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Z여자들] 20번은 더 본 미드 '프렌즈', 내가 왜 이러냐면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편집자말>
[이수현 기자]
본 것을 반복해서 보는 습관이 있다. 특히 좋아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닳도록 돌려 보는 것을 좋아한다. 넷플릭스로 뭘 볼지 고민하다 시켜둔 치킨이 식어버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나는 볼 게 없으면 주저 않고 항상 누르게 되는 단골 메뉴가 정해져 있어 치킨이 식을 겨를이 없다.
▲ 제일 좋아하는 미드 <프렌즈>. 시즌 1부터 10까지 20번은 더 돌려 본 것 같다. |
ⓒ NBC |
제일 좋아하는 미드 <프렌즈>는 시즌 1부터 10까지 20번은 더 돌려 본 것 같다. 대사와 에피소드를 모두 기억하고, 친한 친구들에게도 프렌즈를 전파해 프사모(가칭 '프렌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끼리 대사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혼자서 요리를 할 때나 너무 적막하게 느껴질 때, 나만의 백색소음처럼 틀어두고, 라디오처럼 듣기만 해도 어떤 장면인지 등장인물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본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울푸드처럼 '아는 맛'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김밥천국에 가서 '오늘은 색다르게 오징어덮밥 같은 걸 먹어볼까' 하다가도 결국 쫄면에 참치김밥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회사에서 괜한 실수를 한 날, 당황하며 급하게 자료를 찾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고, 점심시간에 내가 먹고 싶었던 바로 그 메뉴는 재료 소진으로 품절이 되고, 퇴근하다 바로 눈앞에서 버스를 놓친 바로 '그 날'.
이 세상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내 편이 아닐 때, 보장된 즐거움에 안락하게 기대고 싶어진다. '프렌즈'는 뇌의 뉴런들이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기 벅찬 날 번뇌를 없애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그렇게 '아는 맛'을 계속해서 음미하다 보면, 등장인물들과 그야말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 <프렌즈>는 뉴욕에 사는 6명의 친구들이 20대에서 30대까지 성장해나가는 사랑과 우정 이야기이다. "뉴욕에 사는 젊고 예쁜 남녀 친구들"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드라마를 시작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결코 완벽하거나 멋지지만은 않다.
모니카는 친오빠인 로스의 후광에 가려져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랐고, 챈들러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린 시절 좋은 추억이 별로 없는 시니컬한 어른이 되었다. 인기녀 레이첼과 모범생 로스는 크게 모난 것 없어 보이지만 각자 파혼과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었고, 피비는 가난하고 위험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조이는 바람둥이에다 월세를 낼 돈이 없는 가난한 연극배우이다.
그러나 모니카는 본인의 재능인 요리로 친구들을 호스팅 하는 것을 좋아하며, 누구보다 오빠와 가족을 사랑한다. 시니컬해 보이는 챈들러도 마음 한구석은 누구보다도 여리고 따뜻하다.
로스와 레이첼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귀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오해와 좌절을 겪게 되지만, 결국은 자신과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법을 알게 된다. 피비와 조이는 가장 독특한 인물들인데, 그들은 남들의 시선을 전혀 (때로는 너무) 신경 쓰지 않아서 난감할 때가 있지만, 인생의 태도는 누구보다 솔직하고 순수하며, 그로 인해 개성 있고 독특한 자신만의 삶을 이루어간다.
▲ 프렌즈 레고 나의 프렌즈 사랑을 보여주는 3단 프렌즈 레고 |
ⓒ 이수현 |
이처럼 6명의 주인공은 매우 입체적이어서, 미운 구석과 사랑스러운 구석을 모두 지니고 있다. 꿀밤을 먹이고 싶을 만큼 얄미울 때도 있지만 결국엔 미워할 수 없이 안아주고 싶다.
그것은 마치 일상생활 속의 우리들과 같다. 며칠 전 대학 베프들과 모인 날 "Y는 맨날 늦는데, 가끔 내가 늦는다고 하면 정말 너그럽게 천천히 오라고 해서 그게 너무 좋아"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단점이 있는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20대 초중반 사회 초년생 때 시작해 30대 중반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곁에는 항상 <프렌즈>가 친구처럼 나를 위로해 주었다. 주인공들이 불안한 20대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30대의 모습으로 나아갈 때, 그것이 20대의 나에게 희망적이고 안정적으로 느껴졌고,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는 과정을 겪으며 드라마 속 친구들과 함께 성장했다.
10년, 20년 뒤에도 프렌즈를 계속 보고 있을까? 그때는 나의 20대와 30대를 다시 되돌아보며 또 다른 해석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I'll be there for you~"(네 곁에 있어줄게)로 시작하는 오프닝을 습관처럼 보고 또 보며, 나의 6명의 친구들과 함께 '아는 맛'의 안락함에 기대 나이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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