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포커스] ‘160.1㎞/h’ 김서현이 남긴 그 이상의 강렬함
차승윤 2023. 4. 21. 15:49
한화 이글스 투수들이 KBO리그에 충격파를 연일 던졌다. 문동주(20)가 시속 160㎞ 돌파를 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김서현(19)이 그 못지않은 강렬한 공을 뿌렸다.
김서현은 지난 19일 두산 베어스전 7회 초 프로 데뷔 후 1군 마운드에 올라 1이닝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예상보다 승격이 빨랐다. 한화는 김서현을 개막 엔트리에 넣지 않았다. 지난해 문동주가 그랬듯 서두르지 않고 단계별로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퓨처스(2군)리그로 간 김서현은 5경기 7이닝 1홀드 평균자책점 1.29 11탈삼진을 남겼고, 19일 드디어 1군에 올라갔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은 "2군에서 하도록 당부했던 것들을 김서현이 잘 수행했다고 보고 받았다. 1군에서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기에도 적절한 시기였다"고 했다. 엔트리에 들자마자 마운드에 올랐다. 5-5 동점으로 팽팽한 때였다. 김서현이 나타나자 구장의 공기가 변했다. 홈팬들은 마무리 투수가 등판한 것처럼 환호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
공은 예상보다 더 빨랐다. 호세 로하스에게 초구 직구를 던지자 전광판에는 시속 156㎞가 찍혔다. 4구 연속 직구가 날아와 로하스를 윽박질렀고, 그 후 스트라이크존 하단에서 꺾여 달아나는 시속 139㎞의 고속 슬라이더가 로하스를 땅볼로 제압했다.
커리어 첫 탈삼진도 바로 나왔다. 후속 타자 허경민은 김서현의 광속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 공 2개를 더 커트하며 버텼지만, 결국 8구째 얼굴 높이로 솟아오르는 공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윽고 최고 구속이 나왔다. 김서현은 이유찬을 상대로 2구째 몸쪽 높은 직구로 파울을 얻었다. 이 공은 PTS 기준 시속 157.9㎞를 기록했다. 트랙맨 레이더 기준으로는 시속 160.1㎞에 달했다. 시속 157.9㎞는 문동주, 최대성(시속 158.7㎞) 안우진(시속 158.4㎞·시속 158.2㎞)에 이은 역대 국내 투수 5위 기록이다.
KBO리그 공식 기록은 PTS를 따른다. 다만 두 측정 모두 정답이다. 기록이 상이한 건 측정 지점이 달라서다. PTS는 홈플레이트에서 50피트(15.24m) 떨어진 지점에서 공을 측정하고 트랙맨 레이더는 그보다 투수와 더 가까운 홈플레이트와 54.5피트(16.61m) 지점에서 구속과 무브먼트를 잰다. 공이 뿌려지는 위치와 더 가까운 만큼 실제 구속 측정도 트랙맨 레이더가 시속 1마일(1.6㎞) 가까이 빠르게 나온다. 앞서 문동주가 PTS로 160.1㎞를 기록했을 때 역시 트랙맨 레이더로는 시속 161㎞가 찍혔다.
힘으로 이유찬을 압도한 김서현은 4구째에도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으로 광속구를 꽂았고, 이유찬은 미처 방망이를 내보지도 못하고 삼진을 빼앗겼다.
구속보다 강렬했던 건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 있게 공을 뿌리는 태도였다. 구속이 빠른 신인 투수는 매년 나왔다. 그러나 김서현처럼 데뷔전부터 자신감 있게 1군 타자들과 맞붙는 투수는 극히 드물었다. 이날 김서현이 던진 17구 중 13구가 스트라이크였다. 말 그대로 두산 타자들의 스트라이크존에 광속구를 사정없이 때려 박았다.
그래도 긴장은 했다. 경기 후 만난 김서현은 "팬분들께서도 많이 오셨고, 야간 경기이다 보니 몸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며 "1군 승격 전 홈런 맞는 꿈을 꿨다"며 웃었다. 서울고 재학 시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홈런을 맞아본 적 없던 그는 앞서 8일 퓨처스 두산전에서 인생 첫 피홈런을 맛본 바 있다. 그는 "2군에서 맞았던 홈런이 꿈에 또 나왔다. 불안하기도 했는데, 경기가 잘 돼 다행"이라고 했다.
김서현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는데, 구속 기록이 나와 너무 좋았다. (문동주 형의) 최고 구속 신기록을 깨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며 "2군에 갔던 이유도 제구 (부족) 때문이었기에 구속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투구 밸런스를 찾으면서 이제 제구에 안정감이 생겼다"고 했다.
가장 좋았던 공으로는 첫 탈삼진이 아닌 두 번째 탈삼진을 꼽았다. 그는 "허경민 선수 타석 때 삼진은 풀카운트에서 너무 높게 들어간 공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이유찬 선수에게 삼진을 잡았을 때 들어갔던 공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타자가 스윙도 나오지 못하고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갔다"고 떠올렸다.
이날 김서현은 17구 중 직구 11개를 던졌다. 그중 스트라이크만 10개였다. 큰 변화다. 수베로 감독은 경기 전 "2군에 가기 전 김서현은 슬라이더를 굉장히 많이 던졌다. 타자들이 본인 공에 아예 콘택트하지 못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며 "그러면 그의 다른 장점인 직구를 외면하게 된다. 그래서 (직구를 많이 던져보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김서현은 "2군에서 직구를 많이 써보면서 자신감이 더 붙었다. 2군에서 많이 맞아보니, 오히려 더 맞자는 생각으로 던지게 됐다"고 했다.
첫인상이 강렬했지만, 당장 중책을 맡을 것 같지는 않다. 수베로 감독은 "김서현은 재능으로 보면 향후 KBO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가 될 선수"라면서도 "그러기 위해 올라야 할 계단들이 많다"고 했다. 입단 전 '50세이브' 목표를 외쳤던 김서현은 "오늘 같은 경기가 매일 있을 수 없다. 그래도 꾸준하게 해 조금 더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보겠다"고 다짐했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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