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믹스 한 잔도 마음대로 못 타 먹는 회사...너무 ‘궁상’맞지 않나요? [오늘도 출근, K직딩 이야기]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4. 2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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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비품 사용을 둘러싸고 회사와 직장인 사이의 갈등이 조금씩 거지고 있다. (매경DB)
# 직장인 A씨는 최근 탕비실에서 커피믹스를 타 먹으려다 ‘문구’를 보고 흠칫했다. 커피믹스를 가져갈 때마다 옆에 있는 명부에 이름을 작성하라는 안내문이 벽에 붙어 있었다. 각종 커피와 과자를 ‘과하게’ 먹는 직원들이 많다는 경고성 발언도 같이 적혀 있었다. 몇몇 직원들은 이미 명부에 이름을 작성한 상태였다. 당혹감을 느끼던 A씨는 결국 명부에 이름을 적고 커피믹스를 가져갔다. 평소 회사에서 커피를 자주 타 먹던 A씨는 마치 ‘죄인’이 된 것 같다며 불쾌감을 토로했다.

“커피믹스 하나를 가져갈 때마다 일일이 이름을 적으라는 건 너무하지 않나. 그나마 간식 먹는 재미로 회사를 다녔는데, 이런 것까지 막을 정도로 ‘쪼잔’한 회사였는지 회의감이 든다.”

# 회사 비용을 관리하는 B씨는 일부 직원들의 행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 집에서 충전해야 할 전자제품을 회사에서 충전하는 직원들 때문이다. 올해부터 전기 요금이 급등하면서 전기료를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직원들이 각종 전자 기기를 회사에서 충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런 직원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만약 이런 문화가 전 직원에게 확산되면 회사 입장에서는 전기료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직원들의 행동을 ‘제지’하기도 힘들다. 스마트폰 충전까지 못하도록 일일이 간섭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B씨가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전자 기기를 회사에서 충전하는 직원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소확횡’.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의 줄임말이다. 몰래 가져가도 티가 나지 않는 회사 비품, 간식, 전기 등을 가져가거나 끌어 쓰는 행위를 뜻한다. 한때는 ‘절약하는 직장인’의 꿀팁으로 각광받는 문화였다. 회사들도 처음에는 크게 제지하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비용을 지키기 위해 직원들의 사기를 굳이 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곳이 다수였다. 게다가 코로나19 유행으로 출근 자체를 안 하게 되면서 ‘소확횡’은 사실상 사람들 뇌리에서 잊혀갔다.

사라진 줄 알았던 소확횡 논란은 출근 재개와 함께 새로운 직장 내 ‘이슈’로 떠올랐다.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회사들은 사소한 비용까지 아끼는 데 집중한다. 반면 직장인들은 물가 상승으로 인한 주머니 부담을 덜기 위해 회사 내 물품을 최대한 사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사측은 직원들의 행동을 제재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에 직원들은 간식 개수까지 제한하는 회사를 두고 ‘거지 같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직장인 커뮤니티 플랫폼 블라인드에는 ‘직장인 거지 배틀’이라는 제목 아래 회사의 제재 행태를 ‘박제’하는 글이 다수 올라오기도 했다.

해당 문제에 대해 회사 관리 직원들도 골머리를 앓는다. 일일이 이름을 적는 게 과한 조치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꼼꼼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얌체’족들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한 중소기업 관리 직원은 “당근마켓이나 중고거래 장터에 회사에서 가져온 커피믹스를 파는 사람이 종종 있다. 본인이 먹는 것은 상관없지만, 직원들을 위한 복지용 음식을 훔쳐서 파는 건 아니지 않는가. 궁상맞다고 욕먹어도 얌체족을 잡으려면 과한 제재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직장인들은 비품 하나하나까지 세세히 간섭하는 회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블록체인 기반 설문조사 플랫폼 ‘더폴’에서 “커피믹스 마실 때마다 이름 적어야 하는 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대상자 2만6232명) 67.4%가 ‘궁상맞다’고 답했다. 응답한 직장인들이 회사 내에서 먹는 간식까지 제한하는 것은 ‘심하다’고 내다봤다.

다만, 회사 비품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회사 냉장고 속 음료수를 퇴근할 때마다 가져가는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55.9%가 집으로 가져가는 것은 너무하다고 응답했다. 회사 내 물건을 회사에서 쓰지 않고 집에 가져가는 것은 ‘횡령범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실제로, 작은 규모라도 회사 내 비품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범법 행위다. 절도죄나 횡령죄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근무하던 직장에서 장부를 조작해 식품 회사 창고에서 믹스커피 1840봉을 훔친 한 직장인이 입건된 사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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