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A인데 고대 95점, 연대 97점" 대학가 환산점수 논란
“같은 학점을 받아도 백점으로 환산한 점수는 연대생이 저보다 2점 이상 높아요.”
1학기 중간고사를 나흘 앞둔 20일 고려대 재학생 김모(21)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똑같이 A를 받았는데, 학교에 따라 환산점수가 낮은 건 억울한 일 아니냐”라며 “그나마 올해 1학기부터 우리 학교도 환산점수를 조금 올렸지만, 아직도 다른 대학에 비하면 낮다”고 했다.
대학가 환산점수 올리기 열풍…서울대·성균관대도 검토
대학들이 잇따라 성적(GPA, Grade Point Average) 환산점수를 올리고 있다. 학점은 대학마다 만점이 4.5점, 4.3점 등으로 다른데, 이를 100점 만점으로 바꾼 게 환산점수다. 기업 취직이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 등에서는 일률적 성적 비교가 가능한 환산점수를 활용한다.
고려대는 환산점수가 낮아 다른 대학보다 불리하다는 학생 불만이 커지자 올해 1학기부터 기준을 바꿨다. 작년까지는 A학점이 94.3점이었지만 올해부터 95점으로 높인 것이다. B+는 88.6점에서 90점으로 올렸다. 연세대도 지난해 2학기부터 A학점 환산점수를 1.7점 올려 97.7점으로 정했다. 서울시립대·경희대 등도 2021~2022년 사이 환산식을 고쳐 각 학점별 환산점수를 1~2점 가량 높였다. 서울대·성균관대·한양대·이화여대 등도 환산식 변경을 검토 중이다.
“로스쿨 입시, 학점 1점 차가 당락 좌우하는데….”
환산점수 논란은 특히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에서 두드러진다. 그만큼 학점에 민감해서다. 특히 로스쿨 등 전문대학원 입시에서는 학점이 중요하다. 로스쿨 입학은 사실상 학점과 법학적성검사(LEET)가 당락을 좌우하는데, 학점이 상향 평준화 돼 있다 보니 환산점수 1점 차이도 결정적이다. 고려대 재학생 김씨는 “로스쿨 입시는 환산점수 1점 안에도 수십명이 몰려 있다는 말이 나온다”며 “매년 로스쿨·대기업 경쟁률이 더 세지다 보니 환산점수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더욱 심해진 ‘학점 인플레이션’도 환산점수 인상을 부채질한다. 절대평가로 이뤄지는 비대면 수업이 일상이 되면서 A 이상 고학점자가 늘었다. 고학점이 쏟아지면서 환산점수 1~2점 차이는 더 중요해졌다. 대학 정보공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A학점(A-, A+ 포함) 비율은 2019년 1학기 34.6%에서 2021년 1학기 48.6%로 늘었다. 연세대(65.3%), 서울대(64%), 고려대(59%) 등은 A학점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 이화여대 학생 이모(22)씨는 “너도 나도 학점이 높은데, 환산점수가 다른 대학에 비해 낮으면 취업할 때 불이익이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고 했다.
“너도나도 올리면 학점 어떻게 믿나” 우려도
최근 대학생이 '공정'에 특히 민감한 세대인 만큼, 통일된 기준 없는 환산점수에 거부감이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똑같이 노력해서 좋은 학점을 받았는데 환산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점수 차가 발생하는 건 학생들 입장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서울 사립대의 한 교직원은 “경쟁대학에서 환산점수를 올리면 우리대학은 그보다 조금이라도 더 올려야 한다는 압박이 생긴다”며 “이런 식으로 계속 환산점수를 올리면 학점의 변별력은 물론이고 신뢰도도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대학들의 환산점수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렵다고 했다. 고등교육법상 대학의 성적 관리는 학교 자율에 따라 학교장이 정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의 설립과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부가 성적 기준까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며 “다만 로스쿨과 같은 대학원 입시에서는 대학별로 차이가 나는 환산점수 적용이 불공정하다는 의견이 많은 만큼, 일단 로스쿨 측과 공통의 환산점수를 적용할 수 있는지 논의를 시작했다”고 했다.
박남기 교수는 “학생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와 같은 총장 협의체에서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른 대학보다 손해 보지 않기 위한 학점·환산점수 인플레이션은 더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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