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안고 올라온 서울... 대학가는 '한숨 가득'
[김주원 기자]
▲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학식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
ⓒ 김주원 |
학식 아니면... 부담스러운 밥값
"줄이 너무 길어서 학식 먹기가 어려워요."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교에서 만난 학생 방아무개씨(21)는 점심시간이 걱정이다. 조금만 늦으면 학생 식당에 자리가 없어 학식을 먹기 어려워서다. 최근 학생 식당 가격을 500원 인상했지만 5000~7000원이면 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학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주변 식당에 비해 저렴해서다. 방아무개씨는 "확실히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식비 지출이 많아진 것을 느낀다"며 "식비가 10만 원 정도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복학한 국민대학교 학생 임아무개(26)씨 또한 마찬가지다. 평소 교내 매점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길 좋아해 식비 지출이 크지 않지만, 일반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면 물가를 체감한다고 한다. "찌개 하나 먹는데 9000원 정도 내는데 전보다 물가가 많이 올랐음이 느껴진다"며 "남들보다 식비에 들어가는 비용은 적지만 이전보다 5만 원 정도는 더 지출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3월 자장면과 칼국수, 김밥 등 대표 외식 품목 8개의 서울지역 평균 가격이 작년보다 많게는 16.3%까지 뛰었다.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품목은 자장면으로, 지난해 3월에는 5846원이었지만 지난 3월엔 6800원으로 16.3% 오르면서 7000원 선을 넘보고 있다. 이밖에도 김밥(10.3%), 비빔밥(8.5%), 칼국수(7.5%), 김치찌개(7.5%), 냉면(7.3%) 등 조사 대상 품목의 가격이 모두 상승했다.
▲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인근 공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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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에 속이 타는 것은 학생뿐만이 아니다. 실내외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고 학생들이 많아져 이전보다 손님은 늘었지만, 식재료 가격은 올랐다. 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3월 전국의 외식물가 지수는 116.38로 전년 동월 대비 7.4% 증가했는데, 식당에서 주로 사용하는 재료 가운데 가공식품 가격이 높게 뛰었다. 구체적으로 물엿(24.1%), 밀가루(19.8%), 참기름(18.9%), 식용유(18.6%), 국수(16.5%) 등 가격이 올랐다. 최저임금과 가스·전기 요금 상승도 가격 인상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대학생을 상대해야 하는 위치에서 영업하는 탓에 가격을 더 올릴 수는 없는 대학가 식당 상인들 또한 속이 타는 상황이다.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어 있는 상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근처 식당가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가스비와 전기료가 올랐지만 아무래도 대학가에서 장사를 하다보니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B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격 수업을 진행하던 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원자재가 10~20% 정도 올랐다. 하지만 가격은 그만큼 올릴 수가 없다. 나도 학생 시절이 있기 때문에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눈치 보인다. 코로나 이후 완전한 대면 수업을 하고 있지만 코로나 이전보다는 매출이 확실히 감소한 것이 느껴진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비싸도 들어가야죠... 울며 겨자 먹는 학생과 부모
높아진 물가에 오르는 것은 식비뿐만 아니다. 고물가에 더해 난방비·전기요금 등 공공요금까지 인상되자 월세도 함께 상승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 주요 대학가 인근 지역 원룸 시세를 분석한 결과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전용면적 33㎡ 이하 원룸 평균 월세는 59.6만 원이었다. 지난해 3월과 비교하면 15.14% 상승했다.
