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논란]②"현행법은 자사주 맞교환 등 지배주주 제어 못해"…사안별 규칙 제정 주장도
“주식 1주당 가치 보호해야…특칙은 주주 보호 원칙화 부정”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상법 제382조의3 개정안).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안의 가장 큰 쟁점은 회사와 주주의 이해상충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개정안을 두고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의 찬반이 갈리는 것도 기업 경영(재계)과 주주의 권익(소액주주·금투업계)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른 양측의 입장 차이 때문이다.
법인이익 독립론 vs 주주의 비례적 가치 보장
상법 개정안의 쟁점은 법인이익독립론에서 출발한다. 법인이익독립론이란 법인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다르다는 의미다. 법인격과 주주는 별개로 보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에서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대표이사나 기업 임원(이사회)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나아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해도 이사에게 책임이 없다는 해석으로도 이어진다.
법인이익독립론에서 회사의 이익을 법인 계정 거래로 한정한 점도 주주에 불리한 대목이다. 기업의 주식 가치 증감은 회사의 이익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 판단으로 주주가 손해를 입어도 법적으로 따질 수 없는 이유다.
2009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관련 대법원 판례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신주 등의 저가 발행으로 인한 회사의 손해와 주주의 손해는 마땅히 구별되어야 한다"며 "회사의 손해는 주주들이 입는 손해와는 그 성질과 귀속 주체를 달리하고, 그 평가 방법도 다르다"고 판시했다.
에버랜드가 저가로 신주를 발행해 기존 주식 가치가 하락해도 회사에 손해가 있다고 볼 수 없고, 특히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을 분리해 평가하는 배임죄의 원칙을 고려하면 이사회의 결정은 유죄가 아니라는 해석이다.
재계가 개정안을 반대하는 논리는 위와 같은 법인이익 독립론에 근거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충돌하면 이사회는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론자는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은 별개일 뿐 충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심혜섭 한국거버넌스포럼 변호사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는 표현은 주식 1주당 가치를 보호한다는 의미"라며 "현행 상법은 회사의 이익만 보호하고 있으므로, 주주의 이익도 함께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지배주주(오너 일가)와 소액주주의 이해상충
지배주주(오너 일가)와 소액주주의 이해상충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도 갈린다. 법인이익 독립론을 밀고 나가면 지배주주가 주가 상승 기회를 포기하거나 주식가치의 비례성을 훼손시키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회사의 이익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인적분할, 의무공개매수, 인수·합병(M&A) 등 각종 자본거래에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갈등이 발생해도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없다는 의미다.
이를 전제로 재계는 기업 경영에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시각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재계 관계자는 "지배주주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 확대에 집중하지만, 소액주주는 배당 확대나 주가 상승 등 단기적인 이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배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경우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배당 확대 등 주주 이익만 우선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애플과 버크셔해서웨이 사례를 들며 반박했다. 이 의원은 "워런 버핏은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주주에게 기업 가치를 더 크게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며 "애플이나 버크셔헤서웨이처럼 주주와 소통하며 이견을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론자는 무엇보다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부를 편취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상황을 지적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일, 지주사 전환 시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사주 마법을 활용하는 일 등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행위"라며 "현재 상법은 이를 법적인 불공정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지배주주의 사익 편취 행위를 견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자본시장법 특칙이냐 상법 원칙이냐
상법 개정론자들은 주주 보호를 기본 원칙으로 삼을 기회라고 강조한다. 경제 관련 법적 다툼에서 상법은 헌법의 지위를 갖고 있어서다.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해야 투자자 보호 원칙이 마련된다는 입장이다.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쪽은 주주 보호 문제를 특칙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정부가 내놓은 투자자 보호 방안(물적분할 규제, 3%룰, 자사주 매입 규제 검토)이 대부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물적분할 논란이 커지자 주주 보호 의무를 도입하는 대신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특칙을 만든 것이 예다. 자사주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영권 방어를 목적으로 자사주를 맞교환(매각)하는 경우 신주 발행 규정에 따르도록 하는 규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상법 개정론자들은 물적분할, 자사주 매입 등 논란이 불거질 때만 특칙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주주 보호 원칙화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별 사안마다 맞춤식 규칙으로 대응하는 방식은 시혜적 시각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특히 M&A 등 금융기법이 발달할수록 규정의 문구를 우회하기 쉽다"며 "물적분할 등 예상 못 한 행위가 발견될 때마다 새로 규정을 만드는 사후약방문 처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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