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북한의 선제 핵 공격, 얼마나 가능할까
북한의 핵 교리는 지난해 더 공격적이고 핵무기 선제 사용 권리를 주장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지난 13일 북한이 발사한 화성-18호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기술적 역량이 크게 개선됐음을 보여줬고, 이는 한반도 안보에 더 큰 위협을 의미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북한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들면 핵무기를 선제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북한에 대한 공격을 억제·격퇴하는 데 목적을 두겠다던 2013년의 핵 무력 법제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지난해 9월 발표한 핵 무력 법제화 개정 6항에는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을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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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공세적 사용 준비 독려
뚜렷한 명분 없는 공격 우려돼
핵 역량 한계로 실현성은 낮아
」
그 이후 상황은 더 악화했다. 지난달 27일 김 위원장은 “우리가 언제든 어디에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하라”며 ‘공세적 태세’로 핵무기 사용을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13일 고체연료 ICBM 발사 때는 “치명적이며 공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격에 대한 단순한 대응이 아닌 핵무기 선제공격 가능성을 강조하는 추세다.
북한이 스스로 부여한 핵무기 선제공격권을 언제 쓸 것이냐는 여전히 모호하다. 북한은 자신이 정한 헐거운 기준에 따라 공격받지 않더라도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지닌다고 우기고 있다. 늘 우려스럽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렇다. 코로나19 장기 봉쇄에 따른 타격, 극심한 식량난 등으로 인해 북한이 불안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지지해왔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어려움에 부닥친다고 중·러가 선뜻 나설 수 있느냐는 확실하지 않다. 북한이 주권을 지키겠다는 명분에 따라 자칫 오판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주권 모독이나 내부 붕괴에 대한 자포자기의 대응으로 한국이나 미국에 대한 명분 없는 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해야 하는가. 적어도 김 위원장의 언사를 보면 북한은 그러한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이유에서 그러한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첫째,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에 따르면 북한의 실질적 핵 역량은 질적 측면에서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미사일 기수가 양적으로 부족하다. 북한은 아직 전술 핵탄두 실험을 한 적이 없다. 거친 허세 이면에는 핵전쟁을 치를 역량이 없다는 자각이 존재한다.
둘째, 최근 북한의 핵 교리는 일관성이 없다. 김 위원장의 한층 격앙된 언사에도 지난해 9월 발표한 핵 교리 5항(‘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보유국과 야합해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이 나라들을 상대로 핵무기로 위협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은 그대로 남아있다. 대북 공격에 가담하지 않는다면 한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핵보유국인 미국은 논외다.
셋째, 우크라이나전쟁은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효과를 입증했다. 아마도 북한의 군사 전략가들은 공중에서 요격되는 러시아군 미사일을 지켜보며 불편했을 것 같다. 미국과 한국은 고도화된 미사일 방어체계를 확보하고 있지만, 북한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넷째, 강력한 억지력이다. 북한이 한·미를 공격하면 참혹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일각에서 미국이 과연 서울을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과연 북한이 김 위원장의 궁궐 같은 저택과 요트, 평양의 노동당 청사를 희생할 준비가 됐냐는 질문도 똑같이 할 수 있다.
이런 네 가지 이유로 우리가 안도할 수는 있지만, 북한이 선제 핵 공격을 감행하느냐 아니냐는 김 위원장 손에 달렸다. 김 위원장이 이런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북한 간부들이 김 위원장의 자존심을 거스르며 핵무기 사용이 가져올 문제와 결과를 솔직하게 직언했을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러한 요인들이 북한의 섣부른 행동 가능성을 낮출 수는 있어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ICBM 고체연료 발사의 환희가 사라지고 나면 김 위원장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적을 섬멸하는 것보다 주민의 먹거리에 집중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핵전쟁이 발발하면 어린 딸 김주애에게 어떤 일어날지도 가끔은 생각해보길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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