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 몇장 찍고 버려진다…라쿤·미어캣, 결국 정부가 '임보'

정은혜 2023. 4.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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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에서 유기된 채 발견된 라쿤이 무사히 구조돼 충청남도 공주대 예산캠퍼스에 꾸려진 야생동물구조센터의 보금자리에서 쉬고 있다.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사는 두 초등학생 자녀의 엄마 김모(30대)씨는 지난해 7월 미어캣 3마리를 입양했다. 야생동물 카페에서 버려진 2마리와 개인이 분양한 1마리였다. 손바닥보다 작은 귀여운 새끼들을 분유를 먹이며 애지중지 키웠다. 그런데 몇 달 새 자란 미어캣이 김씨 자녀들을 물기 시작했다. 분뇨 냄새도 강아지보다 심했다. 결국 김씨는 8달 만에 미어캣을 다른 집에 입양보냈다. 그는 “SNS 등에서 사람들이 기르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생각보다 기르기가 까다로웠다. 더 알아보고 입양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구조돼도 안락사행…버려지면 죽는 외래 야생동물


올해 충청남도 예산에서 발견, 구조된 미어캣이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사료를 먹고 있다.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애완용 야생동물이 늘면서 정부가 관리에 나섰다. 김씨처럼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버리는 사례도 적지 않아서다. 환경부는 충남 공주대 예산캠퍼스에 예산 4억원을 들여 외래 야생동물 4종(라쿤·미어캣·여우·프레리독)을 관리할 임시 보호소를 만들었다. 지난 17일 문을 연 이 보호소는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한 야생동물 4종을 맡는다.

환경부는 올해 말에는 국립생태원에, 2025년 말에는 옛 장항제련소 부지에 보호 시설을 추가로 만들 계획이다. 4종 외에도 관리 대상을 추가해 1100여마리 야생동물을 보호할 수 있다. 별도 보호소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외래 야생동물은 한국 자연환경에 적응하기도 어렵고 생태계를 교란할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원과 제련소 부지에 만들 보호 시설에는 각각 40억원, 243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기존의 전국 지자체 야생동물구조센터는 토종 야생동물을 구조해 치료한 뒤 방사하는 게 목적이라 외래종은 안락사를 시킬 수 밖에 없었다. 서울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따르면 라쿤·미어캣 등 4종 외에도 고슴도치, 늑대거북, 앵무새, 뱀 등의 외래 야생동물 접수가 많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라쿤·미어캣·여우·프레리독을 관리하기 위해 충청남도 공주대 예산캠퍼스에 꾸려진 보호소.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파악 어려운 야생동물 수…구조 건수 매년 증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래 야생동물 숫자는 정확한 통계를 내기 어렵다. 개인끼리 인터넷을 통해 분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유기 후 구조된 야생동물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가 최근 5년 간 구조한 야생동물 수는 2018년 1만1253건에서 2022년 2만161건으로 늘었다.(토종·외래 야생동물 포함) 연평균 16%씩 늘어나는 추세다.

동물권 단체 카라의 최인수 활동가는 “통상 동물 유기는 반려 유행 후 수년이 지난 뒤부터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며“외래 야생동물은 실내체험동물원·야생동물카페 등을 통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2017년도 이전에는 전국에 10여곳이던 실내체험동물원이 40곳 이상으로 급증했다”고 했다. 특히 SNS나 유튜브에서 야생동물 콘텐트가 인기를 끌면서 외래 야생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늘었다고 한다. 최 활동가는 “이런 콘텐트를 본 개인들이 주거 형태를 생각하지 않고 반려를 시도해 몇 년 전부터 문제가 됐다”고 지적했다.


법 강화됐지만…개인 사육은 '사각지대'


지난해 서울에서 구조된 라쿤 한 마리가 충청남도 공주대 예산캠퍼스에 꾸며진 시설에서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 제공]
야생동물에 관한 법은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동물원 및 수족관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물원 설립 절차가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다. 또 '야생 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도 함께 개정되면서 허가받은 동물원 이외에서는 야생동물을 전시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운영중인 야생동물 카페는 유예기간 내에 정리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갈 곳이 없어진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부가 보호 시설을 설치하게 된 것이다.

다만 개인이 키우는 야생동물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 법에 따라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된 동물을 키울 경우, 신고를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개인 양심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반려동물로 많이 키우는 라쿤은 2020년 생태계 위해 우려 생물로 지정됐기 때문에 신고 대상이다.

전문가들은 법률이 지정한 반려 동물 외엔 가능한 키우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인수 카라 활동가는 “공동 주택에 사는 개인은 사실상 야생동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형주 어웨어 대표는 “동물 복지에 대한 정부와 국민적 인식이 올라가고 있지만 여전히 이색동물을 유통·거래·사육하는 이들이 있다”며 “종 다양성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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