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Q sign #11] 다시 학교로
그래, 식당에서 넘어지고 베고 데이고 할 바에야 예전의 내 carrier로 돌아가자고 결단을 하고 Denver Down Town에 있는 기술전문학교, Emily Griffith Technical Collage로 찾아갔다. 이 학교는 요리 클래스부터 자동차 정비 등 생업을 위한 전반적인 기술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다시 공부해야 할 분야는 당연히 Fashion Design이다. 일단 학업 적응 능력 테스트(영어/수학)를 마치고 등록을 위해 학비 담당 직원 앞에 앉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을 알지 못하는 낯선 도시에서의 새 출발, 64세 할머니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직원과 상담 결과, 학비는 정부에서 보조하는 Grant로 해결되었다.
학비는 해결되었지만, 생활비와 실습비는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기본 수입이 되는 SSA 수입(SSA는 원래 만 66세에 받는 것이고 70세에 받으면 최고치를 받을 수가 있지만 맨손인 형편상 64세부터 받기 시작해서 매우 빈약한 수준)만으로는 부족하기에 그 지역 주간지의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을 해서 인터뷰를 하고 보모를 하게 되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작은 아이가 1학년인데, 아이들의 등하교를 담당하고 아이들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집 안 청소를 하는 것이 내가 맡게 된 일이었다.
복잡한 일은 아니니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학교는 상당히 멀었다. 그 집이 현재의 주택으로 이사를 오기 전에 살던 집 근처였기 때문에. 미국에 살기는 해도 나는 미숙한 운전자였다. 미국에 도착하니, “어미는 마음이 여려서 운전하지 못한다”는 시어머니의 단정과 “운전은 본인 담당”이라고 못을 박는 그의 주장에 애초부터 운전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급하게 일을 나가게 되었다. 당연히 그가 나의 출근과 퇴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장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국에서 운전하지 못하면 장애인과 다를 바 없다고 해서, 운전면허를 따지 않고는 직장을 나가지 않겠다고 시위를 하게 되었다.
마침내, 1984년도 봄에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되었다. 당장은 운전을 하지 못한다 해도 기회가 되면 스스로 운전을 할 수 있는 빌미를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나 스스로 운전대를 잡고 필요한 곳을 다니기 시작하자 사는 것이 편해졌다. 그렇기는 해도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매우 긴장스러운 일이다. 아이들이 차 안에서 가만히만 있어도 되는데, 이 아이들이 차만 타면 난리들을 친다. 신발을 벗어 팽개치고 의자에 누워서 차창을 발로 두드린다. 도시락을 쏟고, 소리를 지르면서 싸운다. 자기들 부모가 운전하는 차에서는 얌전하게 있는 아이들이, ‘부리는 사람’에게는 막무가내다.
Colorado는 겨울이 길다. 길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남향이 아닌 북향 쪽에는 봄이 오도록 얼은 채로 있다. 그런 길들을 나 혼자도 아니고 이런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것은 안전하지가 않다. 매 순간 기도를 드리면서 다니긴 하지만 말이다. 그게 다가 아니다. 예쁘게 생긴 작은 아이는 음료를 입에 가득 채우고 와서 내 얼굴에 뿜어 대기도 한다. 아무리 아이들을 좋아하고 돈이 아쉽다고는 하지만 계속하기에는 좀 그렇다. 왜그만두냐고 묻는 아이들의 의사 엄마에게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게 조심스럽다”고 말을 했다.
그다음에 택한 아르바이트는 care giver(간병인)이었다. 그 쪽으로는 예전에 이미 따 놓은 자격증들도 있었고, 심지어 양로원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증도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시험을 쳤는데 단번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영어권의 응시자들에게도 쉽지 않아 일곱 번의 시도를 하고서야 합격을 한 사람도 있다는데, 비영어권인 나는 웬일인지 무슨 시험을 치든 합격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 일도 어려울 것은 없었다.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셨다지만 아직도 곱상하시고 얌전한 할머니였다. 방 2개 화장실 2개인 단층집에서 혼자 사시는 분인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분 역시나 고생이 많으셨다. 일주일에 세 번, 아침나절에 가서 같이 대화도 나누고 필요한 물품들을 사다가 드리고 약국에서 약도 타다 드렸다. 병원에도 모시고 가고 산책도 같이하고 점심도 함께 먹었다. 식당의 주방보조보다도 나았고 보모 일보다도 훨씬 편했다. 이렇기만 한다면 학교 공부를 끝내도록 했으리라.
문제가 생긴 것은 느닷없이 들이닥치곤 하는 할머니의 딸이었다. 하루는 할머니 왈, 어제 우리 딸이 왔다가 갔는데 “아줌마가 있는데 왜 창문 블라인드에 먼지가 있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일주일에 세 번 오전에만 오는 사람이, 매일 창문을 열고 계신 길거리 집의 먼지까지 책임을 지라고?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웃기는 일은, 그 딸이 내가 섬기는 교회에 다니는 성도라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목사님, 목사님” 하면서 자기 엄마 집에서는 “아줌마”? 내가 가장 낮은 자리에 있을 때, 상대방의 인격을 제대로 파악을 할 수가 있다. 명예와 권세와 물질이 있을 때야 그 누가 함부로 하겠는가?
뒤늦게, Taylor shop에 가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가 면접과 테스트를 하고 수선을 하게 되었다. 운영자는 튀르키예 여자였고 직원들은 히스패닉 여자 한 명, 러시아 여자 한 명, 그리고 몽골 여자 한 명이었다. 상당히 고급 집이라, 2013년인 그 당시에 바지 단 하나 고치는 것을 최소 14달러에서 28달러까지 청구한다. 기계도 종류별로 있어서 공부를 마치고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될 경우(회사에 취직할 나이가 지났으므로) 좋은 실습장이 될 것 같았다. 배우나 상류층이 아닌 이상, 옷을 맞춰서 입는 경우는 드물고, 웬만한 사람들도 고급 기성복을 사서 몸에 맞게 고쳐서 입는 경향이기 때문에 수선집을 하는 게 오히려 돈 벌기가 수월하다.
그 집에서 일주일에 세 번 경험을 쌓으면서 패션 디자인의 전 과정을 마치게 되었는데,…필수과목 몇 개가 Evening Class에만 있어서, 하필 낮이 짧은 겨울에 그 과목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든 홈리스들이 있고 대부분의 홈리스들이 도심에 몰려 있다. 차를 운전해서 갈 수도 없고(실력도 안 되고 주차비가 비싸기도 하고) 결국은 여전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셔틀을 갈아타고 내려서 두어 구역을 걸어가야만 한다.
즐비한 홈리스들 사이를 뚫고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포기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시 이민 초창기 때의 마음으로 돌파하기로 작정하고, 남은 과목들을 위해 학교 장학금을 신청했다. 이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자가 많으므로 에세이를 써서 제출하고 학교 대표이사와 인터뷰를 해서 장학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학생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어야 한다. 애써 호소한 나머지 학교 장학금을 받아 나머지 학비를 해결했다. 이제, 홈리스들의 세상인 춥고 어두운 밤길을 통과해 학교를 오고 가야 한다.<계속>
◇김승인 목사는 1947년에 태어나 서울 한성여고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LA 기술전문대학, Emily Griffith 기술전문대학을 나와 패션 샘플 디자인 등을 했다. 미국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북미총회에서 안수받았다. 나성순복음교회에서 행정 비서를 했다. 신앙에세이를 통해 문서선교, 캘리포니아에 있는 복음방송국(KGBC)에서 방송 사역을 했다. 미주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논픽션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했다.
정리=
전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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