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고 막으려면 보증비율 줄여 월세로 돌려야"

심나영 2023. 4. 21.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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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사태로 전세계약에 대한 경각심 높아져
한국금융연구원 '전세제도의 거시경제적 위험과 정책과제' 발표
전세 이점도 있지만 '불완전한 사적계약'의 부작용이 훨씬 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전국적으로 전세 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제도의 보증 비율을 낮춰 전세 제도의 부작용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보증 비율을 낮추면 전세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대체하는 '보증부 월세 계약'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불안전한 사적 계약을 계속 유지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비용이 덜 든다고 했다.

21일 한국금융연구원에서 나온 '전세제도의 거시경제적 위험과 정책 과제' 보고서는 전세제도가 계약당사자와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만기에 계약 불이행해도 임대인에 페널티, 임차인에 보상 없어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가장 먼저 꼽은 문제점은 거래 상대방 위험에 대한 보완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전세 사기 사태도 여기에서 문제가 비롯됐다. 전세 계약에선 거래 만기시점에 계약을 불행할 때 받는 페널티를 정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계약 2년이 끝난 후 임대인이 전세보증금 반환을 못 하면 이건 채무불이행이지만, 전세 계약에선 이런 경우 임대인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임차인은 어떻게 보상할지를 충분히 명시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전세 거래는 실질적으로 자금을 빌리는 임대인의 신용 상태를 임차인이 충분히 점검하기 힘들다. 임차인은 해당 주택에 대한 담보 설정과 채권 순위를 확인하고 확정일자를 설정하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임대인의 신용 상태, 연체 이력 같은 전세보증금 반환에 영향을 미칠 요인을 아는 데 한계가 있다.

보고서를 쓴 박춘성 연구위원은 "은행은 특정 개인에게 대출해주기 위해 소득, 신용점수, 과거 연체 이력을 통해 상환능력을 평가하고 연체가 발생하면 재산과 소득에 대한 압류가 발생하지만, 전세 계약은 상환을 담보하기 위해 안전장치가 부족한 주택을 매개로 한 '개인 간의 거래'"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임대인이 은행에서 돈 빌리는 거지만 신용평가 안 받고 LTV·DSR 규제 사각지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집을 살 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건전성 규제를 받지만, 전세 계약은 개인 간 금전거래라 금융규제가 적용 안 되는 것도 문제다. 박 위원은 "예를 들어 임대인이 주택을 담보로 LTV 40%만큼 대출이 있고, 주택가격의 40%로 전세보증금 계약을 하면 임대인은 이를 통해 80% 대출을 받는 것과 같다"며 "전세 거래에서 임대인의 전체 부채 수준이나 소득은 고려 대상이 아니므로 DSR, 즉 전세보증금 반환 위험 자체를 평가할 수 없어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전셋값이 단기간에 급락하지 않고 임대인이 전세 계약 만료 때 새 임차인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세보증금 상환 위험은 매우 커진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 최근 금리 인상 시기에 역전세나 깡통전세 문제가 터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세 계약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게 방법이지만, 전세는 '합법적인 사적 거래'라 정부가 개입하는 데 제약이 있다.

전세대출 보증 줄여서 전세보증금 리스크 알려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0일 국회에서 열린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지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해결방안은 무엇일까. 박 위원은 "전세자금대출 보증을 조정하는 것은 공적 기관이 완급을 조절해 직접 수행할 수 있으므로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며 "보증 비율을 낮춰 전세보증금이 경제적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장에 알려야 한다"고 했다.

보증제도로 인해 그동안 금융사의 여신심사는 제 기능을 할 필요가 없었고 임차인도 손쉽게 대출받을 수 있었다. 보증금이 상승하는 상황에서도 집값 상승기에 전세자금대출이 크게 증가하는 기현상을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보증제도가 임차인의 전세자금 마련을 돕겠다는 취지로 마련됐지만 실제론 임대인의 대출 상황 리스크에 대한 보증 역할을 하는 것도 문제다. 임대인이 대출을 받으면 이 자금은 전세 계약을 통해 임대인에게 지급된다. 금융회사의 검증도 한번 안 받아본 임대인에 대한, 즉 LTV와 DSR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대출에 보증을 서는 셈이다.

박 위원은 "현재 전세자금대출은 보증회사(주택도시보증공사, 주택금융공사, SGI서울보증)를 통해 거의 100% 보증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만약 이 비율이 줄어든다면 대출로 조달할 보증금 규모가 작아지고 월세 계약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며 "임차인이 저금리 시기에는 월세보다 낮은 비용으로 전세에 살고, 임대인은 목돈을 조달할 수 있는 전세의 이점이 있지만, 이 이익이 대문에 불완전한 사적 계약을 유지하는 것은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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