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금강산 비로봉에 다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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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은 전쟁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1939년 8월 9일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돌과 나무로 50평가량 되는 다방을 준공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금강산 집선봉과 조양폭포에도 가을 안에 다방이 준공될 예정이었다.
탐승객(등산객)들의 희망을 빙자해 비로봉 꼭대기에 다방을 세운 주체는 금강산협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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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은 전쟁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였다. 일본은 조선인을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 1939년 국민 총동원령을 내렸다. 매월 1일을 애국일로 지정해 시내 모든 카페, 다방 등의 영업을 금지했다. 애국일 24시간은 식민지 백성들에게 강요된 자숙의 시간이었다.
자숙해야 할 주체는 당연히 일본이었다. 현실은 반대였다. 자숙을 강요한 것은 일본 지배자들이었지만, 자숙을 외친 것이 그들만은 아니었다. 소설가 월탄 박종화는 “30대를 넘지 못한 새파란 청년들”이 “시계가 한시 두시를 가리키고 있는 대낮에” 다방에 앉아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며 “철학가인가? 시인인가? 음악가인가?”라고 반문한 뒤, 우울로 가득 찬 “망국의 풍경”이라고 한탄했다.
그가 말한 망국의 ‘국’은 이미 망한 나라 조선이 아니었다. 이런 우울한 젊은이들 때문에 망할 수도 있는 나라 일본이었다. 그는 일본의 망함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망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을 향한 빗나간 한탄이었다. 30대 후반의 소설가였던 그가 “30대를 넘지 못한 새파란 청년들” 운운하며 보여준 설득력 없는 한탄이었다. 그는 우울보다도 명랑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조선 청년들이 겪던 우울의 원인엔 무관심했다.
식민지 후반 조선에는 다방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수입품인 커피 소비는 권장하지 않았지만 커피를 파는 다방은 우후죽순 등장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바로 세금 수입 때문이었다. 다방, 끽다점, 카페, 바 등에서 들어오는 세금이 총독부 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았다. 앞에서는 커피 등 수입 물품 소비의 자제를 외치고, 뒤에서는 세금 들어오는 업소들의 창업을 반기는 이중적 태도였다. 걷어 들인 세금은 납세자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 준비에 쓰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다방을 열도록 허가해준 총독부 당국이나 다방을 운영하는 신흥 자본가들을 탓할 용기는 내다 버린 채 망국과 전쟁으로 우울한 조선 청년들을 비난하는 건 그다지 명랑한 모습은 아니었다.
당시 다방 열풍의 배경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소식이 보도됐다. 1939년 8월 9일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돌과 나무로 50평가량 되는 다방을 준공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금강산 집선봉과 조양폭포에도 가을 안에 다방이 준공될 예정이었다. 매일신보 1939년 8월 10일자 보도였다. 탐승객(등산객)들의 희망을 빙자해 비로봉 꼭대기에 다방을 세운 주체는 금강산협회였다. 금강산협회는 1930년 8월 총독부가 금강산에 제반 시설을 갖추고자 일본인 전문가들을 동원해 만든 단체였다.
아무리 카페가 많은 요즘이라 해도 한라산 백록담, 설악산 대청봉, 지리산 천왕봉에 카페는 없다. 내가 가본 북녘 묘향산, 백두산 꼭대기에도 다방은 없었다. 다방 창업에 총독부가 앞장서던 시절에 조선 청년들의 다방 출입을 문제 삼거나 커피 소비를 비난하는 것은 낯 뜨거운 억지였다.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의 반성을 요구하는 일본 정치인들이나 이에 동조하는 무늬만 한국인인 가짜 한국인들의 억지만은 못하지만.
이길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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