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더 글로리 신드롬

2023. 4. 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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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더 글로리’는 끔찍한 학교폭력에 시달린 한 여성이 치밀한 준비 끝에 가해자들을 상대로 처절한 복수를 실행하는 드라마다. 한꺼번에 출시한 파트 2를 보느라 밤을 새웠다는 사람이 많았고, 넷플릭스 3주 연속 비영어 시리즈 1위를 차지했다. ‘죄책감 없는 가해자들에 대한 가속도 붙는 응징, 가해자들 추락과 피해자 서사에 공감’ 등 언론마다 찬사로 넘쳐났다. 그러나, 잔인한 폭력을 지속한 가해자도, 참혹한 복수를 수행한 주인공도, 악의 굴레에 둘러싸여 있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다.

요새 법의 보호 밖에서 벌어지는 다크 히어로의 핏빛 복수극이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환호를 받고 있다. 특히 법과 제도의 무력함을 절감한 피해자들이 직접 복수를 감행한다는 설정은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피해자는 국가 형벌권 속에서 본인이 본 피해를 확정하고 또 다른 피해로부터 보호받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다. 법은 인간이 공정하게 원수 갚을 능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제아무리 억울해도 피해자의 사적 복수를 범죄로 단죄하는 이유다.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가해자를 상대로 목숨을 노린 복수를 꿈꾸는 남녀 주인공이 교도소로 발길을 옮기는 엔딩이 섬뜩했던 건, 작가도 말했듯이 지옥문을 열어젖히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 법은 사적 복수 허용하지 않아
피해 주관화는 무죄추정 훼손
무능한 수사력 신속 보강해야
복수가 영광인 건 야만적 사회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더 글로리’ 신드롬은 매우 강력했다. 첫째는 가해자 엄벌과 피해자 중심의 거센 사조이고, 둘째는 법과 제도의 무력함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자조다. 특히 드라마 소재로 등장한 학폭은 사회문제로까지 부상했고, 정부도 부랴부랴 가해자 엄벌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드라마에 나올법한 예외적인 상황에 관하여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잔인한 학폭이 사라졌다고 할 순 없지만 과거보다 줄어든 게 사실이고, 학폭의 범위 및 기준의 모호성에 기인한 무분별한 신고도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친구의 가방에 장난으로 빵 봉지를 넣는 행동이나 친구들 사이의 가벼운 갈등 상황조차 학폭 신고에 넘겨지는 사례가 빈번하고, 학교생활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과 분쟁을 학폭으로 단죄하려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지적이다. 제 자식만 편드는 학부모들은 갈등 해결을 가르치기보다는 학폭 신고를 선호하고, 민원을 두려워하는 교사들도 기계적인 절차 진행에 급급한 게 현실이다.

요즘 드센 바람이 불고 있는 피해자 중심주의 사조는 피해자를 주변적 존재로 낮춰본 형사사법에 대한 반성이 출발점이었다. 피해자의 정의를 핵심 의제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그러나, 피해자는 무엇이든 용서받고 가해자는 어떠한 응징도 마땅하다는 사회 분위기,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 판단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기이한 현상은 경계함이 마땅하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작동하는 실무 현장은 사실의 왜곡, 과장, 편집이 가득하고, 피해자-가해자를 뒤바꾸는 경솔한 판단도 적지 않다. 분노를 증폭하는 감정적 대응에 휘둘리지 않는 신중함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우려스러운 건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공소장과 판결문마저 감정이 들어간 게 보인다는 점이다. 객관적인 증거는 도외시한 채 생각과 느낌 같은 주관성에 의존하는 건 법의 존재 이유를 몰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휩쓸린 피해의 주관화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천명한 헌법 정신을 훼손한다.

무엇보다 법이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뼈아픈 자조는 법치주의에 대한 강한 도전과 위기다. 정치권은 대한민국의 수사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를 좌시하지 말아야 한다. 경찰이 걸핏하면 무혐의 종결만 남발한다는 비판, 증거 수집에 시간과 비용이 드는 사건은 피해규명이 불가능하다는 푸념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하루빨리 지지부진한 수사 의지를 북돋우고, 신뢰할만한 수사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피해자에게 ‘증거를 대라’는 식의 소극적 대응을 자제하고, 범죄를 규명하려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는 게 먼저다. 그러나 더 절실한 건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릴 수 있는 교육과 훈련 시스템이다. 한 사람이라도 억울한 사법 피해자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원래 영광은 쟁취하는 것보다 주어지는 게 훨씬 아름답다. 인간이 자기의 영광을 쟁취하는 건 과도한 힘도 들지만, 부작용도 엄청나다. 신의 섭리에 기댈지언정 핏빛 복수를 포기하고 처참한 희생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러나 법이 더 이상 정의를 수행하지 못하는 사회는 한마디로 이미 죽은 사회다. 힘이 없는 사람들이 손쉽게 희생 제물로 바쳐지기 때문이다. 치밀하고 똑똑하고 집요하기까지 한 복수극의 히어로는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제 드라마는 끝났다. 폭력 사회에 대한 사적 복수를 미화하기보다는 머리를 맞댄 이성적 해결을 도모할 때다.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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