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의 시시각각] 4년만에 무너지는 날치기 선거법
위성정당 예상못해 선거 난장판
강행했던 민주당서도 자성 목소리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음 달 상영될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에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문재인 정권이 5년간 이룬 성취는 부동산 폭등, 국가채무 급증, 세계 최저 출산율, 소득주도성장, 노재팬(No Japan) 등 다방면에 걸쳐 매우 많다. 그중에서 정치 분야에서도 엄청난 성취가 있었는데 바로 ‘날치기 선거법’이 되겠다.
한국에서 현재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어떻게 뽑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21대 총선을 앞두고 2019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선거법(소선거구제+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내용이 복잡하다. 지역구 253석은 종전대로 지역구 최다 득표 1인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여서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다. 이 제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17석은 20대 총선 이전처럼 순수히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뽑되, 나머지 30석은 지역구 당선 의석수와 50%를 연동해 뽑는 것이다. ‘지역구 당선 의석수와 50%만 연동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죄송하지만 그 작동 구조를 상세히 설명하려면 이 칼럼의 나머지 분량을 다 써도 쉽지 않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인터넷 검색을 해주시길 바란다.
이런 기괴한 제도의 탄생은 민주당과 정의당의 정치적 거래가 배경이다. 당시 민주당은 20대 국회 임기 내에 공수처법 통과를 원했고, 정의당은 당세 확장을 위해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절실했다. 이 때문에 양당이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의 부작용은 따져보지도 않고 서둘러 일괄 날치기하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그나마 실제 통과 때는 준연동형으로 변질)를 도입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날치기를 당한 자유한국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킬 위성정당 카드를 들고나오자, 민주당이 처음엔 자유한국당을 욕하다가 나중에 부랴부랴 위성정당을 따라 만들어 정의당의 뒤통수를 때린 건 예고된 막장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 입장에선 천만다행으로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기 때문에 선거법 날치기 부작용에 따른 책임추궁을 피해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선거는 결과만 좋으면 도의적인 문제는 잘 안 따지는 풍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에 이런 황당한 제도로는 도저히 다음 총선을 치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선거 때마다 비례대표만을 노리는 위성정당을 만들었다가 선거 이후 모(母)정당과 합치는 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이나 되나. 고작 30석을 뽑자고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작동 구조가 난해한 데 비해 실익은 별로 없다.
역시 22대 총선이 1년 뒤로 다가오자 선거법을 그냥 놔뒀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최근 여야 의원들이 국회 전원위원회를 열어 선거제 개선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당시 원내수석부대표로서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라며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뒤늦게라도 반성하는 사람이 나오니 다행이다. 애초에 게임의 룰인 선거법을 제1 야당의 동의 없이 날치기로 밀어붙인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폭거였다. 그런 성취는 빨리 무너지는 게 바람직하다.
문제는 망가진 선거제도를 어떻게 수습하느냐다. 전원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연동형비례대표제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다. 의원들이 각자의 기득권을 조금씩 포기하면 타협이 안 될 건 없다. 끝내 타결이 힘들면 20대 총선 이전 방식으로 돌아가도 된다. 과거 제도가 문제는 있어도 현행보단 낫다. 어찌 되건 내년에 위성정당 창당 쇼를 또 볼 순 없는 것 아닌가.
김정하 정치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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