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반으로 계약하면 전세사기 막을 수 있다”
지난해 폭락했던 비트코인의 가격이 올해 들어 다시 80% 급등했다. 십여년간 등락을 거듭하는 암호화폐의 가격 뒤에는 암호화폐를 포함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기대와 회의가 교차하고 있다. 과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보여줄까. 그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블록체인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용범 단국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를 최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박 교수는 자율형 블록체인, 스마트 컨트랙트, web 3.0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투기 대상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것도 일견 맞는 말이다. 지금 암호화폐는 그 기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환경적인 요인이 크다. 화폐로 사용되기 위해선 결국 신용기술로서 쓰여야 하는데 암호화폐의 신용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가 전무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암호화폐를 제도권 내로 포섭하고 감독 기능을 수행해야 암호화폐가 건전하게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정부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ICO(가상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를 합법화해야 한다. ICO는 특정 암호화폐 정보를 공개하고 초기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IPO(기업공개)와 유사한 개념이다. 현재 일어나는 암호화폐 문제 상당 부분이 발행 주체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테라 사태를 보더라도 발행 주체인 대표가 투자자들을 속여서 벌어졌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ICO가 허락돼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 사전 통제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사후 대응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ICO를 허용하더라도 외국에서 만들어진 암호화폐는 해결이 어려운 것 아닌가.
“현재 EU에서 도입을 위한 최종 투표를 남겨놓고 있는 가상자산(암호화폐) 규제안인 MiCA는 유럽에서 ICO를 한 암호화폐만 인정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게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 해외 암호화폐의 거래도 허용해야 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해당 암호화폐를 상장한 거래소에게 책임을 묻도록 해야한다. 국내 암호화폐는 정부가, 해외 암호화폐는 거래소가 각각 위험성을 사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암호화폐의 기술 자체는 실질적인 쓸모를 갖기에 충분하다는 말인가.
“현재로선 블록체인의 처리 속도 문제가 과제로 남아있다. 암호화폐 등 블록체인 기술로 처리하려고 하는 데이터의 용량은 전세계적인 규모다. 그런데 현재는 금융시스템도 국가와 지역별로 블록이 나뉘어있기 때문에 전세계를 통합하는 데이터 처리 기술이 많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다. 비자, 마스터 등 글로벌 신용카드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큰 규모로 운영될 때 그 의미가 커지는 기술이다. 데이터 처리 속도와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혁신이 가능하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실질적인 가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은 기술 자체의 발전보다는 적용 방법이 더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최근 뜨는 인공지능은 일명 ‘솔루션 테크놀로지’로, 문제를 풀고 해결해주는 기술이다. 반면 블록체인은 ‘인프라 테크놀로지’다. 그 기술에 다른 것을 얹어야 쓸모를 가질 수 있는 기반 기술이다. 예컨대 암호화폐, NFT 등이 모두 블록체인 기술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한 응용의 형태다. 이렇게 블록체인을 통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느냐를 다양하게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우리 삶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일상의 수많은 거래가 변화하게 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하면 모든 계약을 사전에 프로그램화할 수 있다. 예컨대 현재의 전세 계약은 문서로만 이뤄진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위험이 존재한다. 그런데 은행, 정부 등을 연계해 스마트 컨트랙트를 활용하면 계약의 이행을 시스템적으로 강제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이 무조건적으로 데이터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물론 블록체인 기술에도 한계는 존재한다.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열리면 블록체인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암호 알고리즘들은 풀기 힘든 문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다양한 각도에서 순식간에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 때문에 이 공격을 이겨내는 ‘양자 내성’도 블록체인 기술의 큰 과제 중 하나다. 물론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는 것은 한참 먼 미래다.”
-왜 꼭 블록체인이어야 하나.
“모든 사회 분야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활동하는 시간은 늘어나고, 그 활동들은 모두 데이터로 기록된다. 그런데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디지털화는 오히려 우리의 생활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이런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게 데이터를 분산시켜 저장하는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완벽하지 않지만, 모든 것은 가능성의 문제다. 현재로서 블록체인은 가장 안전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성남=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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