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젊은 중국 미술가들의 사회비판
최근 팬데믹이 완화하면서 흥미로운 해외미술전이 늘고 있다. 서울 청담동 전시공간 ‘송은’에서 열리고 있는 ‘울리 지그 중국 현대미술 컬렉션전’(5월 20일까지)은 스위스의 대표적 중국 현대미술 수장가 울리 지그(Uli Sigg·77)의 수장품 중 여성의 몸, 전통 미학의 현대적 해석, 국가폭력에의 저항을 주제로 한 영상·회화·조각 48점을 선보이고 있다.
울리 지그는 1979년 스위스 엘리베이터 제조사 ‘쉰들러’의 임원으로 베이징에 파견되어 중국 최초의 해외 합작법인을 세우며 1980년대 변화상을 몸소 겪었다. 미술품 수집에 매진한 것은 그가 주중 스위스 대사(1995~98)로 임명돼 다시 베이징에 온 후였다. 1980년대 파격적 방식으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으며 화단을 풍미했던 아방가르드 미술은 천안문 사태 이후 전시를 금지당한 채 언더그라운드 미술로 축소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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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수집가 울리 지그 전시
국가폭력 고발하는 작품 많아
여성 신체에 대한 터부 허물기
감시·통제의 중국 현실 돌아봐
」
울리 지그는 당시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무명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30여년간 작품을 수집했으며, 이를 서구에 여러 차례 전시함으로써 중국 내에서 입지를 잃은 아방가르드 미술을 중국 밖으로 알렸다. 2012년에는 수장품 중 1510점을 홍콩 공립미술관인 M+에 기증하며 수집품을 중국에 돌려주었다. (1510점 중 47점은 2200만 달러에 매각). 이번 한국 전시품은 기증 후 남아 있던 300여 점과 새롭게 구매한 300여 점 가운데 젊은 작가들에 비중을 두며 선별했다.
허샹위(37)는 유리섬유와 실리카 겔을 사용해 시체인 양 바닥에 엎어져 있는 중년 남성을 제작하고 ‘마라(Marat)의 죽음(2011)’이라고 제목 붙였다. 머리카락과 피부의 생생함이 주는 시각적 충격은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의 사실적 인물상을 떠올린다.
엎드린 인물은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미술가 아이 웨이웨이(66)다. 그는 2008년 쓰촨 대지진 피해의 상당 부분이 건물 부실 공사로 인한 ‘인재’임을 주장하며 정부가 은폐하려던 사실들을 SNS에 공개하고 폐허 더미 속 건축 자재를 모아 작품을 제작한 바 있다. 정부는 아이 웨이웨이를 2011년에 가택연금했다.
프랑스 혁명기 작가 자크-루이 다비드는 피부병 치료를 위해 유황 물에 몸을 담근 채 집무를 보다, 여성 지롱드 당원의 칼에 찔려 죽은 마라의 모습을, 상처 입은 예수 그리스도 도상을 빌려 표현함으로써 폭력의 희생자이자 혁명의 순교자로 그를 이상화한 바 있다. 허샹위는 다비드 작품을 빌려 자유를 박탈당한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를 혁명기에 살해당한 자코뱅당의 지도자 장폴 마라에 빗댄 것이다.
눈길 끄는 또 다른 작품은 여성 작가들이 신체를 사용한 작업이다. 정부의 검열과 통제가 일상화했던 1990년대 중국 작가들에게 신체란 구속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다. 2000년대 이후 행위예술은 1980년대에 출생한 여성들이 주도하면서 여성 신체에 대한 터부를 허무는 과감한 작업이 등장했다.
차오위(35)의 비디오 작품 ‘샘(2015)’은 출산 후 아기에게 수유 중인 작가가 자신의 유방을 반복적으로 힘껏 누르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누워있는 작가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유 줄기는 대지에서 솟아나는 샘처럼 끊임없이 공중으로 솟구치는데 이는 모성과 여성 신체에 깃든 힘에 대한 선언인 것이다.
지그 컬렉션에는 전통 중국회화 미학을 성공적으로 서양화에 접목한 작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지다춘(55)의 2004년작 ‘죽음’은 문인화의 대표적 소재인 대나무를 성근 구도 가운데 수묵화처럼 구현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러나 대나무 마디는 인간의 뼈마디로 이루어졌고 댓잎은 붉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어, ‘혈죽’을 캔버스와 혼합안료를 사용해 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서양 컬렉터에 대한 중국 내의 평가가 늘 후한 것만은 아니다. 민감한 정치사회적으로 소재를 서양의 익숙한 도상을 차용해 묘사하는 작가들이 늘면서, 중국 현대미술이 지나치게 서양의 ‘구미’에 맞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양 컬렉터들은 중국 내에서는 터득하기 어려운 제3의 시각을 작가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중국 사회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고 익숙한 표현들로부터 새로운 활력을 찾도록 한다. 울리 지그 컬렉션의 젊은 작가들이 보내는 냉엄한 비판적 메시지가 감시와 통제가 여전한 중국 미술계에 긍정적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길 기대한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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