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량 논쟁보다 중요한 건 당장의 행동”

박상은 2023. 4. 22.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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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성 IPCC 의장은 최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글로벌 온실가스가 7% 줄고 전 세계 GDP는 3% 떨어졌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매년 줄여야 하는 감축량도 7%인데, 경제는 3% 플러스가 돼야 한다. 그만큼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말했다. 그는 1992년부터 IPCC에 참여해 2008년 부의장, 2015년 의장으로 선출됐다. 최현규 기자


“겁을 줘서 기후위기 문제를 풀 수 있다면 벌써 해결됐을 겁니다.”

지난달 20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여섯 번째 종합보고서가 공개됐다. 보고서에는 ‘2040년 안에 1.5도 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담겼다. 지구의 기온 상승 속도는 과거에 만들어진 데이터보다 훨씬 빨라졌고 예상되는 전 지구적 피해는 더욱 극심했다. 그러나 이회성 IPCC 의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런 경고만으로 문제를 끝낼 수 없다고 했다. IPCC가 기술혁신 등으로 기후변화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한 배경이다.

IPCC 보고서는 전 세계 기후변화 연구를 종합·검증한 결과물로 국제사회 기후대응 논의의 주요한 근거 자료로 쓰인다. 최근 서울 동작구 기상청 내 IPCC 의장실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이 의장은 6차 보고서에서 언급한 탄소중립 기술이 인류는 물론 한국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꿨듯이 탄소 기술 분야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얘기다.

2015년부터 IPCC를 이끌어온 이 의장은 경제학자이자 에너지 전문가다. 그는 “국가가 확고하게 기후위기를 우선순위로 밀고 나간다면 새로운 인프라 투자와 기술 투자가 생겨나고, 그 파급효과로 경제도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이 함께 이뤄지고, 기후행동이 개인의 경제적 인센티브로 연결돼야만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의장은 우리나라의 탄소 감축 논의가 ‘시기’와 ‘감축량’ 논쟁에 머물러있다며 “지금 필요한 건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6차 보고서에서 기술 대응이 강조된 배경은.

“IPCC는 기술중립적이다. 온실가스 감축 기술은 현재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새롭게 나타날 수도 있다. 사회적 여건이 바뀌면 기술도, 제도도, 국민의 반응도 바뀐다. 변화에 가장 쉽게 적응하는 체계를 갖추라는 얘기다.”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데.

“IPCC 검증 결과 이산화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지하저장고는 충분하다고 나왔다. 앞으로 어떤 기술이 탄소중립을 위한 메이저 기술로 성장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시점에서 이 기술은 안 되고, 이 기술은 된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탄소 감축을 위한 모든 기술을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을 목표로 한다. 논란도 많은데.

“감축 목표를 갖고 지나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30년이든 2050년이든 숫자를 깊이 논의하는 건 의미가 없다. 더 중요한 건 당장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6차 보고서는 1.5도 상승을 피할 수 없고, 그 피해가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크다는 내용이다. ‘여러분이 세우는 기후위기 적응 계획이 틀렸으니 전부 고치라’는 뜻이다. 탄소 감축은 국가 인프라를 바꾸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인프라는 한번 구축하면 수십년간 유지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인프라 설계가 현 기후위기 상황에 맞게 설계됐는지, 여기에 맞춰 투자가 배분되고 있는지 등이 더 중대한 문제다.”

-한국이 탄소중립 시대에 앞서갈 수 있다고 평가한 이유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술개발은 국가를 빼놓고는 할 수 없다. 한국은 이미 국가 주도로 경제성장을 이뤄낸 경험이 있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공적인 부분이다. 관건은 어떻게 기술력에 불을 지필 것인가, 어떻게 투자 재원의 물꼬를 터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한국은 자꾸 해외를 따라하려 하는데, 해외 사례는 그 국가의 토양에서 나온 결과물이니 그대로 대입하기 어렵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순환경제’의 모습은.

“넷제로(탄소중립)가 끝이 아니다. 누적된 탄소로 인해 탄소중립 이후에도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원자재 투입을 최소화하고, 자원을 순환시키는 기술이 개발돼야 한다. 에너지를 전환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데, 전환을 넘어 순환으로 가야 한다. 배터리를 만드는 광물을 생산하는 과정이 친환경적인가 따져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에너지 전환’이라는 표현은 혹세무민이나 다름없다. 자연 생태계는 모든 물질이 순환한다. 우리가 생산·소비하는 모든 자원도 순환시키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다.”

-1.5도를 넘은 뒤 온도를 낮추는 것도 가능한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 ‘뜨거운 맛’을 보고 2100년 말에 다시 1.5도로 내려오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소위 불가역적인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얼어붙은 땅이 녹으면 그 안에 갇힌 탄소가 뿜어져 나오고, 눈과 빙하가 녹으면 태양열을 반사하지 못해 온도 상승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이를 수습하는 비용과 피해를 생각하면 그러한 상황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기후위기가 ‘나의 일’이 될까.

“우크라이나 사태로 개인 소비자들까지 에너지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주머니 사정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해결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기후행동에 따른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에너지나 식량 위기보다 더 우선 되려면 기술개발과 투자를 바탕으로 이 분야에 돈이 몰리게 해야 한다. 탄소세를 매기거나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기술에 보조금을 주는 방법 등이 있다. 중국은 2070년에 넷제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2050년은 글로벌 평균일 뿐 선진국은 더 빨리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 큰 것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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