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잘 싸웠다’ 뜨거웠던 캐롯의 봄농구

이누리 2023. 4. 20.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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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고양 캐롯과 안양 KGC의 4강 플레이오프 첫 출격을 앞두고 라커룸에서 김승기 캐롯 감독은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올 시즌 캐롯은 우여곡절 끝에 PO에 진출한 뒤 매 경기 드라마를 썼다.

캐롯은 19일 KGC와 4차전을 끝으로 길었던 봄농구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올 시즌 통합우승이 유력한 KGC와 맞붙은 4강에서도 캐롯은 쉽게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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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 캐롯 감독이 19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고양 캐롯과 안양 KGC인삼공사의 4차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리바운드’가 아니라 캐롯을 찍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게 더 재밌는 거 같은데”

프로농구 고양 캐롯과 안양 KGC의 4강 플레이오프 첫 출격을 앞두고 라커룸에서 김승기 캐롯 감독은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올 시즌 캐롯은 우여곡절 끝에 PO에 진출한 뒤 매 경기 드라마를 썼다.

캐롯은 19일 KGC와 4차전을 끝으로 길었던 봄농구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달 초부터 쉴 틈 없이 9경기를 소화하며 이미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커진 상태였다. 이날 경기는 졌지만 팬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경기 후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건 불운의 에이스 전성현. 그는 정규시즌 중반까지 활약하며 최우수선수(MVP) 후보로도 거론됐지만 돌발성 난청으로 PO 경기는 거의 뛰지 못했다. 전성현은 “올 시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팬들에게 감사를 전한 뒤 “올해가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린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캐롯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해 고양 오리온을 인수해 새로 출범한 캐롯은 시즌 내내 ‘돈 문제’에 시달렸다. 운영 주체인 데이원스포츠가 정규시즌 막바지에 구단 운영 중단을 선언하면서 사태는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KBL 가입비 납입금을 제때 내지 못해 순위에 들고도 PO에 진출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어렵사리 자금을 마련해 PO엔 올랐지만 재정난은 계속됐다. 선수들 월급이 밀리는 건 물론이고 식비까지 끊겼다. 캐롯은 “지난해 말부터 포항을 연고로 한 기업과 매각 협상 중”이라고 밝혔지만 협상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팬들은 팀의 ‘공중분해’를 우려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은 투혼을 발휘했다. 6강 PO에선 울산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역전 업셋을 거뒀다. 6강에서 1차전과 3차전을 지고 벼랑 끝에 몰렸던 캐롯은 4차전을 이기며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어진 5차전에선 극한의 확률을 뚫고 3승 2패로 4강 진출권을 따냈다. 역대 PO 1차전을 패한 팀이 4강에 오를 확률은 5.9%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다.

올 시즌 통합우승이 유력한 KGC와 맞붙은 4강에서도 캐롯은 쉽게 죽지 않았다. 1차전에서 ‘역대 최다 점수 차 패배’라는 굴욕을 당한 뒤 2차전에서 곧바로 설욕에 나섰다. PO 진출 후 팀의 에이스로 부상한 이정현은 무려 32점을 폭격하며 반격을 가했다.

팬들도 놀라운 단합력으로 캐롯을 지지했다. 식비가 끊겼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팬들은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아 장어덮밥, 아웃백 등 선수 조공에 나섰다. 관중석을 가득 메워 캐롯의 상징색인 주황 물결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PO 홈경기 중 3경기가 평일에 열렸는데도 평균 관중이 2801명으로 뛰었다. 관계자들도 “창단 7개월 만에 모인 화력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입을 모았다.

악조건에서도 팀을 이끈 김승기 감독은 이날 경기를 마치고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농구는 계속될 것”이라고 ‘다음’을 예고했다.

이누리 기자 nur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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