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임원 대거 배출하던 국립대가 망가진 이유

전국교수연대회의 최인철 2023. 4. 2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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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3] 정부가 방치한 지역 국공립대... "예산 부족이 경쟁력 후퇴 가져와"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출범 후 처음으로 내놓은 대학 규제완화 정책을 두고 '지역 대학 죽이기'라는 비판이 상당합니다. 자율과 혁신, 규제개혁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지역대학과 지역경제의 쇠락을 재촉한다는 주장입니다. '공공적 고등정책을 요구하는 전국교수연대회의'가 관련된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5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전국교수연대회의 최인철 기자]

 대학 개강일인 지난 3월 2일 오전 경상도 한 대학 입구에 추가 모집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이 대학은 올해 정시 모집에서 8개 학과가 지원자 0명이었다.
ⓒ 연합뉴스
 
17년여 전으로 기억한다. 당시 삼성전자 임원 중 경북대학교 출신이 가장 많다는 보도가 나왔다. 갓 신임 교수로 임용된 나와는 달리 대학의 기존 구성원들이나 지역민들은 그 보도에 크게 놀라거나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만큼 소속 대학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경북대학교뿐만 아니라 지역에 산재한 다른 국립대학들도 나름의 위상을 가지고 지역민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당시에도 국립대학의 위상 저하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결의 우려였다.

지금은 어떨까. 지역에 산재한 국립대학이 느끼는 위기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국립대학들이 더 이상 지역의 인재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이 아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방 국립대에 입학한 학생들 5명 중 1명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한다. 사실 이들은 대학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국립대학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부분 수도권 대학으로의 재입학을 위해 자퇴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등교육의 위기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는 듯하다. 물론 학령인구의 감소가 고등교육의 위기로 연결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지난 2021년 대학의 입학 정원은 47만 4000명이었지만, 대학에 입학한 학생의 수는 43만 3000명이었다. 대학들이 4만 명 정도의 신입생을 충원하지 못한 것이다. 이 괴리는 내년에 10만 명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타격은 수도권 대학보다 비수도권 대학에 집중될 것이다. 지난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대학 입학생 수의 증감률을 살펴보면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 감소했다. 감소율은 수도권에서 멀리 벗어난 대학일수록 커진다.

한 가지 의문은 대학이 맞이한 위기가 초등이나 중등 교육에서는 절박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벽지의 초·중등 학교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이를 두고 초·중등 교육의 위기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대학은 초·중등 교육에서와 달리 학령인구의 감소가 위기로 연결됐을까?

그 답은 재정의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OECD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국내 중고교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 7078달러로 이는 OECD 평균보다 49.8% 더 많은 금액이다.

반면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 1287달러로 OECD 평균의 64.3%에 불과하다. 공교육비는 정부나 민간이 교육에 사용한 전체 비용인데 이 중 정부의 재정 비중은 38.3%에 불과하다. 초·중등 교육의 정부 재정 비중이 90.4%에 달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홀대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반값 등록금이 국립 대학에 미친 영향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대학 개강일인 지난 3월 2일 오전 경상도 한 대학 강의실과 복도가 수업이 없어 불이 꺼져 있다. 이 대학은 올해 정시 모집에서 8개 학과가 지원자 0명이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초·중등 교육과 달리 대학 교육을 민간의 영역으로 보는 듯하다. 그런데 정치권은 필요할 때마다 개입해서 대학의 교육을 휘저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반값 등록금제도다.

학생들의 높은 등록금 부담을 완화한다는 명분으로 시행한 반값 등록금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건 국가의 정책에 순응해야 하는 국립대학이다. 이 제도로 지난 2008년 345만 원이었던 국립대학의 학생 1인당 순등록금은 2018년 155만 원까지 줄었다. 순등록금이란 학생들이 낸 등록금 수입에서 장학금으로 지출된 금액을 제외한 금액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국공립대학에 약 5000억 원을 지원했지만 동시에 정확히 그만큼의 국가 장학금도 늘렸고 그 결과 순등록금도 줄어들었다. 결국 국공립대학들은 줄어든 등록금 수입을 교육과 연구의 예산을 줄여 충당해야 했다.

고등교육은 초·중등 교육과 달리 학령인구 감소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셈이다. 이는 결국 고등교육 위기의 본질을 학령인구의 감소가 아니라 정부의 방치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교육이 내팽개쳐진 나라에서 이야기되는 장밋빛 미래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처럼 무모하고 허무하다. 대학은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과 아울러 학문과 정신적 가치를 창출하고 전승시킨다. 대학이 창출하는 유형적 무형적 가치는 그 국가의 직접적인 경쟁력이다.

지난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의 경쟁력 후퇴는 같은 기간 국가 경쟁력이 22위에서 27위로 후퇴한 근본적 원인도 이 때문이다. 특히 고등교육 공공성의 상징이자 보루인 국립대학의 경쟁력 후퇴는 지역의 몰락을 가속한 주범임이 틀림없다.

최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부원장이 국립대학이 취업률은 낮지만 규모가 비대하다며 축소 혹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쏟아부어지고 있는 교육당국의 일련의 고등교육 정책과도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정부는 최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을 발표하며 오는 2025년부터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 2조 원 이상의 집행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넘기겠다는 안을 발표했다. 국립대학도 지자체장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물론 수도권의 사립대학과 마찬가지로 지역의 국립대학도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의 국립대학을 취업률이 낮으니 축소하라는 주장은 다리가 아프니 다리를 자르고 머리가 아프니 머리를 자르라는 처방일 뿐이다.

지역에 산재한 국립대학 위기의 본질이 지역의 산업과 연계하지 못한 것인지도 의구심이 든다. 물론 대학이 지역의 산업과 연계해서 가질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이미 붕괴된 지역의 경제적 기반 위에서 대학이 협력할 수 있는 산업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이 좁은 국가에서 지역의 대학은 지역 밖으로 나오지 말고 지역과 함께 공멸하라는 것인가?

국립대학 위기의 본질은 단연코 중앙정부의 책임 방기에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미미한 정부의 책임마저도 지방정부로 떠넘기려 한다. 국립대학을 축소하라든가 국립대학의 운영을 지자체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은 위기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엉터리 해법이다.

다시 국립대학을 지역뿐 아니라 수도권의 학생들도 가고 싶어 하는 대학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역의 대학에서 잘 교육받고 그 지역의 버젓한 직장에서 잘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돼야 한다. 

결국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국립대학부터 좋은 환경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훌륭한 학자들이 기꺼이 가서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대학,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공급된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교육의 공공재적 성격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국립대학에서부터 먼저 빈부의 차이 없이 능력 있는 학생들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장학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 대학의 부흥이 다시 지역의 산업을 발전시키고 지역 성장을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고 이루어 내야 할 우리 국가의 미래 청사진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첫 단추는 당연히 국가의 위상에 걸맞은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지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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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최인철 경북대학교 영어교육학 교수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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