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 대신증권 센터장 “中 회복 3분기쯤…반도체·2차전지·車 주목” [리서치센터장에게 듣는다] (9)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리나라 수출을 걱정하는 시선이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기업에 미중 갈등은 기회이자 동시에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양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정 센터장은 기존 관점과 다른 각도에서 현상을 분석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갈수록 격화되는 분위기다. 특히 반도체 부문 패권 다툼이 치열하다. 지난해 10월 미국이 대중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를 내놓으면서 갈등이 더욱 심화됐다. 중국 반도체 생산 시설에 첨단 장비 반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어 올해 3월에는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법 가드레일(투자 제한 장치) 세부 규정을 발표했다. 미국 보조금을 받은 반도체 기업은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확대폭이 10년간 5%를 넘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동안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미국의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에 대해 인터넷 안보 심사를 하겠다며 규제의 칼을 뽑아 들었다.
양국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는 상황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기업이 떠안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에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었지만, 양국이 완전히 갈라서면 생산 핵심 시설을 중국에 두고 있는 국내 업체 피해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정 센터장도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다만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우리나라 주요 산업은 미중 양국과 거래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환경임에는 틀림없다”면서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중국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상황에서 경쟁자를 따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상황에서 정면으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효과는 생각보다 약할 수도
미중 갈등과 별개로 정 센터장은 중국의 리오프닝이 한국 경제에는 ‘플러스’ 요인이 분명하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 경기가 악화된 배경에는 중국의 경기 불안에 따른 수출 부진과 반도체 업황 침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리오프닝으로 중국 경기가 회복 국면에 진입하면 한국의 무역수지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만 관광, 유통 등 중국 리오프닝에 큰 기대를 걸었던 산업에서 체감하는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센터장은 “중국 관광객의 국내 유입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지만 실제 수치를 보면 크지 않은 수준”이라며 “당장 명동에 나가봐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중국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명동을 찾는 관광객이 대부분 중국인이었다면 최근에는 동남아와 유럽인 비중이 높아졌다”며 “관광객이 다양해졌다는 관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많은 돈을 쓰고 가던 중국 관광객 효과에 거는 기대는 연초보다 크게 줄어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애널리스트로서 유통 분야를 담당했던 만큼, 유통 업체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중국 외 지역으로 고객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정 센터장은 “유통 업체 입장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은 여전히 중요한 고객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최근 중국 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미중 갈등이 심해지며 향후 한국과 중국의 관계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유통 업체들은 중국 외 국가 관광객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유통 업체의 중국 진출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다양한 업체가 여러 분야에서 중국 진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철수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세계와 롯데다. 국내에서는 ‘유통 공룡’으로 불리는 이들이지만 중국에서는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는 1997년 중국에 진출해 한때 매장 수가 30개에 육박했다. 하지만 실적 부진에 중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조치까지 겹치면서 2017년 모든 매장을 철수했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2015년 중국에서 100개 이상의 롯데마트 매장을 운영할 만큼 롯데 역시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을 노크했다. 하지만 신세계보다 1년 늦은 2018년 결국 중국 사업을 접었다.
정 센터장은 “유통 업체 입장에서 중국 현지 시장 진출은 앞으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이미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등 분야와 무관하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철수한 기업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통 업체들은 현지로 가면 국내와 달리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구조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3분기 코스피 고점 찍을 것
2600포인트 이상 가능하다
중국 리오프닝 효과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주식 시장의 가장 큰 상승 동력으로는 중국을 꼽았다. 국내 기업들은 결국 대중국 수출이 활발해져야 실적이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 센터장이 제시한 올해 코스피지수 밴드는 2180~2640포인트. 고점은 3분기 중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3분기를 콕 집어 예측한 이유는 중국 경기 회복이 예상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경기가 둔화되는 국면에서 중국 경기 회복으로 인해 수출이 늘어나면 한국 경기 역시 차별적인 흐름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경우 원화와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고 외국인 수급도 개선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 센터장은 “3분기 중 코스피지수가 2600선을 넘어설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중국의 경기 반등 모멘텀이 강해지면서 국내 기업 흑자전환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반도체 업황이 3분기부터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코스피 강세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 신재생에너지, 방산을 증시가 살아난다면 눈여겨볼 만한 업종으로 꼽았다. 해당 업종은 모두 글로벌 주요국의 정책이 집중되는 산업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 업종은 올해뿐 아니라 내년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이유로 향후 코스피가 추세적으로 반등하기 시작하면 이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 센터장은 “코스피지수 2400포인트 이상에서 추격 매수보다는 2300선대에서 변동성을 활용한 분할 매수를 추천한다”며 “1분기 실적을 확인하며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부담이 완화되는 국면에서 매수하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단, 증시가 2년 가까이 지속된 조정 국면에서 새로운 상승 추세로 반전하는 과정인 만큼, 진통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 증시가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좋은 기업을 찾고 투자하기 좋은 가격대를 판단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투자 전 기업에 대한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5호 (2023.04.19~2023.04.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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