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자 신용보험 의무가입, ‘전세사기 사각지대’ 대안될까

김경희 2023. 4. 2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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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지난해 12월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대출자가 죽거나 크게 다쳤을 때 보험사가 빚을 대신 갚아주는 ‘신용보험’이 전세사기 대책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빌라왕’ 사건처럼 집주인이 사망하면 전세보증금반환 보증 보험에 가입돼 있어도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기 힘들다는 게 문제인데, 신용보험이 활성화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거란 주장이 나온다.

신용보험이란 대출고객이 사망, 상해 등 보험사고로 채무를 갚을 수 없을 때 보험사가 약정한 채무액을 대신 상환해주는 상품이다. 크게 대출자가 사망ㆍ중증 질병일 경우 보장되는 신용생명보험과 재산상 손해, 비자발적 실업까지도 보장해주는 신용손해보험으로 나뉜다.

금융권에선 보증기관조차 세입자를 온전히 보호할 수 없을 때 신용보험이 ‘이중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사망했을 때, 현재는 세입자가 전세금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돈을 돌려받기 힘들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같은 보증기관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먼저 지급하려면 구상권을 청구할 상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4촌 이내 친족이 주택에 대한 상속을 마쳐야 대위변제 절차가 시작되는데 언제 마무리될지 알기 어렵다. 유가족이 상속을 포기해 집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선순위 세입자가 아니라면 전세금의 일부만 돌려받고 이사해야 한다. 이때 집주인이 신용생명보험에 가입했다면, 보증기관은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아 이를 바로 세입자에게 지급할 수 있게 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본, 독일,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신용보험이 활성화돼 있는 편이다. 특히 일본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의무적으로 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신용생명보험의 경우 2002년부터 BNP파리바 카디프 생명 등 3개 보험사만 판매 중인데 연간 수입보험료는 5억원 미만으로 전체 수입보험료의 0.0005% 수준에 불과하다. 신용손해보험도 현대해상 등 5개사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신용보험이 ‘전세사기 사각지대’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관련 논의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7일 신용보험 판매 규제를 완화하는 ‘금융소비자 보호법’을 발의했다. 현재는 은행 등 금융회사가 대출해줄 때 보험 등 다른 금융상품을 같이 판매(소위 ‘꺾기’)할 수 없게 돼 있다. 최 의원은 “신용보험은 유가족의 빚 대물림이나 개인신용 하락을 방지해 금융사의 건전성과 사회 안전망 강화에 기여하는 수단인 만큼 ‘꺾기’ 규제를 적용해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를 외면하는 시대착오적 금융 행정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보험 판매 관련 민원이 늘어날 수 있어 은행 등 대출기관이 소극적일 수 있다는 게 한계로 지적된다.

신용보험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보증기관이 보험사와 단체보험 계약을 맺어 집주인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보증기관이 보험료를 부담하기 때문에 임대인의 동의만 얻으면 세입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신용생명보험을 가장 활발하게 판매 중인 BNP파리바 카디프생명의 문선아 상무는 “단체보험은 다수가 가입하고 보장 금액에도 한계를 둘 수 있기 때문에, 보험사로선 손실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다만 추후 신용보험이 활성화될 경우 고객이 채무를 갚지 않기 위해 보험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에 대한 대책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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