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시사 발언, 과장과 왜곡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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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조건 붙은 발언에 “적대 행위” 단정 부적절
한·미 정상회담 때도 절제·신중 화법 사용하길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전제조건을 달아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발언을 놓고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발언 내용을 과장·왜곡해 과격한 언사를 동원한 것은 외교적으로 부적절해 보였다.
로이터통신 인터뷰에 응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전제조건이 많이 붙어 있었다. 무기 지원 관련 질문을 받고 “민간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조건이 붙은 원론 수준의 언급이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제가 있는 답변” “정부 입장이 변경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정부는 우크라이나 난민 등을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해왔지만,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 왔다고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그제 “분쟁 지역에 대한 군사 지원은 국익을 해치는 행위”라면서 “이번 결정에 대해 대통령의 재고를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정부 견제는 필요하겠지만, 대통령 발언을 무기 지원 취지로 확대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무기를 제공하면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며 반발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의장은 “러시아의 최신 샘플(무기)이 북한 손에 들어가면 뭐라 할지 궁금하다”며 보복을 의미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러시아의 반응은 지나칠뿐더러 공감하기도 어렵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국제 평화를 뒤흔든 것이 러시아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도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을 앞장서 두둔해 온 러시아가 과연 한국을 겁박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는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세계 10위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이 우크라이나전쟁 와중에 국력과 위상에 걸맞게 역할을 해 달라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요청에 대한 원론적 공감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러 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에 무기 지원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도·감청 사태가 터진 후라 기자회견에서 돌발 질문이 나올 수도 있으니 국익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고 절제된 화법을 사용해 불필요한 논란을 촉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무기 지원 같은 중대한 정책은 여론을 경청하고 사전에 국민의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을 병행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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