서울 경희대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하는 김아무개씨(25)는 "저번 2월 기존에 살던 방 계약이 끝나서 새로 방을 알아보는데 이전에 살던 집보다 좋지 않은데도 월세는 10만 원 정도 더 내야한다"며 "부모님이 월세를 지원해주시는데 내색은 안하시지만 약간은 더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회기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C씨(40대)도 "지난 여름부터 월세가 10만 원가량 올랐다. 평균적인 원룸을 구하려면 이전엔 보증금 1000만 원에 40~50만 원이면 해결했지만 현재는 보증금 1000만원에 60~70만 원은 줘야 한다. 학생들도 학생들이지만 부모님들이 놀라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숙사 입사 또한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의 기숙사 입사 경쟁률은 지난해보다 상승했다. 수용률 또한 지난해 수도권 대학의 평균 기숙사 수용률은 18.3%로 신청인 10명 중 2명만 기숙사에 들어갈 수준으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월세는 오르지만 기숙사 입사는 어렵고, 학업은 이어가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원룸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 대학가 부동산에 매물 정보가 붙어있다. |
ⓒ 김주원 |
부동산 플랫폼 업체 다방에 따르면 월세보증금 1000만 원, 전용면적 33㎡ 이하 기준 지난 1월 이화여대 인근 원룸 월세는 전년 동월에 비해 22.75% 상승했다. 그 다음 상승률이 높은 곳은 연세대(13.99%), 서울대(12.29%), 경희대(11.01%), 고려대(5.67%) 순이었다.
그러나 주요 대학가 월세 상승에도 빈 방은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희대 인근에서 원룸을 계약한 김아무개(25)씨는 "며칠만 늦었으면 방을 구할 수 없을 뻔 했다"고 전했다. 회기동에서 중개업을 하는 C씨는 "작년 여름부터 월세가 상당히 올랐음에도 굉장히 공실이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 인근 중개업자 D씨는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기 버겁다며 "신촌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최근 전세사기 사건에 더해 금리가 많이 올라 전세가 아닌 월세를 많이 찾는다"면서 "지금은 대학생 뿐만 아니라 취업 시장이 안좋아져 취업 준비를 오래 하는 취준생에 외국인 유학생, 직장인들 수요까지 많아져 대학생들이 방을 구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졸업은 했지만 취업을 준비 중인 김아무개(27)씨는 "타 지역도 알아봤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학가 월세가 저렴하다"며 "대학가 주변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밥값도 그나마 아직은 저렴한 편이다. 이미 취업을 한 동기들도 대학가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고 대학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답답한 것은 방을 구하기 어려운 대학생과 청년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중개업자 E씨는 "10년 넘게 이 일을 하면서 이렇게 거래가 없는 건 처음이다. 원룸을 구하러 오시는 손님들을 돌려 보낼 때마다 곤란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떠날 수 없는 수도권
이러한 대학가 물가 상승, 주거난 등의 문제 원인이 서울 집중 현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소재로 한 대기업은 75%, 중소기업은 50%에 달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일컫는 이른바 'SKY' 대학을 비롯해 기업들이 선호하는 주요 대학은 서울과 수도권에 포진돼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 탓에 청년들이 지방에서 상위 대학과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린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2021년 기준 인구감소가 진행되는 89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자체의 주요 인구감소 요인은 청년층의 도시 이주였다. 이주 지역은 역시 수도권이었다. 2016 ~ 2020년 인구유출지역에서 유출된 청년층 중 14.8%은 경기도, 14.7%는 서울로 유입됐다.
감사원이 분석한 '인구구조변화 대응실태'를 보면 2047년에는 전국 229개 시·군·구가 인구학적으로 쇠퇴위험단계로 진입하고, 2067년에는 13개 지역을 제외한 전국 216개 시·군·구(94.3%)가 소멸 고위험 단계로 높아진다. 수도권과 부산, 광주, 대전 등 광역 대도시를 빼면 미래에는 전국 대부분이 소멸을 맞이할 전망이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가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서울 집중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 서울 집중을 해소하지 않는 이상 문제를 고치기는 힘들다. 구조적인 해결방안은 역시 서울 집중 해소다. 아무리 정책을 내어 놓아도 서울 집중 해소를 못하면 대학가에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들 외에도 저출산, 주거난, 교육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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