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 ‘성경적 지성’ 훈련해야 믿는 것과 세상 지식 분별할 수 있어

맹경환 2023. 4. 22.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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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세계관으로 다음세대 교육 노휘성 예스티칭연구소장
서울 구산동 제일영광교회에서 최근 만난 노휘성 예스티칭연구소장. 노 소장은 “성경의 진리로 세상 지식과 그릇된 풍조를 분별하려면 믿는 것과 아는 것을 통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지구에 우연히 생명이 발생한다. 그 세포 하나가 수십억 년 동안 멸종과 진화를 반복하면서 다양한 생물이 나온다. 그리고 수십만 년 전 네발로 기어 다니던 동물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지금의 우리가 된다.”

우리가 과학 교과서에서 배웠고 다음세대들이 배우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성경이 진리라고 믿고 창세기를 읽어 온 크리스천에게는 당혹스럽다. 진화는 과학이고 신앙은 믿음이기 때문에 둘은 별개라고 타협하는 크리스천도 의외로 많다.

노휘성(46) 예스티칭연구소장은 “세계는 영원하며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됐음을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는 “성경의 진리로 세상 지식과 그릇된 풍조를 분별하려면 믿는 것과 아는 것을 통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가설에 불과한 진화론과 세상 철학이 교회에 들어와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하나님나라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 소장은 다음세대가 창조신앙과 성경적 세계관으로 믿음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2021년 예스티칭연구소를 설립했다. ‘예스’는 ‘Youth Education by Scripture(성경에 기반한 다음세대 교육)’의 약자다.

다음세대에게 성경적 세계관을 심어주기 위해 사역하고 있는 노 소장을 서울 구산동 제일영광교회(박현웅 목사)에서 최근 만났다. 교회는 남편 양영주 목사가 부목사로 섬기고 있는 곳이다.

어머니의 기독교와 할머니의 불교

경기도 파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노 소장은 어려서부터 고민도 많고 생각도 많은 아이였다. 어머니의 기독교와 할머니의 불교 사이의 갈등을 지켜보며 자란 영향이 크다. 어머니의 고향은 한국 최초의 여성 순교자 문준경(1891~1950) 전도사가 100여개의 교회를 개척한 전남 신안군이다. 노 소장의 외증조할아버지가 신앙을 받아들였지만 외할아버지가 6·25 때 행방불명되면서 신앙의 대가 끊어졌다. 어머니도 어린 시절 교회를 다녔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신앙을 잃고 직장 생활을 하다 결혼했다. 그러다 외할머니가 신앙을 회복하면서 어머니도 다시 교회에 다녔다.

노 소장 친가는 반기독교적 분위기였다. 노 소장은 “할머니는 정기적으로 절에 가셨고, 때때로 노 소장을 데리고 불공도 드렸다”고 전했다.

노 소장 어머니는 할머니의 핍박을 견디며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친정에 간다는 핑계를 대면서 어린 노 소장을 데리고 교회에 갔다. 자주 교회에 가지 못해도 매일 집에서 기도하셨다. 노 소장은 “방에는 엄마의 기도 자리가 있었다”며 “저는 늘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회심과 결단

2018년 튀르키예 성지순례를 함께한 노 소장 가족.

이런 노 소장 집에 기쁨의 반전이 일어난다. 중동에서 오래 근무하시던 아버지가 현지 한인교회에 출석하며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확고한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노 소장이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휴가차 귀국한 아버지가 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단을 내리면서 노 소장 가족은 동네 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의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살던 마을에 기독교인은 아무도 없어서 이단아 같은 존재로 눈총받기 일쑤였다. 할머니의 이런저런 핍박도 계속됐다.

“어려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항상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당시 교회에 가는 것은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분명 여러 종교에 노출된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도 교회에 가면 마음이 편했어요. 주일학교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말씀을 늘 빨려 들어가듯 듣고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중1 때 찾아온 신앙의 슬럼프

노 소장에게도 신앙의 슬럼프가 찾아온다. 그 시작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는 불신이 찾아왔다”면서 “이 모든 세계를 설명할 방법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뿐인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폭풍같이 몰아쳤다”고 했다. 그 고민이 풀리지 않는 한, 예배도 학교도 일상도 다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했다.

