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CCTV설치가 저출산 대책? 헛발질 예산만 10년간 7조4000억원

정용환 2023. 4.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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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1일 부산 연제구 부산시청 로비와 대회의실에서 열린 '아세안 5개국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원서를 접수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정부 알선 해외 취업자 9165명, 해외연수 6547명.’

고용노동부가 2016~2018년 저출산 분야 과제로 분류한 ‘해외취업 지원 사업’ 결산보고서에 실린 성과 지표다. 3년간 이 사업에만 총 1439억원을 들였다. 2014년만 해도 연 237억원에 불과했던 사업 예산은 ‘저출산 대책’ 타이틀이 붙고 나서 435억원(2016년)→478억원(2017년)→526억원(2018년)으로 두배가량 늘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과 국회 상임위·예산결산특위 심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저출산 대책’이란 타이틀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수십 쪽에 달하는 예·결산 자료 어디에도 ‘출산’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해외에 취업시킨 사람 중에 연락이 끊어진 사람이 한때 170여명에 달했다. 2017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청년을 내보냈는데 어디 가서 뭐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업을 이렇게 진행해도 되냐”(이훈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질타가 쏟아졌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중앙일보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로부터 2013~2022년 전 부처 저출산 대책 예산을 받아 전수조사한 결과, 이 같은 ‘무늬만 저출산 대책’에 10년간 7조 4000억원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주기로 수립되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포함된 ▶저출산 ▶고령화 ▶성장동력(인구구조) 등 3개 분야 사업 가운데, 저출산 분야 예산 195조원을 분석한 결과다.

다른 사례와 비교할 때 해외취업지원은 차라리 나은 경우다. 행정안전부가 2013년부터 2015년 저출산 분야 과제로 선정한 ‘청소년 성범죄 예방 활동 강화’ 사업(예산 3406억원)은 부처 고유의 사업을 명칭만 바꿔 저출산 대책으로 둔갑시켰다. 행안부가 자체적으로 붙인 이 사업의 명칭은 ‘어린이 안전 영상정보 인프라 구축’으로, 3년간 폐쇄회로TV(CCTV) 4247개와 통합관제센터 83곳을 설치했다. 이 사업 역시 68쪽 분량 예·결산 자료 어디에도 저출산 문제 해결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재되지 않았다.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 설치된 CCTV. 연합뉴스

문체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학교의 문화예술 교육을 활성화하겠다면서 2219억원을 저출산 예산으로 타냈다. 전국 초·중·고교에 국악·연극·영화·무용·만화 분야 예술 강사를 파견하는 내용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16년부터 2018년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을 지원하는 사업 예산 총 987억원을 저출산 예산으로 편성해 사용했다. 여성가족부가 타간 저출산 예산은 위기 청소년 지원(947억원), 성폭력 피해자 통합지원센터(635억원), 성범죄자 신상정보 우편고지(177억원) 사업부터 청소년 인터넷 중독 예방(137억원)과 흡연·음주 예방 캠페인(2억원) 등으로 사용됐다.

각 부처의 기존 사업 예산에 ‘저출산 과제’ 명패만 달아 예산을 타낸 경우도 부지기수다. 고용부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라는 과제명으로 ‘두루누리’ 사회 보험료 지원에 총 2조4909억원을 썼다. 두루누리는 근로자 수가 10명 미만인 사업장의 사업주와 소속 근로자의 사회보험료(고용보험·국민연금)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으로, 2012년 시행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3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얘들아, 아빠랑 놀자'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버지들과 아이들이 케이크를 함께 만들고 있다. 최기웅 기자

