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사설보호소…“일회성 후원은 그만, 3년안에 자립 가능합니다” [개st인터뷰]
2020년 기준 국내 313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운다. 전체 가구의 15%나 된다. 하지만 반려문화는 독일이나 영국만큼 성숙하지 못한 게 현실이다. 반려인만큼이나 빠르게 유기동물 숫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유기동물 통계사이트 포인핸드에 따르면 지난해 공공보호소에 입소한 유기동물은 총 11만2445마리. 훨씬 더 많은 개체가 버려진다는 뜻이다.
포화상태인 공공보호소의 빈자리를 메우는 건 전국 130여개 사설 유기동물보호소다. 대부분 인력 및 운영비 부족에 허덕인다. 70대 노인이 홀로 동물 100마리를 관리하거나 후원금이 없어 보호소장이 사재를 털어 사료 값을 대는 것이 사설보호소의 흔한 풍경이다. 비참한 현실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공개한 ‘2022년 민간동물보호시설 운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설보호소 10곳 가운데 4곳은 보호소장 홀로 관리한다. 후원금으로 해결하는 건 운영비의 절반 정도. 나머지 부족분은 개인 채무로 충당한다.
동물구조단체 팅커벨프로젝트(팅커벨)의 황동열 대표는 이런 사설보호소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팅커벨 역시 민간쉼터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후원자 3000명에 연간 200마리의 유기동물을 구조·입양하는 탄탄한 보호소로 자리잡았다. 열악한 사설보호소를 어떻게 도울까. 고민하던 황 대표는 지난 2월 ‘재정자립형 민간쉼터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전국의 사설보호소 30곳을 선정해 후원과 코칭을 병행하는 프로젝트. 사설보호소의 자립을 돕는 국내 최초의 컨설팅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은 시작도, 끝도 투명한 회계. 재정 공공성이 확보되면 후원자 모집부터 입양까지 이후 과정은 순조로진다는 게 황 대표 지론이다. 황 대표는 지난 20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위기의 사설보호소에 긴급 후원을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일회성 지원으로는 아무 것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추도록 매뉴얼을 갖추고 투명한 시스템과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설보호소 지원에 뛰어든 이유는
“사설보호소에서 돌보는 아이(유기동물)를 남의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보호소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다른 곳에서 돌봐야 했을 것이다. 보호소장들이 혼자 끙끙 앓지 않도록 도울 방법을 찾고 싶었다. 내가 만난 보호소장들은 유기동물들을 끌어안은 채 자포자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비록 모든 어려움을 다 해결해주지는 못하지만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든든한 동지가 있다는 연대감을 전하고 싶다.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던지고 싶었다. 과연 사설보호소가 보호하는 유기동물은 개인이 감당할 사적인 존재일까. 아니면 정부나 지자체 지원이 필요한 공적인 존재일까. 우리나라가 동물복지를 챙기는, 국격 있는 나라가 되려면 버려진 동물에 대해서 최소한의 지원은 해줘야 한다고 본다. 공익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설보호소를 발굴해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면 좋겠다.”
-전국의 사설보호소 수십 곳을 답사했다고 들었는데 대략적인 상황은
“지난 2개월간 동료들과 분담해 전남 여수, 경남 기장과 거제, 제주도 등 전국의 사설보호소 30곳을 답사했다. 입소한 동물은 개 1657마리, 고양이 1287마리까지 도합 2900여마리로 보호소 한 곳당 평균 100마리를 돌보는 셈이다. 그 중 70%는 보호소장(운영자) 홀로 그 많은 동물을 돌보고 있었다. 보호소장들은 하나같이 ‘내가 살아있을 때는 어떻게든 챙기는데 만약 내가 죽거나 병원에 입원하면 이 아이들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보호소장이 쓰러지기라도 하면 입소한 동물들은 지역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시·군·구청 소유로 넘어가 집단 안락사를 당하는 비극이 벌어질 것이다. 5년, 10년 뒤를 대비하려면 낙후한 사설보호소도 운영체계를 갖추도록 돕고 신뢰도를 끌어올려 더 많은 후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후원금 부족으로 운영난에 시달리는 사설보호소가 많다고 들었다
“동물들을 굶기지 않고 보호소를 운영하려면 한 마리당 월 10만원의 후원금이 소요된다. 그러니까 100마리를 돌보려면 월 1000만원은 필요한데 실제 100만원도 안되는 후원금으로 버티는 보호소가 80%나 됐다. 그렇다고 동물들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럴 경우에는 사료의 질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저품질 사료를 공급하면 아이들 건강이 금세 나빠진다. 영양이 부족하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피부병이나 호흡기 질환에 걸리면 동물병원비가 든다.
