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절망이 나를 도랑에 처박게 하지 마세요”
미셸 오바마 지음, 이다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416쪽, 2만원
미셸 오바마의 새 책이 나왔다. ‘비커밍(Becoming)’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비커밍’이 미국에서 흑인으로 처음 퍼스트레이디가 된 여성의 자서전이라면, 이번에 출간된 ‘미셸 오바마 자기만의 빛’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이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조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셸의 인기는 남편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넘어섰다. 2017년 퇴임 이틀 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미셸은 68%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남편(58%)을 앞질렀다. 지난 2020년 대선에 앞서 진행된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에서는 당시 대선 후보였던 조 바이든을 제치고 압도적인 대선 후보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2024년 미국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미셸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대권 주자로 호명되고 있다.
미셸의 인기는 책 판매에서도 확인된다. 2018년 출간된 ‘비커밍’은 첫 주 140만부가 팔렸고, 세계 50개 언어로 번역돼 총 1800만부 판매고를 올렸다. 민주당 대선 후보이자 퍼스트레이디 출신인 힐러리 클린턴 회고록 ‘살아있는 역사’(2003년)의 첫 주 60만부 판매 기록, 버락 오바마의 퇴임 후 회고록 ‘약속의 땅’(2020년) 800만부 판매 기록을 훌쩍 뛰어넘었다. ‘비커밍’은 국내에서도 6만부 이상 팔렸다.
미셸은 백악관을 나온 후 책 출간 등을 계기로 많은 독자들을 만났고 온갖 질문들을 받았다면서 “내게 모든 해답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대화는 시작하고 싶다”고 새 책을 쓴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책에서 “내가 일상의 균형과 자신감을 유지하는 데 유용하게 쓴 도구들, 불안과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 도구들”을 소개한다.
미셸은 먼저 뜨개질 이야기를 꺼낸다. 트럼프 시대를 고통과 절망 속에서 통과하면서 우연히 뜨개질을 시작했고 기묘하게도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큰 것을 생각만 하지 말고 작고 사소한 일부터 시도하는 것이 균형과 믿음을 회복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뜨고, 뜨고, 또 뜨면 한 단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에서 ‘할 수 있어’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미셸은 균형을 찾는 법, 두려움에 맞서는 법, 다정한 사람이 되는 법,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법 등에 대해 얘기한다. 자기계발의 전형적인 주제들이다. 하지만 미셸의 이야기는 전형적이지 않다. 성공한 여성,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성공담이 아니라 흑인·여성이라는 이중 소수자로 살아온 성장담에 가깝다. 온갖 편견과 한계 속에서도 자신의 밝은 빛을 꺼트리지 않고 전진하며 세상의 어둠을 밝혀온 한 여성의 “결연한 영혼”을 만나게 된다.
친구, 결혼, 자녀 등에 대해 미셸이 다듬어온 생각들을 들어보는 것은 이 책을 읽는 특별한 즐거움이 된다. 미셸은 “친구를 사귀는 데 진심이고 그 만남을 이어가는 데는 더욱 진심”이라며 우정의 가치를 강조한다. 배우자에 대해서는 “나는 남편이 나의 모든 이야기나 생각을 빠짐없이 들어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가 나의 모든 걱정거리를 함께 해결해주거나,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을 전적으로 책임져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고 썼다.
그가 결혼의 진정한 의미로 생각하는 것은 단순하고 든든한 확신이다. 무엇이 됐든 둘이 한 팀이 되어 마주하는 편이 낫겠다는 확신,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서로가 곁을 지킬 것이라는 확신, 우리의 사랑이 완벽하진 않지만 진실하다는 확신.
‘좋은 엄마란 무엇일까’라는 장에서는 자녀 양육에 대한 자신의 관점 대부분을 형성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한다. 미셸은 어머니에 대해 “우리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용히 주시하고는 있었지만 우리의 싸움을 대신 해주겠다고 발 벗고 나서지는 않았다”면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을 보고 듣는 것이다. 시종일관 아이들의 존재에 기뻐하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상대가 수준 낮게 굴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는 미셸의 유명한 말이다.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한 말이다. 미셸은 “품위 있게 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요?”라는 질문을 가장 자주 받는다면서 마지막 장에서 길게 답변한다.
그는 품위 있게 간다는 것은 “자제력을 발휘한다는 의미, 우리를 움직이는 좋은 충동과 나쁜 충동 사이에 선을 긋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흑인 청년이 경찰관의 무릎에 눌려 죽었는 데도,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습격하는 데도, 인권과 복지가 후퇴하는 데도 여전히 품위 있게 가야 하는가? 미셸의 답은 “그렇습니다. 여전히 그렇습니다”이다.
“이 힘든 시절에 도덕성이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의문을 에워싼 모든 날것의 감정을 이해한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절망, 상처와 공황 상태는 타당하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빨리 도랑에 처박히게 할 수 있는지 잊지 말자.”
김남중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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