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라포레의 수수께끼 같은 의자들
영감을 받았다는 식으로 묘하게 닮아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다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아이덴티티를 가진 작품도 있다. 프랑스 디자이너 마르탱 라포레(Martin Laforet)의 작업은 후자다. 마르탱은 파리 근교 베르농(Vernon)에서 같은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아티스트 레아 메스트레(La Mestres)와 작업실을 나눠 쓰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아트 퍼니처 작업으로 두각을 보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업을 전개한다.
마르탱의 주재료는 콘크리트. 2022년 파리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Carpenters Workshop Gallery)에서 첫 개인전 〈더 몰드 오브젝트 The Mould Objects〉를 통해 선보인 가구들은 콘크리트 블록이나 슬래브 등을 공장에서 미리 성형하는 프리캐스트(Precast) 공법에서 영감을 받았다. 실제 가구 사이즈의 커다란 나무틀에 직접 조제한 콘크리트를 부어 형태를 만든 후 나머지는 수작업으로 마감한다. 질감을 내고 색을 입히는 긴 시간 동안 장인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작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완성된 작품들은 가구인지 건축자재인지 헷갈린다.
디자이너가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낱낱이 알 수 있는 마르탱의 작업은 기능에 따라 디자인이 결정되는 오브제와 건축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마르탱이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은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이탈리아의 전위미술운동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연상시킨다. ‘가난한 미술’이라는 의미의 아르테 포베라는 모레와 시멘트, 나뭇가지 등의 재료를 가능하면 덜 가공해 작가의 사색과 성찰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3차원적 미술을 말한다.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철저히 기능에 초점을 둔 가구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것도 현대적 언어를 더한 미니멀 형태로.
콘크리트로 색다른 형태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떠올린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지만 예상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마음은 성급하지 않다. 오래된 석공들처럼 한 걸음 한 걸음 기술을 연마하고 완성도를 높여나가는 것이 그의 목표. 가끔 예상치 못한 형태와 질감에서 기쁨을 얻기도 한다.
창조적 실패는 다음 단계로 가는 에너지를 선사하기도 한다. 아티스트로서 여러 실험 속에서 가구와 조명 그리고 다양한 오브제 작업으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그의 꿈은 언젠가 스스로 인정할 만큼 완벽한 작품을 선보이는 것. 1991년생으로 젊은 나이에 성공적 데뷔 무대를 치른 마르탱에게 시간은 그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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