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로 성장한 쇼트트랙 에이스…박지원은 포기할 수 없었다

고봉준 2023. 4. 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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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만난 쇼트트랙 국가대표 박지원. 시련의 계절을 보낸 박지원은 좌절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 세계 1인자가 됐다. 김종호 기자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으로 발돋움한 박지원(27·서울시청)을 만나기 전, 지난달 열렸던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쇼트트랙선수권대회의 경기 영상을 되돌려봤다. 현장에서 레이스를 지켜보긴 했지만, 당시 상황과 주요 장면을 더 자세하게 살피기 위해 스마트폰을 다시 꺼냈다.

눈길을 사로잡은 대목은 1500m와 1000m 결선 영상이었다. 박지원은 누구나 긴장할 법한 경기 전부터 당찬 눈빛과 손짓으로 자신감을 뽐냈다. 결승선을 앞두고는 미리 세리머니까지 펼치는 여유도 보였다. 과연 저러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또, 아직은 베일로 가려진 박지원은 어떤 선수일까. 마음속 여러 궁금증을 안고 훈련장인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박지원을 만났다.

올 시즌은 박지원의 이름 석 자가 확실하게 각인된 시간이었다. 먼저 1~6차로 나눠 열린 월드컵에서 금메달 14개를 싹쓸이했다. 지난달 목동아이스링크에서 펼쳐진 세계선수권에선 개인전 1500m와 1000m 정상을 차례로 밟았다. 이 사이 종합 세계랭킹 1위도 확정해 최우수선수 트로피 성격의 크리스털 트로피까지 품었다. 방안의 상패 진열장이 하나 더 필요해진 이유다.

최고의 시즌을 보낸 박지원은 “이번이 부모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처음으로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국제대회였다. 정말 뿌듯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크게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속으로 기뻐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하늘 위로 떠있던 기분이 이제는 조금 진정된 느낌이다. 지금은 자만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지원은 올 시즌 활약으로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국가대표 선발전(18~23일 진천선수촌)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받았다. 잠시 쉴 법도 하지만, 훈련을 게을리 하는 법은 없다. 여전히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매일 빙판을 누비고 있다. 때로는 서울시청 동료들의 훈련 파트너도 자청한다.

물론 휴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혼자만의 작은 취미로 빙판에서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박지원은 “카메라가 내 휴식처다. 주로 동료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찍고 있다. 사진과 영상으로 ‘순간을 기록해보자’는 마음으로 1년 전부터 시작한 취미다. 처음에는 다들 부끄러워했는데 이제는 ‘언제 또 찍어주냐’며 물어보곤 한다”고 웃었다.

쇼트트랙 남자 종합 세계랭킹 1위 박지원. 김종호 기자

1996년 강릉에서 태어난 박지원은 경포초 시절 스케이트와 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취미 정도로 여겨 강습반을 다녔다. 그런데 또래보다 나은 실력이 운명을 바꿔놓았다. 당시 강습 코치가 엘리트 입문을 권하면서 쇼트트랙에만 집중하게 됐다. 이어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를 앞두고 서울 한산초로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박지원은 “자주 1등을 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학교 다닐 때까지는 은메달과 동메달이 더 많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달렸다”고 회상했다. 한때는 작은 체구도 콤플렉스였다. 현재 박지원의 신장과 체중은 170㎝와 65㎏이다. 어릴 적에는 또래들보다 덩치가 더 작아 몸싸움에서 밀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박지원은 “그때 단점이 약이 됐다. 차라리 몸싸움 없이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찾게 됐다. 그렇게 하니까 오히려 실격 요소 없이 1등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설명했다.

박지원. 김종호 기자

콤플렉스를 자양분 삼아 늠름하게 성장한 박지원. 그러나 20대는 시련의 계절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동료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메달을 따내는 장면을 TV로만 지켜봐야 했다.

박지원은 “두 대회 모두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컸다. 2015~2016시즌 처음 국가대표가 된 뒤 올림픽은 꼭 가고 싶은, 가야만 하는 대회였다. 그런데 결국 실력 부족으로 그 벽을 넘지 못했다”고 아픔을 떠올렸다. 이어 “그래도 올림픽 경기는 모두 챙겨봤다. 내가 떨어졌다고 해서 그토록 사랑하는 쇼트트랙을 등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윤재명 감독(왼쪽)과 박지원. 2021년부터 서울시청 소속으로 뛰고 있는 박지원은 윤 감독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시는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고봉준 기자

두 차례 올림픽이 지나가는 사이 박지원도 어느새 20대 후반이 됐다. 일각에선 “박지원의 아까운 시간이 이렇게 끝난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그러나 박지원은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났다. 올 시즌 남녀 국가대표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첫 번째 전성기를 열었다. 어릴 적처럼 이번에도 실망과 좌절이 좋은 자양분이 됐다.

끝으로 박지원에게 자신감의 원천을 물었다. 좀처럼 긴장하지 않고 레이스를 1등으로 마치는 비결이 궁금해서였다. 박지원은 “나는 내가 만족할 때까지 운동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스타트 라인 앞에서 긴장하지 않더라. 그런 점이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면서 “올 시즌 성적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꼈다. 비시즌 보완 훈련을 통해 다음 시즌에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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