미국에서 시작


지난해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집회에서 활동가들이 행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에서는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 1962년에 출판되면서 살충제와 화학약품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됐다.

1969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바바라 해안에서는 석유시추선 폭발로 기름 누출 사고가 발생해 1만 마리 이상의 바닷새와 돌고래·물개·바다사자가 죽었다.

1969년 초에는 기름으로 오염된 쿠야호가 강(Cuyahoga River)의 강물이 불타는 장면이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이런 오염 사고로 인해 일반 시민들도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었고 위기의식이 고조된 상황이었다.
환경단체들도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강력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던 때였다.

이에 넬슨 상원의원은 환경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헤이스와 만나 지구의 날 캠페인을 추진하기로 했다.

1970년 4월 22일은 수요일, 주말도 아니었는데 이날을 행사 날짜로 정한 것은 행사 준비를 도왔던 줄리언 쾨닉의 생일이 4월 22일이었던 게 컸다.
또, '생태의 날', '환경의 날', '지구의 날' 등 여러 명칭 중에서 '지구의 날'로 정한 것도 쾨닉이었는데, '생일(Birthday)'와 '지구의 날(Earth day)'가 운율이 맞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쾨닉은 나중에 유명한 카피라이터(광고 문안을 작성자)가 됐다.

지난해 4월 22일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지구의 날 행사장에서 '멸종 저항' 조직원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수압파쇄법 석유 채굴 시범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1970년 지구의 날 행사는 이후 미국 내에서 대기정화법( Clean Air Act), 수질 정화법(Clean Water Act), 멸종위기종법(Endangered Species Act), 해양 포유동물보호법( Marine Mammal Protection Act), 슈퍼펀드(Superfund Act), 독성물질규제법(Toxics Substances Control Act) 등 환경법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후 지구의 날 행사는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고, 10주년인 1980년에도 행사가 열렸지만 작은 규모로 치러졌다.


1990년에 세계적 행사로 부활


인도 학생들이 지난해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암리차르의 한 학교에 모여 환경을 주제로 그린 그림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20주년인 1990년을 맞아 지구의 날은 전 세계에서 큰 행사로 부활했다.
헤이스가 구성한 '지구의 날 1990'과 에드워드 퓨리어가 주도한 '지구의 날 20 재단(Earth Day 20 Foundation)'이 경쟁적으로 행사를 추진했다.

행사가 커진 것은 기후변화 문제나 오존층 파괴, 생물 다양성 문제, 사막화 문제 등 지구환경 문제가 심각해진 탓도 컸다.
당시 행사에는 141개국 2억 명의 사람이 참여했다.

이 행사는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 지구 정상회의를 위한 길을 닦았던 것으로 평가됐다.
최근에는 지구의 날 행사에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도 1990년부터 매년 개최


2001년 지구의 날 행사로 4월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16차로)에서 `차없는 거리` 행사가 열렸다. 중앙포토
한국에서도 1990년 서울 남산에서 첫 지구의 날 행사를 가졌다.

이에 앞서 미국 '지구의 날 1990' 행사 주최 측은 1989년 12월과 1990년 2월 두 차례 행사 참여 제안서를 보내왔고, 당시 공해추방운동연합 측에서도 이에 호응해 담당자를 미국에 파견해 협의했다.

1990년 지구의 날 행사 리플렛.

마침내 1990년 지구의 날 행사는 공해추방운동연합과 대한 YMCA 연맹, 대한 YWCA 연맹,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한살림모임 등이 주최했고, 여기에 50여 개 시민·환경·종교단체가 참여했다.

이후 시민·환경단체는 매년 서울의 어린이대공원, 대학로, 세종로 등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행사를 개최했다.

국내 환경 운동 단체는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와 1992년 리우 환경회의 등을 거치면서 크게 성장했는데, 그 출발점은 지구의 날 행사였다.
1993년 4월에는 환경운동연합이, 1994년 1월에는 배달녹색연합(현 녹색연합)도 탄생했다.


2009년부터 '기후변화 주간' 행사


지난해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이벤트광장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 위해 열린 '고 네이키드, 노 플라스틱' 캠페인에서 시민 활동가들이 일상에서 배출되는 식품 포장재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캠페인은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 러쉬코리아, 런데이 공동으로 진행됐다. 연합뉴스
중앙일보는 2008년 연초부터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절약을 강조한 캠페인인 'Save Earth, Save Us'를 집중적으로 진행했고, 정부 부처와 사회단체, 기업 등에서도 동참했다.

2008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광복절 기념식에서 '저탄소 녹색성장' 추진을 선언했다.

중앙일보 'Save Earth Save Us' 캠페인 로고

이명박 정부는 2009년 4월 지구의 날에 즈음해 '기후변화 주간' 행사를 처음 열었고,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기후변화 주간 행사를 주도하고 있다.

행사 주도권이 민간단체에서 정부로 기울어진 데는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 이명박 정부와 환경단체가 강하게 충돌한 이후 진보 환경단체의 힘이 줄어든 탓도 있다.

환경부(환화진 장관)는 올해도 21일부터 27일까지 제15회 기후변화 주간을 운영한다.

2010년 지구의 날 세종로 소등 행사. 중앙포토

지구의 날 당일인 22일 밤에는 소등 행사가 진행된다.

세종·서울·과천 정부 청사와 전국 공공기관 건물의 조명은 물론, 숭례문·광안대교·수원화성 등 지역 상징물의 조명이 오후 8시부터 10분 동안 꺼진다.
삼성전자·넷마블·신한은행·우리은행·이마트·현대홈쇼핑·LG유플러스 등 민간기업도 소등 행사에 동참할 예정이다.


환경부 개발사업 '수수방관' 비판도


지난 10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4대강 보 활용 가뭄대책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환경부는 올해 공항 건설을 위한 흑산도 국립공원 구역 일부 해제에 동의했고, 설악산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설치하도록 허가하는 등 개발 사업에 환경부가 수수방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윤석열 대통령 정부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마련하면서 산업 부문의 감축 부담을 덜어주면 바람에 포집·저장 등 불확실한 부문의 감축 목표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4대강 보 물 그릇론(論)을 내세우며 문재인 정부의 금강·영산강 보 해체 결정을 뒤집으려는 움직임까지 보여 환경단체와 환경부가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생명의 강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환경부가 오랜 역사를 가진 지구의 날 행사를 주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부위원장은 "기후 위기, 생물 다양성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개발 2중대가 아닌 개발 1중대 역할을 자처하는 환경부는 반성해야 한다"면서 "환경부가 '백해무익'한 조직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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