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토요일, 파리의 기자회견

임성수 2023. 4. 2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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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 특파원이 있는 언론사가 몇 군데나 되나?'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연다고 했을 때 대뜸 든 생각이다.

민주당 최대 모임인 '더미래'는 "귀국을 미루며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직 대표로서,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했다.

송 전 대표로서는 '권력무상'을 느낄 만도 할 것이다.

송 전 대표는 '백팩' 차림으로 지난 19일 파리 특파원들을 만나 토요일 회견을 다시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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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사회부 차장


‘프랑스 파리에 특파원이 있는 언론사가 몇 군데나 되나?’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연다고 했을 때 대뜸 든 생각이다. 파리경영대학원(ESCP) 방문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본인 편의대로 결정한 것이겠지만, 국내 언론사 중 파리 특파원이 있는 회사는 몇몇 대형 매체를 제외하곤 없다. 송 전 대표 입장을 듣자고 각 언론사 기자들이 파리행 비행기 표를 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그 회견은 소수 특파원만 접근 가능하게 된다.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정치인이 파리에서 회견을 하겠다고 예고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갑질’로 느껴진다.

회견 날짜도 공교롭다. 검찰이 돈봉투 관련자들을 압수수색한 것이 지난 12일이다. 검찰은 관련자들을 여러 차례 소환했고, 일부에 대해선 구속영장도 청구했다. 하지만 송 전 대표는 22일 토요일 오후 4시(현지시간)에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한다. 한국시간으로는 토요일 심야다. 주말엔 뉴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건 상식이다. 요즘처럼 날씨가 좋은 계절에 주말 나들이 대신 비리 뉴스를 들여다보고 있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랫사람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선을 그은 송 전 대표가 결백하다면 더욱더 토요일 회견은 피해야 한다. 결백한 입장을 더 많은 언론, 더 많은 국민이 들어줘야 할 것 아닌가.

지금 송 전 대표의 귀국을 가장 큰 목소리로 요청하는 건 검찰도 여당도 아니다. 민주당이다. 민주당 최대 모임인 ‘더미래’는 “귀국을 미루며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전직 대표로서,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했다. 보태거나 뺄 것이 없는 ‘정론’이다.

알다시피 민주당이 순순히 검찰 수사에 협조하는 정당은 아니었다. ‘조국 사태’ 이래로 이재명 대표, 노웅래 의원 수사에서 보듯 수사가 시작되면 일단 ‘검찰독재’ ‘정치공작’부터 외치는 것이 관성처럼 자리 잡은 당이다. 그런 당에서 이번엔 송 전 대표의 귀국에 팔을 걷어붙였다. 송 전 대표가 이미 권력을 잃은 ‘전직’이라는 현실정치의 노회한 마키아벨리즘도 작용했을 것이다. 송 전 대표로서는 ‘권력무상’을 느낄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돌변은 무엇보다 송 전 대표 측근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열어버린 ‘판도라의 상자’ 때문이다. 이 전 부총장의 꼼꼼한 통화 녹음에는 영화 대사 같은 생생한 말들이 등장한다. “영길이 형이 뭐 어디서 구했는지 그런 건 모르겠지만 많이 처리를 했더라고.”(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 “송(영길)이 ‘래구가 돈 많이 썼냐’고 묻더라.”(이 전 부총장) 제아무리 민주당이라도 저런 녹취는 감쌀 수 없다. 검찰은 이미 강 회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다. 별도의 개인 비리로 구속된 이 전 부총장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녹음 파일에 등장하는 윤관석, 이성만 의원도 검찰 소환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모두 전당대회에서 송 전 대표의 당선을 돕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기자회견에도 ‘TPO(Time·Place·Occasion)’가 있다.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춰 옷차림을 고려하듯 공인의 입장 발표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돈봉투 의혹에 휘말린 정치인의 ‘토요일, 파리 기자회견’은 시간도 장소도 상황도 다 잘못됐다. 송 전 대표는 ‘백팩’ 차림으로 지난 19일 파리 특파원들을 만나 토요일 회견을 다시 예고했다. 밝은 표정으로, 귀국 여부는 얼버무리며, “제가 수업이 있어서 들어가 보겠다”고 했다. 지금 TPO는 송 전 대표가 방문교수로 아무 일 없는 듯 연구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수업도 중요하겠지만, 지금은 만학의 열정을 잠시 접어둘 때다.

임성수 사회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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