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 후 도주하면 방법 없다”…구속기간 연장 논의 꺼낸 판사들
현행 2개월인 최초 구속 기간을 6개월로 늘리자는 주장이 나왔다. 이같은 대안은 사법정책연구원이 2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개최한 ‘구속제도의 개선방안’ 학술대회에서 언급됐다. 지난 2월 발간된
「법원의 구속기간에 관한 연구」
(김윤선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부장판사)가 이날 논의의 기반이 됐다.
구속기간, ‘2개월x3회’ → ‘6개월+3개월+3개월’ 제시
현행 제도 아래서는 법원이 한 번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최초 2개월 간 구속하고, 이후 심급 마다 2~3차례 영장을 갱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구속기간은 최장 6개월이 일반적이고, 예외적인 경우 8개월이다. ‘2개월+2개월+2개월’ 구조가 보편적이다.
김윤선 선임연구원은 이를 ‘6개월+3개월+3개월’로 바꾸거나, 2개월 단위로 횟수 제한 없이 갱신할 수 있도록 하되 최장 구속기간은 ‘1년 내지는 8개월’로 제한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모든 심급, 모든 사건에서 일률적으로 구속 기간을 제한하는 제도가 현실적으로 맞지 않고,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법”이라는 이유다. 김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미국‧유럽에서는 재판이 시작된 뒤에는 사실상 구속 기간에 제한이 없고, 일본에서는 1개월 단위로 무제한 갱신이 가능하다.
다만 모든 사건 피고인에 대한 구속 기간 상한을 높이자는 주장은 아니다. ①재범 위험성이 있거나 ②중요 참고인이나 피해자를 해칠 우려가 있거나 ③추가 심리가 필요한 경우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연장하자는 것이다. 실제 뇌물 등 혐의로 구속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최근 보석을 신청하자, 검찰은 "주요 증인에게 접근해 증거인멸 시도를 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 용어사전 > 형사소송법제92조(구속기간과 갱신)
①구속기간은 2개월로 한다. 〈개정 2007. 6. 1.〉
②제1항에도 불구하고 특히 구속을 계속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심급마다 2개월 단위로 2차에 한하여 결정으로 갱신할 수 있다. 다만, 상소심은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신청한 증거의 조사, 상소이유를 보충하는 서면의 제출 등으로 추가 심리가 필요한 부득이한 경우에는 3차에 한하여 갱신할 수 있다. 〈개정 2007. 6. 1.〉
③제22조, 제298조제4항, 제306조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공판절차가 정지된 기간 및 공소제기전의 체포ㆍ구인ㆍ구금 기간은 제1항 및 제2항의 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 〈신설 1961. 9. 1., 1995. 12. 29., 2007. 6. 1.〉
」
증인 수십명, 녹음파일 재생 수십개 재생하다가 구속 다 끝난다
이처럼 구속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구속기간 안에 심리를 끝내기 어려워진 최근 재판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월부터 검찰 조사 과정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면서, 법정에서 직접 증인신문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 피고인이 많고 복잡한 사건일 경우, 심리에 필요한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매년 2월 재판부가 바뀐 뒤 과거 재판의 녹취파일을 모두 재생하는 것도 재판 장기화의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재판 장기화로 구속기간 내에 심리를 끝내지 못하는 현상은 대장동 관련 재판에서도 나타난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도 구속기간을 꽉 채운 뒤 풀려났지만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석방되면 재판 받다 도주해도 방법이 없다”
구속기간 연장은 법원 내에선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사안으로 취급된다.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구속 기간이 더 필요하다는 데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인권 침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서다. 김 연구위원은 “구속기간 연장은 모두가 필요성을 느끼지만 누구도 논의를 시도하지 못해, 이번에 논의의 장을 만들어보고 싶어 보고서를 썼다”며 “더 많은 토론을 거쳐서 방향을 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구속기간 연장을 연구 주제로 제안한 이재희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1심 유죄 판결이 난 외국인 사건 항소심을 맡았는데, 좀 더 심리를 해보면 무죄판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보통 구속기간 만료 이후 피고인이 사라져버려 재판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예상돼 심리를 빠르게 진행한 적이 있다”고 제안 취지를 밝혔다. 토론에선 “피고인이 석방되면 재판 받다 도주하더라도 방법이 없고, 소환장 받고도 출석하지 않을 경우 강제할 방법이 없다”(곽경평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주장도 나왔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구속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재판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구치소 접견 제도를 개선하고, 재판 자료를 원활하게 열람·복사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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