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쪽팔리잖아요. 나한테”
영화 ‘길복순’은 청부살인 업계의 에이스이자 중학생 딸을 키우는 싱글맘 길복순(전도연)의 이중생활을 숨 가쁘게 그려내고 있다. 화려한 액션이 알파요 오메가인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주목한 게 있었다. 바로 길복순과 그의 보스 차민규(설경구)의 세계관 차이다.
차민규는 팩트도 만들기 나름이라는 ‘대안적 사실’의 신봉자다. “아무도 모르면… 그게 아무 일도 없는 거야.” 그가 킬러 훈련을 받는 인턴 영지(이연)에게 철저함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그래서다. “거짓말은 끝까지 뻔뻔하게. 그게 거짓말인지 알고 있는 사람한테도.”
길복순의 생각은 다르다. 끝까지 잡아뗀다고, 비밀을 아는 사람을 없앤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내가 아는데. 쪽팔리잖아요. 나한테.” 사실, 이 말은 인턴 영지가 길복순에게 했던 얘기와 다르지 않다. “잘못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아요.”
‘길복순’보다 ‘차민규’가 더 많은 세상인 걸까. “거짓말은 끝까지 뻔뻔하게”가 이 시대의 모토가 되고 있다. 스스로는 물론이고 남들에게도 부끄러움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코너에 몰리면 상대편의 허물로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한다.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가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 된 이유다.
그럼에도 ‘나한테 쪽팔릴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장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쪽팔리다’는 속어이지만, 속어는 나름의 속된 맛이 있기에 그대로 쓴다.) 쪽팔림을 자각한다는 건 감수성의 모세혈관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자기 생존을 위해서도 좋다. 대충 감추고 숨기면 남들이 모를 거라고 믿는 건 멍청한 착각이다. 힘이 떨어지면 진실은 물위로 떠오르게 돼 있다.
돌아보라. 인류 역사는 남들의 눈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약점을 찾고 보완해온 자들이 이끌어왔다. 길복순의 말대로 “인생은 셀프”,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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