결과적으로 후원금 부족이 ‘저품질 사료 급여→건강 악화→동물병원비 지출→재정 악화’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부족한 운영비를 메우느라 주변에서 돈을 빌리고 수천만원의 개인 채무를 떠안는 보호소장도 있었다. 이 가엾은 동물들이 사료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튼튼한 운영구조를 만들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팅커벨은 재정적으로 자립하는데 성공했는지
“팅커벨은 10년 전에 후원자 3000명을 달성한 덕에 연간 유기동물 200마리를 구조해 입양보내고 있다. 입소한 동물들에게 고급 사료를 먹이고 치료비 걱정 없이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수준의 재정 자립을 달성했다. 우리도 처음에는 10마리도 안 되는 동물을 구조해 돌보는 작은 쉼터에서 출발했다. 이후 체질을 개선해서 단체 통장을 개설할 수 있는 임의단체가 되고, 또 지정기부금단체가 돼서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면서 기업 후원도 받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하나의 사설보호소가 공공성을 갖추기까지 최소 3~5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전국의 사설보호소들이 ‘팅커벨도 했으니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사설 보호소에서 확인되는 가장 흔한 문제점은
“후원금을 보호소장 개인통장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후원금과 개인 생활비 내역이 뒤섞여 후원자들에게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없다. 고의가 아니라 회계 처리의 중요성을 몰라서 벌어지는 일이다. 공공성을 갖추려면 세무서에 등록하고 단체 명의 통장을 만들어 후원금을 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러면 후원금도 더 많이 모인다. 재정 공공성을 갖춘 다음에는 보호소 운영을 공익화해야 한다. 많은 사설보호소가 구조에만 집중하느라 입양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는다. 구조한 동물은 중성화 및 건강관리를 하고, 입양홍보 역시 월 5회 이상 정례화해서 구조와 입양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팅커벨이 운영하는 ‘재정자립형 민간쉼터(사설보호소) 컨설팅’의 내용은
“당장 급한 것은 배고픈 동물들에게 후원사료를 전달하는 일이다. 6개 민간 쉼터에 도합 3.3t의 사료를 긴급 지원했고, 전기 및 가스요금 연체로 위기에 놓인 쉼터는 팅커벨 회원들과 수백만원을 모금해 도왔다. 그외 컨설팅에 응하는 쉼터에는 연간 최소 500㎏의 사료를 지원하고 있다. 전제 조건은 2~3년간 팅커벨이 제공하는 재정건전화 컨설팅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거다. 컨설팅 내용은 이렇다. 우선 세무서에 신고해 비영리임의단체로 승인받는다. 그러면 단체 명의로 통장 발급을 받아 후원자에게 CMS(자동이체)로 매달 정기 후원금을 받는 등 안정적인 후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후원자에게 후원금 사용내역을 공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임의단체로 등록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보호소장을 포함한 2인 이상이 단체 규약, 총회 회의록 등 간단한 서류를 만들어 동네 세무서에 제출하기만 하면 된다. 성취감을 주기 위해 소정의 상품도 준비했다. 임의단체 등록에 성공한 쉼터에는 격려하는 의미로 디자인 회사의 도움을 받아 단체 로고 및 명함을 제작해주고 있다.
컨설팅을 받은 쉼터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지지자가 생기고, 1만원이든 2만원이든 정기후원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하루하루 연명하던 소장들이 1년, 3년, 5년 뒤 미래를 고민하게 됐다. 더불어 사료비와 동물병원비가 밀리지 않는 튼튼한 쉼터가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싹트고 있다. 기업의 후원 참여도 잇따르고 있다. 온라인 포털에 ‘팅커벨프로젝트’를 검색한 뒤 응원 댓글을 달면 댓글 1개당 10g의 후원 사료를 기업이 기부해준다.”
-현재까지 성과는
“애써 후원한 사료나 지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사라지면 곤란하다. 팅커벨의 후원을 받기 위한 자격 요건은 운영세칙에 자세히 정해뒀다. 만약 단체 명의의 후원금 통장을 개설하지 않거나 입양홍보 등을 활발하게 하지 않으면 팅커벨의 사료 및 운영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아도 이미 쉼터 소장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다만 60대 이상 고령의 소장들은 젊은 봉사자 도움이 필요하다. 지역 봉사자를 모집해 쉼터를 자주 방문하도록 연결했다. 컨설팅 2개월 만에 10개 쉼터가 단체 통장을 만들었다. 너무 기뻐서 단체통장을 개설한 쉼터에는 사비로 10만원씩 축하 후원금을 보냈다.
특히 적극적으로 컨설팅에 따라준 쉼터소장이 한 분 계신데, 올해 70세이신 경북 청도의 해바라기 쉼터 소장이다. 컨설팅을 받는 소장 중 최고령임에도 젊은 봉사자들에게 물어가며 세무서에 서류를 내고 단체 통장도 발급받는 노익장을 발휘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젊은 쉼터 소장들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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