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영산홍을 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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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버지가 종묘상에 간다기에 파종할 씨앗을 사러 가나보다 했다.
이왕이면 아버지가 더 곱고 귀한 묘목을 심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제야 영산홍이야말로 아버지를 닮은 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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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버지가 종묘상에 간다기에 파종할 씨앗을 사러 가나보다 했다. 장에서 돌아온 아버지 손에 묘목 세 그루가 들려 있었다. 무슨 묘목이냐 여쭸더니 영산홍이라 하셨다. ‘화단을 가꾸는 취미가 새로 생기셨나?’ 하고 짐작만 했다. 내 눈에 영산홍은 수선화나 튤립 같은 꽃에 비해 촌스럽게 보였다. 지천에 흔히 피니까 아끼는 맛도 없고, 홍자색으로 색만 진할 뿐 진달래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왕이면 아버지가 더 곱고 귀한 묘목을 심었으면 하고 바랐다.
건강검진 때문에 아버지가 서울로 올라오신 뒤부터 내가 고향에 내려가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 아버지가 같이 갈 데가 있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할아버지 묘가 있는 야트막한 공동묘지였다. 볕이 깊게 드는 민틋한 땅에 아버지의 가묘가 있었다. 거기에 커다란 부채를 펼친 듯 영산홍 세 그루가 활짝 피어 있었다. 십여년 전 무릎에 닿았던 묘목이 허리춤까지 자란 것이다.
그제야 영산홍이야말로 아버지를 닮은 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그저 묫자리만 봐둔 게 아니었다. 당신의 육신을 순하게 누일 자리를 만들고, 자식들에게 죽음을 예비할 시간을 마련하신 것이다. 행여나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삶을 단정히 마무리하려는 마음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죽음을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살아남은 이들의 슬픔을 쉽게 완충하지는 못하리라. 저마다 애도의 방식과 슬픔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물며 갑작스레 상실을 겪은 이들의 허망함은 얼마나 까마득할까. 그 생생한 고통이 얼마나 무거운지 감히 짐작조차 어렵다.
가묘 주변을 걸어본다. 4월 16일. 세상을 안타깝게 떠난 생명들과 상실을 겪은 친구의 무른 눈동자가 떠오른다. 그들 곁에 영산홍을 심는 마음으로 신철규 시인의 시를 옮겨 적는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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