노 소장을 괴롭히던 질문은 6개월이나 계속됐다. 어느 날 밤 견디기 힘들어 고민을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일도 안 믿어지면 하나님을 영원히 떠날 거예요’라고 속으로 외치고 잠이 들었다. 그는 “다음 날 주일에 성가대 가운을 입고 교회 본당으로 들어가는데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면서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고 저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로잡히는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을 만난 후 모든 근본적인 회의가 사라졌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나를 지으신 분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영원하신 분이고, 세상을 창조하고 운행하시는 분이라는 게 한 번에 다 이해됐어요.”

창조냐 진화냐

노휘성 소장이 2015년 미국 LA 아름다운교회에서 초등부 학생을 대상으로 창조론 강의를 하고 있다.

대학에 진학한 노 소장은 과학교육과 지구과학교육 전공을 선택했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늘이 좋았고 지구를 감싸고 도는 거대한 공기의 흐름과 광대한 지층들 속에 숨겨진 비밀이 궁금했다. 대학에서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성경이 진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배울수록 진리인 성경에 더 가까이 가겠구나’라고 생각하곤 했다.

3학년이 되자 전공과목이 많아졌다. ‘고생물학’ 첫 수업 시간. 교수는 주의 사항을 전달했다. 한 학생이 중간고사에서 화석이 진화의 증거일 수 없는 이유를 시험지 두 장에 걸쳐 빼꼭히 적었는데 당연히 0점 처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창조과학’은 종교적 신념일 뿐이고 고생물학은 학문이기 때문에 신앙적 접근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신앙과 학문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지만 일단 공부는 계속했다. 대학 졸업 후 2002년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지구과학 교사로 임용됐다. 아이들을 즐겁게 가르치면서도 짐처럼 느껴졌던 ‘진화냐 창조냐’의 고민은 점점 커졌다.

교사 생활을 한 지 8년쯤 지났을 무렵인 2009년 노 소장에게는 ‘천지개벽’ 같은 큰 사건이 터졌다. 6년에 한 번씩 개정되는 새 교육과정이 발표된 것이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과학은 기존 단원 편성이 사라지고 한 학년 과정의 절반을 빅뱅부터 인류의 출현까지 거대한 스토리로 엮어 가르치게 했다.

노 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과학 교과서는 없었다”면서 “갈수록 강화되는 진화론 교육을 받는 다음세대를 생각하니 이 강력한 도전 앞에 교회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염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노 소장은 기도의 무릎을 꿇었다. “세상이 뭐라 해도 저는 하나님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심을 믿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국서 만난 창조 과학

고민을 거듭하던 노 소장은 창조론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관점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2010년 남편이 유학을 떠나게 돼 노 소장도 휴직했다. 유학 장소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놀라운 만남을 준비해 주셨다.

떠나기 한 달 전 남편이 맡고 있던 교구의 한 집사님은 노 소장이 창조과학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걸 알고, LA에서 창조과학 사역을 하는 친구를 소개해 줬다. 신기하게도 그 친구분은 전북 남원에서 시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자란 분이었다.

그렇게 최우성 박사(2021년 별세)를 미국에서 만났다. 최 박사는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거쳐 당시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서 인슐린 관련 연구를 하다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을 하기로 작정하고 창조과학 사역에 헌신하고 있었다. 노 소장은 곧바로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공학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창조과학선교회에서 성경적 창조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 항복하다

미국 생활을 시작한 지 3년 정도가 흐른 시점이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네가 언제 한국에 돌아가든 학교를 내려놓고 창조를 전하는 일을 하면 좋겠구나’ 하는 마음을 주셨다.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노 소장은 “아이들도 어리고 생활도 해야 하는데 직장을 그만둘 엄두가 나지 않았다”면서 “제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요청하심이 저의 착각은 아닌지 수없이 반문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집요하심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귀국한 노 소장은 결국 교직을 떠나 창조과학 사역을 하기로 작정하고 예스티칭연구소를 설립했다. 지금도 다음세대를 대상으로 성경적 세계관을 강의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는 항상 ‘성경적 지성 훈련’을 강조한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을 통합할 수 있는 지성이 없이는 믿음이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성인이 되기 전에 지혜와 지식의 근본인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고할 수 있는 지성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지성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킬 것인가,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지성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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