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엔 '난독 의심' 中엔 '국격 의심'...尹의 '선명한 원칙대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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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재확인하는 '정공법'
최근 러시아, 중국과 차례로 불거진 공방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의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 대해 양국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중·러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과거와 달리 우크라이나 지원, 대만 문제에 대해 한국의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과도한 비난에 대해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러시아는 윤 대통령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한 발언을 문제 삼으며 인터뷰 공개 당일 "무기 제공은 반(反)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크렘린궁 대변인), "무기 공급은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외무부)는 등의 공개적인 반발을 쏟아냈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까지 나서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북한의 손에 있으면 한국이 뭐라 할지 궁금하다"며 북한까지 끌어들여 위협했다. 한국이 역대 정부에서 한반도 문제 관련 협조를 구하기 위해 러시아와 각을 세우는 걸 꺼려했던 점을 역이용한 공세였다.
그러자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러시아의 공세 직후 "윤 대통령의 로이터 통신 인터뷰를 정확히 읽어보라"며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등이 발생하면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지원할지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고 받아쳤다. "전제가 있는 발언이었고, 가정적 상황을 상정한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어 이튿날인 20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는 향후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검토하는 조건으로 ▶대규모 민간인 공격 ▶대량학살 ▶전쟁법 중대 위반을 제시한 뒤, 공을 러시아에 넘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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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에 "국격 의심" 받아쳐
중국 또한 지난 20일 "힘에 의한 대만 해협의 현상 변경을 반대한다"는 윤 대통령의 인터뷰 발언을 문제 삼으며 왕원빈(汪文斌)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 "타인의 '말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외교부는 중국에 대해서도 같은 날 오후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다", "국격을 의심하게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며 이례적으로 강한 수위로 비판했다. 입장문 발표 직후엔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를 초치해 중국 측 주장에 대한 강한 유감 표명과 함께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정부 소식통은 "대변인급 인사가 한 국가의 정상에 대해 '말참견'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데에 대해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며 "과거 중ㆍ러가 거친 언사를 쓸 때도 저자세 외교를 해왔던 게 오히려 우리 발목을 잡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특히 여러 문화적 정서를 공유한 측면이 많은 아시아 국가 간 외교에서 상대국 정상을 직접 겨냥한 표현은 상호가 민감하게 여기는 영역"이라며 "이번 중국 측의 대응은 분명 선을 넘은 측면이 있다"고 했다.
다만 중국도 굽히지 않는 모양새다. 21일 친강(秦剛)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상하이에서 열린 '란팅(藍廳) 포럼' 연설에서 "대만 문제에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며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 핵심"이라고 말했다.
'불장난'은 중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반복해서 써온 표현으로 이날 친 부장이 윤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다. 그러나 최근 양국 간 설전을 고려할 때 사실상 한국을 겨냥해 견제 메시지를 던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상께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을 언급 한 데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무례한 발언을 한 것은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며 "우리 정부는 이를 용납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맞대응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 존중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며, 중국 측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중국이 언행에 신중을 기하라"고 당부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연일 한국 지원 사격에 나섰다.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협박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한국과 조약 동맹이며 (방위) 약속을 매우 진지하게 여긴다"고 답했다. 전날 미 국방부 대변인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외교적 부담 감수 선택
윤 대통령이 국빈 방미 전부터 중ㆍ러의 반발을 상대하는 외교적 부담을 감수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 문제 등에 있어 미국 등 서방과 연대를 공고히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ㆍ중ㆍ러 3각 연대가 한반도에서 가하는 위협을 제어할 실질적 북핵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다만 대중, 대러 관계 관리는 윤 대통령의 방미 이후에도 이어질 과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근 '한ㆍ미ㆍ일' 대 '북ㆍ중ㆍ러'의 전선은 더 선명해진 것으로 보이며, 이런 상황에서 자칫 한국이 한ㆍ미ㆍ일 협력구조에서 이탈하게 될 경우 급속한 위기 국면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ㆍ러는 한국을 여전히 한ㆍ미ㆍ일의 약한 고리로 간주하고 당분간 더욱 공세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중ㆍ러의 선 넘은 공세에는 감정을 자제하고 보편적인 국제 규범에 기반해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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