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교회도 각자도생 하는가
지난 9일은 부활절이었다. 한국교회는 실내 마스크 착용 해제 조치 이후 첫 연합예배를 드렸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면서 50일 후 돌아오는 성령강림절을 기대하며 부활의 증인으로 살기를 다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부활절 예배는 연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제각각 진행됐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부활절 새벽예배를 드렸고, 한국교회총연합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사상 첫 부활절 퍼레이드를 펼쳤다.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바로 옆에서는 한국교회연합과 광화문의애국시민들이라는 단체가 주관하는 또 다른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 여러 모양으로 진행된 부활절 예배와 축제로 볼 수 있겠지만 기왕에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라면 명실공히 하나 된 예배가 필요했다고 본다. 더구나 최근 한국교회가 닥친 현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하다. 교단과 신학, 온갖 이해관계를 초월해 교회를 살려야 하는 상황 속에 있다.
기독교인에 대한 신뢰도 추락, 반기독교·탈종교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 교회 내 젊은 세대의 실종, 저출산 여파에 따른 암울한 미래 등은 그저 ‘우리 교회’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 거대한 이슈는 개교회 차원이 아니라 개교회들의 연합과 협력 속에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함께하고 서로 돕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교계 현실은 정반대다. 함께하긴 하는데 끼리끼리 한다. ‘우리 교회’나 ‘우리 모임’이 특정 운동을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심지어 다른 교회나 다른 모임을 하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풍토도 발견된다. 우리가 하면 제대로 하는 것이고 저들이 하면 제대로 못 한다는 인식도 있다. 어떤 극단적 부류는 우리가 하는 건 옳고 저들이 하는 건 그르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극단적 차별성은 부정적 차별화로 악화할 수 있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는 구원받았고 너는 구원받지 못했으니 내가 우월하다는 식의 악마적 신앙으로까지 왜곡될 수 있다.
미국 애즈버리대학에서 일어난 부흥은 교계 지도자나 목회자에 의해 시작되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무명 젊은이들로부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죄에 애통하며 회개했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의 무게에 압도돼 몇 날 며칠을 노래하고 찬양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 가슴을 치며 결단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에서는 애즈버리 부흥에 대한 논평만 무수했다. 신자들이 자신의 죄가 너무 미워 몇 날 며칠을 회개하며 기도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찬양 집회가 예정 시간을 훨씬 뛰어넘어 수십 시간 이어졌다는 소리도, 어떤 목회자가 설교 도중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나부터 회개는 없었다.
우리에게 간절함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기독교인과 교회의 사건 소식에 그저 모른 척하고 각자도생하는 건 아닐까. 아무리 한국 정치가 극단으로 흐르고 여야가 협치 없이 비난과 저주만 퍼붓는다고 해서 교회까지 거기에 휩쓸려선 안 된다. 한국교회는 지금 머리를 맞대고 뭐라도 해야 한다. 어느 교회, 어느 모임에서 무슨 일을 한다면 힘껏 도와야 한다. 서로 비평하고 품평할 여유는 없다.
지금은 고린도전서 13장이 말하는 그 사랑을 즉각 실천해야 한다. 무엇보다 서로 오래 참아야 하고 시기하지 말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또 성내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뎌야 한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임진왜란 당시 국가가 백성을 구하지 못하자 각자 살길을 찾는다는 기록에서 비롯됐다. 각자도생은 스스로 살아갈 길을 꾀한다는 뜻도 있지만 각자 스스로 살기 위해 도망간다(各自逃生)는 표현도 있다. 위기의 때에 비겁하게 도망가는 교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신상목 미션탐사부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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