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분의 여정... 기립 박수 터진 '파우스트' 흥행 요인

손화신 2023. 4. 2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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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연극 <파우스트>

[손화신 기자]

165분의 긴 여정이었지만 지루할 틈 없이 휘몰아쳤다. 연극 <파우스트>가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와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무대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초연 고전극임에도 <파우스트>는 어떻게 1300여석의 대극장을 꽉 채우는 흥행을 이룰 수 있었을까. 지난 1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파우스트>의 무대를 직접 보고 흥행의 요인을 짚어봤다. 

박해수부터 원진아까지... 최고의 원캐스트
 
 연극 <파우스트>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기 위해 무대에 다시 나타나자 기립박수가 터졌다.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세 시간에 가까운 시간을 불태운 배우들의 열연에 긴 박수로 보답했다.

파우스트와 그의 영혼을 걸고 계약을 맺는 악마 '메피스토' 역의 배우 박해수,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하고도 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노학자 '파우스트' 역의 배우 유인촌, 마녀의 영약을 마시고 젊음을 얻은 '젊은 파우스트' 역의 배우 박은석, 젊은 파우스트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순수한 여성 '그레첸' 역의 배우 원진아. 

사실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네 배우의 원 캐스트는 소식만으로도 연극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더군다나, 네 배우의 연기는 명성에 걸맞게 훌륭했고, 때문에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점이 <파우스트> 흥행 요인의 첫 번째가 아닐까 싶다.

특히 악마 메피스토를 연기한 박해수의 연기는 압권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발성과 시원한 이목구비로 짓는 다양한 표정, 날렵한 움직임 등이 탄탄한 연기력과 더해지면서 메피스토 그 자체로 보였다. 박해수의 연기를 보고 나면, <파우스트>라는 작품의 핵심 주인공이 '파우스트'가 아니라 '메피스토'라는 걸 깨닫게 된다.    

유인촌은 지식으로 가득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인생의 쾌락과 자신 안에서 꿈틀대는 욕정을 갈망하는 솔직한 연기를, 박은석은 그토록 갈망한 삶을 손에 넣지만 자신 때문에 희생된 그레첸을 보면서 가슴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처절한 연기를, 원진아는 젊은 파우스트를 만나 짧은 행복을 느낀 뒤 파멸해버리는 절망적인 연기를 펼쳐보였다. 실력파 조연 배우들의 강렬한 열연도 돋보였다.

괴테의 위대한 작품을 '쉽게' 이해할 기회
 
 연극 <파우스트>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개인적으로, 연극 <파우스트>를 관람하고자 한 이유 중 하나는 괴테의 원작 <파우스트>를 읽다가 실패한 경험을 만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난해한 희곡 형태로 쓰인 1만2111행의 대작을 읽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던 만큼, 만일 연극으로 이 작품을 본다면 보다 쉽게 작품 전체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 

결과적으로 이 기대는 충족되었다. 양정웅 연출의 이 작품은 괴테의 희곡을 현대적으로 풀어내 고전극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면서도 원작의 예술성을 살리는 전략을 취했다. 덕분에 독일 문학의 거장 볼프강 폰 괴테가 무려 60년을 쏟아 집대성한 필생의 역작 <파우스트>가 무대에서 보다 '친절하게' 재해석됐다. 이것은 이 연극의 또 다른 인기요인으로 보인다. 한 관객은 "진중하기만 한 작품일까 우려했는데 웃음 포인트들이 너무 좋았다"라는 글을 SNS에 남기기도 했다. 

신과 내기를 한 악마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에게 쾌락과 영혼을 맞바꾼 계약을 제안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고뇌와 욕망, 본능을 담아낸 이 연극은 괴테라는 대문호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대사로 전달함으로써 인류의 역사, 철학, 종교 등을 아우르는 깊이를 보여주었다.

뮤지컬 스케일에 버금가는 무대연출
 
 연극 <파우스트>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연극 <파우스트>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연극 같지 않은 거대한 스케일도 흥행의 요인으로 해석된다. 27M의 거대한 LED 스크린에 펼쳐지는 디지털 영상이 무대와 결합된 점이 특히 파격적이었다. 배우들이 무대 뒤, 관객은 보이지 않는 곳에 마련된 세트에서 연기를 펼치면 이를 무대 위 스크린을 통해 라이브 영상으로 송출하는 방식을 선보인 것. 무대 위의 배우와 무대 뒤에 있는 배우가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장면이 관객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신비로운 숲과 동굴, 거대한 성모 마리아상을 중심으로 하여 펼쳐지는 약 170개의 무대 소품과 약 110벌이 넘는 의상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또한, 잔에 물이 부어지면 곧장 포도주로 변한다든지, 책을 열면 연기가 피어오르는 등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통통 튀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런 마술 기법은 일루셔니스트 이은결과의 협업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질주하는 욕망의 끝에서 절망하는 인간, 그 덧없는 노력의 끝은 어디인가. 이런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연극 <파우스트>는 지난달 31일 개막하여 오는 4월 29일까지 4주간 펼쳐진다.
 
 연극 <파우스트>
ⓒ LG아트센터, ㈜샘컴퍼니, ㈜ART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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