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모순 덩어리 제목이... 팔리네?
사는이야기 담당 편집기자로 일하며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편집기자의 도움 없이도 '죽이는 제목'을 뽑을 수 있도록 사심 담아 쓰는 본격 제목 에세이. <편집자말>
[최은경 기자]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 흔 |
보자마자 기가 막혔다. 이런 제목의 책도 나올 수 있는 거였어? 잊을 수 없는 문장이자,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겪는 10년 동안 정신과 의사와 상담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 이 책이 많이 팔린 건 제목이 팔 할, 아니 구 할은 했을 거라며, 내심 제목 지은 사람의 감각을 부러워했다.
저 비슷한 생각을 나도 언젠가 했던 것 같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쓰러진 지 하루 만에 아버지를 잃은 그 막막한 와중에도 배는 고팠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긴 하는구나', 꼬르륵꼭꼭 거침없이 소리를 토하는 내 위장이 그토록 하찮게 느껴진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으니. 어떤 일이 닥쳐도 삶을 이어 나가게끔 회로가 설계된 동물. 그러니 백세희 작가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었겠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엔 직접 보고 듣지 않아도 좋은 건 너도나도 퍼다 나른다.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엄청나게 많은 패러디 제목이 쏟아졌다.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갖고 싶어' 같은. 출판 업계는 물론, 기사 제목, 제품 마케팅 문구, 강의 소개 카피 등등에서.
지금 당장 비슷한 내용으로 패러디해 보라면 할 수 있다. '때려치고 싶지만 승진은 하고 싶어', '채식하고 싶지만 치킨은 먹고 싶어', '연애는 하고 싶지만 결혼은 하기 싫어', '아이는 예쁘지만 출산은 싫어'. 만약 제목에 저작권을 주장하는 출판사가 있다면 떼돈을 벌었으리.
▲ 앞뒤 안 맞는 모순적인 상황에도, 독자는 그 느낌이 뭔지 정확히 알고 기억해 낸다. |
ⓒ 픽사베이 |
"우울하면 계속 우울해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마르텡 파주의 <완벽한 하루>라는 책을 구해 봤다. 25살짜리 남자가 아침에 권총으로 자살하는 상상을 하면서 일어난다. 하루 종일 죽음을 생각하는데 심각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재미있다. 작가는 이런 모든 것이 한데 모인 게 인생이고 모든 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 그래 행복과 불행이 따로 떨어지는 게 아니구나, 우울하다가도 배고픔을 느낄 수 있고 죽고 싶다가도 웃긴 말을 하면 웃을 수 있는 게 인생이구나, 당연한 거구나 받아들이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사실 떡볶이는 그렇게 모순적인 감정에서 지어보았다. 슬픈 마음인데 제목을 위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 출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은 사실, http://omn.kr/rzj8
역시 그랬군. '죽고 싶지만'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읽어나가는 독자라면 기대하는 다음 문장(내용)이 있었을 텐데 그것이 당연히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당황스러운 내용은 아니었을 거다. 앞뒤가 안 맞는 모순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상황은 모순적이지만 '그래 그렇지' 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거다. 독자는 그 느낌이 뭔지 정확히 알고 기억해 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역대급 판매고를 올리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사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 모순적인 상황을 독자들은 이미 문학이란 장르 속에서 꽤 오랜 시간 즐겨왔다. 비교적 근래에 출간 책 중에서는 정한아 작가의 <친밀한 이방인>이 그렇고, 당장 포털에 검색만 해봐도 모순적인 제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독자들은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과 최은영 장편소설 <밝은 밤>을 모순적인 제목으로 꼽았다(찾아보면 훨씬 더 많은 작품들이 있겠지만). 사전적 의미로 이방인은 '다른 나라에서 온 낯선 사람을 이르는 말'인데 친밀하다고 해서 그렇고, 편의점 역시 사전에는 '고객의 편의를 위하여 24시간 문을 여는 잡화점'이라고 나오는데 '불편하다'는 게 그렇다. 또 밤은 어두운데 '밝다'고 하니 표현이 모순적이라서 그렇다.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모순의 효과를 제대로 노린 제목이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모순적인 효과를 의도하고 제목을 잡은 건 아니었는데 이 제목도 그렇게 나온 것일지도.
☞ 명상을 하지만 가부좌는 하지 않습니다 https://omn.kr/20svf
아래는 시민기자가 직접 쓴 모순적 표현을 담고 있는 제목이라 소개한다.
☞ 수영장에 가지만 수영은 하지 않습니다 https://omn.kr/238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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