교육부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교의 학과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프라임(PRIME·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 사업 예산 6763억원을 저출산 과제에 편성했다. 중소기업벤처부는 2016년부터 2017년까지 고성장 기업 500개를 발굴하는 내용의 ‘청년 가젤형 기업지원’ 사업 예산 7170억원을 저출산 과제로 썼다. 당시 국회 입법조사처는 청년 가젤형 사업에 대해 “기본적으로 기업활동 지원사업”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출산율 증진과 무관한 사업이 저출산 대책에 마구잡이로 끼워져 있는 건 중앙정부와 각 부처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지적한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는 “중앙 정부 입장에선 ‘저출산 해결을 위해 이만큼 노력했다’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데에 효과적이고, 부처 입장에선 특정 사업을 저출산 대책으로 포장해 넣어야 예산 당국의 감시망을 뚫기 수월하다”며 “평가와 반성이 없으니, 필요한데 어렵고 귀찮은 건 안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2013년 1.19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급감했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저출산위는 “2022년 저출산 대응 과제 214개 중 군무원·장교·부사관 인건비 증액(987억원) 등 저출산 대책과 관련도가 낮은 과제가 다수 포함돼있다”며 “앞으로는 실효성 높은 정책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하고, 제대로 된 정책평가 방식을 도입해 문제를 수정·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청한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는 “기존의 부처 간 칸막이 체제를 유지한 채 저출산 대책을 수립해나간다면 아무리 꼼꼼히 관리하고 계획을 세우려 해도 책임 없이 흐지부지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정책을 과감하게 제시하고 밀고 나가야 예산 누수 없는 저출산 대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용진 “韓인구 감소폭, 우크라戰 사망자 2배…육아휴직 의무화해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의 의원은 ‘합계 출산율 0.78명’이라는 현실에 대해 “저출산 문제와 전쟁을 치른다는 심정으로 매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인구 부총리제’ 공약을 발표했던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사망자가 현재까지 6만명인데, 작년 우리나라 인구는 12만명 줄었다”며 “저출산 문제는 어마어마한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 시급한 정책과제로 ▶육아휴직 의무제 ▶난임 휴직제 등을 거론하며 “조만간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과의 인터뷰는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뒤, 20일 전화로 보충했다.

Q : 저출산 대책이 왜 이렇게 엉망인가
A : “정책이 나열적·분산적으로 진행돼 많이 흐트러졌다. 그러니 CCTV 설치 같은 사업이 ‘저출산 대책’에 끼어들어도 거르지 못한 거다. 예산 검증, 정책 비판을 제대로 못 한 국회 책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Q : 대통령 자문기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이미 있다.
A : “위원장(대통령)이 누군지조차 아무도 모르지 않나? 유명무실해졌다. 정작 저출산 대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는 돈줄 쥔 기획재정부가 제일 무시하는 부처다. 기재부를 포함해 전 정부를 끌고 갈 수 있는 총사령관이 필요하다. 내가 지난 대통령 선거 출마했을 때부터 줄곧 ‘인구 부총리’ 도입을 주장한 게 그래서다.”

Q : 윤석열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다.
A : “여전히 정책 간 엇박자는 심하다. 자기분열적이다. 정부가 최근 ‘주 69시간 근로제’를 내놨다가 거뒀다. 그런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 대상자는 초등 6학년 부모까지 확대하겠다고 한다. 이런 걸 일관되게 정리해야 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Q : 출생률을 높일 비법이 있나.
A :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데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요즘 ‘아이 낳는 게 그 아이한테 죄짓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지금 30대가 20대였을 때 ‘헬조선’이란 말이 유행했는데, 지금은 달라진 게 있나.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에게 ‘아이를 낳자’고 말할 준비가 안 돼 있다.”

Q : 다소 추상적이다. 구체적인 대책이 있나.
A : “누구나 마음 편하게 출산하고 육아할 수 있어야 한다. 남녀 모두에 대해 최소 6개월의 육아휴직 사용을 의무화하는 법안, 난임 진단을 받은 근로자에 대해 최대 3개월까지 난임 휴직을 쓸 수 있게 하는 법안 등을 준비 중이다.”

Q : 기업 부담이 커진다는 비판을 받을 거다.
A : “바로 그런 논란이 필요하다. 기업이 ‘박용진이 제정신이야’ 하면 ‘미래 고객 관리는 안 하냐’고 토론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재화·서비스를 팔려면 소비자가 계속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 시장을 유지·관리한다는 측면에서 출산율 제고 노력을 국가와 기업이 함께 해야 한다. 정치의 역할도 중요하다.” 」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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