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궁 "무기 지원은 전쟁 개입"에…대통령실 "러에 달렸다"

박현주 2023. 4. 2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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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미국과 러시아의 반응이 각각 '환영'과 '반발'로 극명히 엇갈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면서도 "한국이 어떻게 할지는 러시아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바흐무트의 우크라이나군. AFP=연합뉴스.


"가정적 상황에 원론적 대답"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일 서울 용산 청사 브리핑에서 전날 윤 대통령의 발언에 반발하는 러시아에 대해 "러시아 당국이 일어나지 않는 일에 대해 코멘트했는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향후 러시아의 행동에 달려있다고 거꾸로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말씀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이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공개된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는 모습. 대통령실.


이와 관련, 해당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인도적 기준에서 국제사회가 모두 심각하다고 여길만한 중대한 민간인 살상이나 인도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가정적인 상황에 대해 한국도 어떻게 가만히 지켜볼 수 있겠나 하는 점을 가정형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 국내법에 바깥 교전국에 대해서 무기 지원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다"며 "다만 우리가 자율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국제 사회 대열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한ㆍ러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ㆍ관리해야 한다는 숙제를 동시에 균형을 맞춰서 충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얼굴을 배경으로 발언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 EPA=연합뉴스.


"北에 무기 주면 좋겠나" 반발


실제 전날 윤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된 후 러시아는 "무기 공급은 전쟁 개입을 간접적으로 뜻한다"(외무부), "무기 제공은 반(反) 러시아 적대 행위로 간주하겠다"(크렘린궁 대변인), "한국은 무기 제공의 즉각적인 부정적 영향에 대해 잘 알 것"(주한러시아대사관) 등 입장을 내며 일제히 반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러시아의 최신 무기가 북한의 손에 있으면 한국이 뭐라 할지 궁금하다"며 북ㆍ러 무기 거래까지 암시하며 위협했다.

이 같은 러시아의 반발에 대해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윤 대통령의 인터뷰를 정확히 읽어볼 것을 권한다"며 맞받아쳤다. 아직 외교 채널을 통한 러시아 측의 공식 항의는 없었다고 한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 타스=연합뉴스.


美 "한국 기여 환영"


반면 미 국방부 대변인은 19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지원 관련 발언에 대해 "미국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가정적 상황'에 대한 답변이지만 러시아 측 반응과는 온도 차가 극명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연구소(CSIS) 부소장도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탄약 보유량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생산 능력도 뛰어나다"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나토 회원국의 재고를 한국이 채우는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침 백악관은 같은 날 3억 2500만 달러(약 4319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용 탄약과155㎜·105㎜ 포탄, 대전차 미사일 등이 포함됐다. 155㎜ 탄약의 경우 한국이 미국에 50만 발을 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러시아군 포격을 위해 엄폐한 우크라이나 아우디이우카 경찰. AP=연합뉴스.


정상회담서도 요구 전망


이런 가운데, 오는 26일 한ㆍ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부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군사적 지원은 가능성만 열어두고, 일단 인도적 지원, 특히 재건 활동에 방점을 찍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인도적, 재정적 지원을 올해 적극적으로 하고 있고, 앞으로 필요하면 우크라이나 재건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한국에 건설·디지털·IT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재건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對) 우크라이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미ㆍ러의 입장 대립이 의도치 않게 수면 위로 올라온 만큼, 한국이 이런 상황 자체를 레버리지로 적절하게 활용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러시아의 반발을 대미 설득의 레버리지로 일부 활용할 수도 있다"며 "가정적 상황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러시아의 현재 태도를 볼 때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인도적 지원, 재건 노력 등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연합뉴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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