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해, 다 주고만 싶어"

글 정경숙·사진 류창현 전재천 2023. 4. 2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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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천 : 기억 ④] 봄날의 오일장, 할머니가 쥐여준 쌈짓돈의 의미

'더(The) 인천'을 더(More) 알아가다. 지금 발 딛고 선 도시, 살아가는 동네, 그 안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 인천 곳곳에 깃든 인천 사람 저마다의 삶과 기억, 숨은 이야기를 찾아 기록한다. 아름다운 봄날, 오일장이 열리는 강화도를 찾았다. 물기 어린 초록빛 산나물도, 향기로운 흙냄새 풀내도, 햇살도, 바람도 할머니들의 보따리에 담겨 장터로 마실 나왔다. 추억 속 장날은 오늘도 열리고, 그곳엔 사람과 사람이 있다. <기자말>

[글 정경숙·사진 류창현 전재천]

 “어서 오시겨~.” 닷새 만에 열린 장날, 강화도풍물시장에 봄 내음이 물씬하다. 달래, 냉이, 배추, 미나리… 할머니가 보따리를 풀자 싱그러운 초록빛 들판이 펼쳐진다.
ⓒ 사진작가 전재천
       
"쪼글쪼글한 할머이 얼굴 찍어서 뭐 하시꺄."

옆에서 장사하시는 할머니도 한마디 거든다.

"아이고~ 벨나다 벨나(별나다 별나). 새 시집가게 생겼시겨."

한바탕 웃음소리에 놀랐는지 여린 나뭇가지가 흔들거린다. 빨간 고무통을 가득 채운 채소와 곡식들이 봄볕 아래 소곤거린다. 시금치가 한 '다라이'에 3천 원, 씨감자는 한 '다라이'에 5천 원. 이래 봬도 하루에 돈 10만 원은 거뜬히 번다.
 
 할머니 얼굴이 어여쁘다. 김화자 어르신.
ⓒ 사진작가 류창현
김화자(83) 할머니는 평생 강화 장터 이곳저곳을 떠돌며 보냈다. 장사해 번 돈으로 여태 손주들 용돈 주고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산다. "내 혼자 벌어서 실컷 써, 병원만 안 댕기면. 여태까지는 괜찮았는데...' 그가 말끝을 흐린다. 그러면서도 '서울 아파트 짓는 데'서 부장 한다는 자식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할머니 얼굴이 봄날의 들판처럼 환하다.

닷새 만의 장날, 강화풍물시장이 시끌벅적하다. 보따리만 풀면 그 자리가 바로 할머니들 좌판이 된다. 달래, 냉이, 배추, 미나리 등 싱그러운 초록빛 들판이 펼쳐진다. 자리를 잡지 못한 농민들은 버스 정류장과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물건을 부린다.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할머니, 콩나물 얼마예요?"
"2천 원."
"하나만 줘요."

김씨 할머니가 잘 자라난 콩나물에 정까지 수북이 담아 건넨다. 그러더니 지폐를 받아 쌈지에 넣고는 말도 없이 자리를 뜬다.  난전에 펼쳐진 물건에 손대는 사람은 없다. 콩나물을 사러 왔다 졸지에 주인장 대신 좌판을 떠안기도 한다. 시골 장이 원래 그렇다.       
   
 시장에 계절을 전하는 건 봄나물이다. 자연의 산물들이 할머니를 따라 장터로 마실 나왔다.
ⓒ 사진작가 류창현
      
시골 소년의 기억 속 풍경

이른 아침인데도 부부는 양손 두둑이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고재길(66)·정정숙(62) 부부는 2년 전 도시 한복판에서 강화도로 삶의 터를 옮겼다. 아파트에서만 40여 년을 살았는데,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몰랐다. 마침내, 삭막한 콘크리트 너머 수더분한 땅 빛 좇아 강화로 왔다.

"어르신들이 자식 대하듯이 하세요. 뭐든 나눠 먹는 거 좋아하시고, 장터에 오면 정이 더 흘러넘쳐요."

고씨는 전라도 남쪽에 있는 시골 마을이 고향이다. 어릴 적 읍내에 장이 서는 날이면, 새벽빛이 밝아올 때부터 동네가 술렁거렸다.

"장날이 다가오면 마음이 설레었어요. 엄마 손잡고 따라간 장터엔 세상 별의별 게 다 있었지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오일장을 찾는 고재길·정정숙 부부
ⓒ 사진작가 류창현
생전 보지 못한 물건도, 먹지 못하던 먹거리도, 넉살 좋은 말솜씨로 혼을 쏙 빼놓는 약장수도, 신명 나게 놀이판을 벌이는 남사당패도 그 시절 장터에는 있었다.

오늘 장터에 남은 엿장수는 가위춤도 추지 않고 엿단쇠 소리도 내지 않는다. 우르르 몰려드는 꼬마들도 없다. 하나 예전만 못해도, 사라져선 안 되는 곳이 장터다. 엿장수의 젱겅거리는 가위질 소리가 가까웠다 이내 멀어져 간다.

