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선변제’ 있으나 마나…서울 전세 1.6억 이하만 해당
최근 전세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소액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최우선변제 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액 임차인으로 인정되는 보증금 기준이 지나치게 낮은 데다 소급 적용도 안 돼 ‘그림의 떡’이란 지적이다. 최우선변제는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도 사회·경제적 약자인 소액 임차인이 보증금 일부를 우선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로, 1984년 만들어졌다.
소액 임차인으로 인정받는 기준은 지역마다 다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서울은 세입자의 보증금이 1억6500만원 이하여야 최우선변제 대상이 된다. 인천 등 과밀억제권역과 경기도 용인·화성·김포시는 1억4500만원을 넘어선 안 된다.
소액 임차인으로 인정받는다고 보증금 전액을 변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서울은 최대 5500만원, 인천 등 과밀억제권역은 4800만원에 그친다. 정부가 지난 2월 전세 사기 방지 대책으로 변제 대상 보증금(각 1500만원)과 변제액(각 500만원)을 높였지만,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많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5억8142만원, 인천은 2억4703만원이다. 최우선변제 대상 보증금 기준을 크게 웃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최우선변제 보증금을 올릴 필요가 있다”며 “서울의 경우 강남과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의 소액 임차인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별로 세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선순위 담보권자의 권리 등을 고려할 때 보증금을 급격히 올리는 건 쉽지 않다”고 했다.
소액 임차인 기준이 근저당권 설정 시점이란 점도 세입자에겐 불리하다. 최우선변제금 대상 범위가 2~3년마다 개정을 거쳐 확대됐지만, 소급 적용이 안 돼 보호 기준을 벗어나는 세입자가 여전히 많은 실정이다. 인천 ‘미추홀 건축왕’ 전세 사기 피해로 숨진 A씨가 대표적이다.
A씨는 2019년 9월 보증금 7200만원을 주고 전세 계약을 한 뒤 2021년 9월 집주인 요구로 9000만원에 재계약했다. 당시 최우선변제금 적용 보증금은 1억3000만원이었지만, 해당 아파트는 2017년에 근저당이 설정된 터라 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여야 보호받을 수 있었다. 계약 갱신으로 보증금이 최우선변제 기준보다 높아져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셈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인천 미추홀구 A아파트의 경우 전체 60가구 중 58가구가 경매로 넘어갔다. 이 중 대책위에 가입한 47가구의 62%(29가구)가 최우선변제 대상에서 빠졌다. 그렇다고 이를 소급 적용하는 건 근저당권자가 피해를 떠안는 만큼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오히려 이 제도가 현금 부자에게 수혜가 간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은 최우선 변제 기준을 순수 보증금으로만 잡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에서 보증금 1억원에 월세 500만원을 내는 세입자가 최우선변제 대상에 들어가는 식이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대표는 “사회적 약자는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강자가 혜택을 받는 모순이 존재한다”며 “주택도 상가처럼 월세를 보증금으로 환산해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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