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코첼라가 뭐길래
‘코첼라’라는 음악 페스티벌이 있다. 정식 명칭은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미국 인디오에 위치한 사막에서 매해 4월 열린다. 1999년 시작해 올해로 25살이 된 이 페스티벌의 독특한 점은 온라인으로 페스티벌 무대를 생중계하고, 같은 라인업으로 2주를 공연한다는 사실이다. 집에서 편히 볼 수 있는 무료 무대를 굳이 돈을 내고 직접 가서 볼까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 관객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올해 코첼라 하루 평균 관객은 약 12만명, 온라인 동시 접속자 수는 최대 2억5000만명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적으로 코첼라의 존재를 처음 인지한 건 200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만 해도 코첼라는, 적어도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선 상당히 무시당하는 편에 가까웠다. 코첼라는 분류상 ‘패셔너블한 힙스터’ 페스티벌이었다. 특히 “페스티벌은 그래도 록이지!”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페스티벌 1회 헤드라이너가 벡과 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이었고 2005년에는 콜드플레이와 나인 인치 네일스, 2009년엔 폴 매카트니와 킬러스, 더 큐어를 세웠지만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코첼라는 여전히 음악보다는 패션에 신경 쓰는 미국 애들이나 즐기는 일종의 패션 페스티벌이었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2010년을 전후해서다. 세계 음악계의 변화와 절묘하게 맞물렸다. 밀레니엄 이후 탄생한 새로운 세대는 흑인 음악에 열광했고, CD나 LP가 아닌 모바일과 유튜브로 음악을 들었다. 동시에 ‘그래도 록’ 계에서는 헤드라이너급의 그럴듯한 새 얼굴을 오랫동안 선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2010년 코첼라는 처음으로 헤드라이너 자리에 흑인 래퍼 제이-지(Jay-Z)를 올렸다. 오히려 좋았다. 2012년 나는 친구들과 함께 코첼라로 향했다.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고, 궁금했다. 그해의 헤드라이너에는 당시 떠오르던 2인조 밴드 더 블랙 키스와 그때만 해도 아직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지 않았던 밴드 라디오헤드 그리고 닥터 드레와 스눕독이 초대됐다. 세상을 떠난 투팍까지 홀로그램으로 소환하며 관객 열광을 끌어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금 확실히 뭔가 변하고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그해 7월 싸이가 ‘강남 스타일’을 발표했다.
2018년 코첼라의 헤드라이너는 The Weeknd, 비욘세, 에미넴이었다. 힙합과 R&B로만 채운, 음악 페스티벌의 터줏대감 록의 그림자조차 느껴지지 않는 전무후무한 라인업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음악시장의 변화가 그대로 반영된 셈이었다. 2023년 K팝 그룹 블랙핑크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랐다. 그것도 페스티벌의 꽃이라는 토요일 메인 스테이지에. 솔직히 말해 그 사실 자체만으로 감격하며 내적 애국가를 제창할 생각은 없다. ‘국뽕’은 절묘한 위치 선정으로 멤버들의 얼굴이 생중계 화면에 클로즈업될 때마다 뒤에서 휘날리던 누군가의 태극기로 충분했다. 블랙핑크는 이미 세계에서 제일 인기 있는 여성 그룹이며, 음악 페스티벌은 해당 연도 음악시장을 면밀히 담아내는 리트머스지다. 그 둘의 만남이 새삼스러울 일은 없다.
다만 한국 대중음악과 전 세계 유수의 음악 페스티벌을 꾸준히 지켜보고 사랑해 온 사람으로서의 감각은 조금 달랐다. 무대가 시작되고 블랙핑크의 시그니처 멘트 ‘BLACKPINK IN YOUR AREA’가 무대 위에 흘러나왔을 때, ‘지금까지 블랙핑크였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인사로 무대를 마무리하던 모습에서 느낀 기분은 분명 오래 기억하고 싶은 종류의 것이었다. 단체와 개인 무대의 헐거웠던 구성과 연출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았지만 그동안 참 많은 것이 변했다는, 앞으로도 변할 거라는 감각만은 뚜렷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이번 주말에도 바로 그 코첼라의 모든 무대를 유튜브 무료 생중계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가장 멋지고 영민한 세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뭉친 밴드 보이지니어스의 무대가 끝내줬다는 사실을 작은 팁으로 남겨둔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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