<강화사>에 의하면 강화장은 고려 시대 강화로 도읍을 옮긴 이후부터 발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외국무역의 주요 품목인 인삼·직물·화문석·도자기 등이 생산된 것도 이같은 추론을 뒷받침한다. 연중 한 번 서는 약령시藥令市와 9일과 5일마다 정기시장이 열렸는데, 강화읍은 고려 고종 19년(1232년) 이래 강화의 중심이었던 만큼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강화 오일장은 강화, 길상, 내가, 화도, 양도 등에서 열리다, 현재 강화와 길상에만 선다. 강화읍 시가지에 있던 강화 장터는 1993년 12월 동락천 복개 부지로 옮겼다, 2007년 5월 풍물시장 상가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왔다. 장날은 2일과 7일이 드는 닷새 간격으로 열린다.
 
 ?지금도 장터엔 사람이 모이고 물건이 모이고 정이 흘러넘친다.
ⓒ 사진작가 전재천
 
 장터에는 사람이 모여든다. 저마다의 이야기도 흘러든다. 평생을 쏟아온 일이 아직 목숨 줄인 사람도, 소일거리 삼아 장사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사람이 그리워서 장터로 나온다.
ⓒ 사진작가 류창현
      
사람도 사연도 모여드는 곳

장터에는 사람이 모여든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이야기도 흘러든다. 허리가 굽도록 평생을 쏟아온 일이 아직 목숨 줄인 사람이 있고, 바지런히 건사한 자식들 떠나보내고 소일거리 삼아 장사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사람이 그리워서 장터로 나온다.

칡뿌리를 파는 이응길(72) 할아버지는 30여 년 경력의 목수다. 거칠고 주름진 손, 불퉁그러진 손마디가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해 준다.  몸 쓰는 만큼 밥을 버는 삶.  먹고살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돌기도 했다. 집 짓는 일이 없을 땐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캐고 아픈 아내를 대신해 내다 판다. "다들 그러고 살지 않느냐"며 "힘들 것도 없다"는 그의 미소가 모자 그늘 아래 깃든다.
 
 장터에서 칡뿌리를 파는 목수, 이응길 할아버지
ⓒ 사진작가 전재천
"내가 저녁마다 놀러 갈게."
"영감이 있는데 매일 오면 쓰나. 어쩌다 밖에서 불러다가 차 한잔하고 그래야지."

오고 가는 말들이 허물없이 정겹다. 강화 인삼 막걸리와 교동도에서 직접 기른 쌀을 파는 엄미선(64)씨는 언뜻 보기에도 장터의 여느 아낙과는 다르다. 낯선 이가 사진기를 들이밀어도 싫은 기색 없이 살며시 거울을 본다. 립스틱을 쓱 바르자 생기 없던 입술이 산수유처럼 붉게 물든다.

"내가 원래 도시에서 사업하던 사람이야. 그만, 홀딱 말아먹고 시골로 들어왔지만..." 사연을 물으려 하자 그가 입을 굳게 다문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라고 말을 돌리자 "무슨, 옛날 같으면 고려장 했을 나이인데"라고 말하면서도 웃는다. 세상 풍파를 겪을대로 겪은 그이지만, 장사 1년 차에 아직 '젊은' 60대 중반의 그는 시장 바닥에서 어여쁨받는 막내다.
     
 길 위에서 따뜻한 밥 한 끼 나눈 시장 사람들. 왼쪽부터 박선화·박순희·박소연·김순례·엄미선 씨.
ⓒ 사진작가 류창현
 
 순무 밭을 그대로 옮겨놓은 할머니의 좌판. 강화 땅에서 캔 알싸함이 장바닥에 퍼진다.
ⓒ 사진작가 전재천
  
숟가락 부딪히며 쌓여 가는 정

고른 한낮. 밥때가 되니 시장 아는 얼굴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음식을 나눠 먹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하며, 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허물없이 어울리는 게 장터 인심이다.

"아유, 김치찌개가 예술이네. 어쩜 이리 맛깔나게 끓였대유."

신랑이 좋아서 일찍이 강화도로 시집왔다는 한 할머니의 충청도 사투리가 정겹다. 찌개 한 냄비, 밥 한술에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운다.

"요거는 묵은지를 통째로 대가리만 따서 넣고 쌀뜨물로 끓이기만 하면 돼. 양파랑 꽁치 통조림 넣고."
"꽁치 대신 큰 멸치 똥을 빼서 넣어도 맛이 기가 막혀."

부엌에서 갈고닦은 요리 비법이 술술 나온다. 맛있다, 맛있다고 하다가도 스스럼없이 타박을 놓는다. "어떻게 먹으라고 김장 김치를 대가리만 잘라서 갖고 왔대." 그러다가도 이내 칭찬이 이어진다. "김치 맛이 시원하고 참 괜찮다." 끝이 검게 물든 손톱으로 김치를 '북' 찢어서 서로의 밥그릇 위에 '툭' 하고 얹어 준다.

옆에서 밥을 먹던 한 어르신이 국자로만 떠먹었다며 시래기 된장국을 건넨다. 길 위의 밥상이 더 풍성해졌다. 인생살이가 그렇다. 그저 뜨끈한 밥 한술에도 행복이 깃들어 있다.

"뭐여, 무말랭이 팔았어? 어매, 민지네 돈 들어오네~. 빈집에 소 들어와유~." 살가운 충청도 출신 할머니가 내친김에 손님까지 불러 모은다 "이 물건 안 사면 후회해유. 어서 들여가유." 순간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찰랑거린다.

밥 한 끼 나눈 그네들의 이름을 물었다. 일흔 살의 충청도 할머니는 김순례. 산이 좋아 평생 나물을 캐다 장터까지 흘러 들어왔다. 소싯적에 키를 잡고 남쪽 바다를 누비던 예순둘의 '박소연'. 바닷바람만 아니었으면 이리 겉늙지 않았을 거라고 웃는다. 일흔셋 동갑내기 박 씨 할머니 둘은 '박선화', '박순희'. "아이고~ 우리 '성님들' 이름 참 예뻐버려~." 누군가의 딸, 아내, 어머니로 살아온 그들에게도 이름 석 자가 있다. 

할머니가 손에 꼭 쥐여 준 정
 
 송순임 할머니. “다 주고만 싶어.” 어렵게 살았어도 베풀 줄 아는 그에게서 인간의 숭고함이 느껴진다.
ⓒ 사진작가 전재천
 "그리 돌아댕기지만 말고 뭐라도 사 먹어라."

장사하시던 한 할머니가 가는 발길을 불러 세워 꼬깃꼬깃한 쌈짓돈을 손에 꼭 쥐여 준다. "이미 잘 얻어먹었다"라고 말씀드려도 한사코 듣지 않으신다. "내가 이 나이에 여기 얼마나 더 나오겠나. 나이 먹어서 몸이 말을 안 들어. 이제 누구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시장 사람들은 그를 '되매기' 할머니라고 부른다. 물건을 사서 값을 더해 되파는 것을 이르는데, 그는 자신의 것을 내어줄 줄만 안다. 더덕을 사니 근대, 시금치, 쪽파가 따라온다. 미안한 마음에 자꾸만 더 담으려는 손을 물리쳐도 소용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귀중해. 다 주고만 싶어".

여린 것, 귀한 것, 흔한 것 할 것 없이 자연의 산물도 그 얼마나 소중한지. "다 귀한 거야. 못생겼다? 그래도 칭찬해야 해. 깨끗이 닦아 주고 하나라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해." 하나 세상 크고 작은 모든 것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살면서 잊어버린다.
 
 정을 담아, 쌈짓돈을 손에 꼭 쥐여 준 송순임 할머니
ⓒ 사진작가 전재천
  
송순임(88) 할머니는 외동딸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다. 작은아버지, 어머니 밑에서 자라 남들만큼 배우지 못했다. 혼수도 없이 열여덟에 내쫓기듯 시집을 갔다. 그렇다고 불운한 운명을 탓하지도 가난을 지켜만 보지도 않았다. 그가 살던 불은면에 있는 덕정산엔 산나물이 지천이었다. 작고 여린 손으로 나물을 캐며 억척스럽게 삶을 일구었다. "그 일이 쪼그매서부터 아직까정이야."

봄은, 짧다. 슬며시 다가와 스리슬쩍 지나간다. 사람의 인생도 그렇다. 장에서 자라나 장에서 나이 들고, 평생 쪼그려 앉아 호미질하다 꼬부랑 늙은이가 되었다. 하나 어머니들의 평생 시간이 고인 그 자리엔 지금도 새싹이 돋아난다.

"오늘 갈지 내일 갈지 어찌 아나. 꼭, 한번 다시 와라." 할머니가 두 손을 꼭 잡아준다. 오글쪼글 주름 잡히고 검버섯이 꽃처럼 핀 손. 그 손이 참 어여쁘고 따뜻하다. 그 위로 봄 햇살이 살금살금 비친다.
 
 순무 밭을 그대로 옮겨놓은 할머니의 좌판. 강화 땅에서 캔 알싸함이 장바닥에 퍼진다.
ⓒ 사진작가 전재천
    
글 최은정 본지 편집위원│사진 유승현 포토 디렉터  
▶취재영상 보기(https://youtu.be/y8InCBN9fY0)
 
 '더 인천' 강화도 오일장 취재 영상 섬네일
ⓒ 굿모닝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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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시에서 발행하는 종합 매거진 <굿모닝인천> 2023년 4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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