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직접 운전하는 1m34㎝ 아버지, 소문난 효자 1m95㎝ 아들의 감동 배구
이형석 2023. 4. 20. 11:50
20일 장애인의 날, 따뜻한 감동 부자 이야기
1m34㎝ 성장 멈춘 지체장애 부친…"일찍 철이 든 아들, 든든하다"
한성정 "아버지 창피한 적 한 번도 없다, 이제는 내가 뒷바라지"
프로배구 KB손해보험 한성정(27·1m95㎝)은 매 경기 시작 전과 종료 후 팬에게 특별한 인사를 한다. 그 팬의 키는 1m34㎝. 둘의 신장 차는 61㎝에 이른다.
키 작은 팬은 불편한 몸으로 200㎞(옥천↔의정부체육관 편도 기준) 거리를 운전해 경기장을 찾는다. 그가 한성정을 만나는 시간은 찰나처럼 짧다. 그러나 팬이 느끼는 행복은 영원처럼 길다. 애틋한 아버지와 아들은 배구장에서 이렇게 만난다.
한성정은 배구계에 소문난 효자다. 그는 아버지 한은범(58)씨의 손을 매만지며 "날 위해 온갖 일을 다하셨다. 내가 어릴 적, 차가운 물 속에서 오랫동안 수도 관련 일하며 동상에 걸리셨다"며 "요즘에는 손도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 지문도 거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씨는 지체장애 3급(왜소증)이다.
한성정은 2022~23시즌 총 34경기에서 234득점을 올린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다. 공격은 물론 수비와 리시브 실력도 좋다. 2017~18년 전체 1순위로 우리카드에 입단, 2021년 12월 KB손해보험으로 이적했다. 지난해 생애 첫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KB손해보험과 총액 5억원에 계약했다.
아버지의 작은 등허리를 보며 아들은 크게 자랐다.
아버지는 걷기도 전에 다쳤다. 형이 어린 한 씨를 업고 있다가 뒤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당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평생 불편한 삶을 살아왔다. 한성정은 "최근 병원을 갔더니 아버지의 장기가 자리를 잡은 상태여서 수술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큰 아들 한성정을 품에 안기까지 걱정이 많았다. 한 씨는 "내가 어릴 때부터 약을 많이 먹었다. '혹시나 장애를 안고 태어나지 않을까' 하고 속을 많이 끓였다"고 털어놓았다. 간호사로부터 '아이가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도 아들 낳았다"고 기뻐했다.
걱정과 달리 한성정은 유치원 때부터 또래보다 한 뼘 이상 키가 컸다. 초등학교 시절 배구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한 달 넘게 지도자들이 매일 집으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만류했다. 한 씨는 "영세민이어서 국가 보조금으로 생활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몸이 성치 않아 써주는 곳이 없었다. 트럭 운전이나 상수도 정비 등 막노동을 했지만, 수입이 변변치 않아 최저 생계비로 생활했다. 그런데 운동하는 자식을 키우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지 않나"라고 했다.
감독과 면담 후 한 씨는 아들에게 '배구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성정은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도 다니지 못했다. 당연히 배구 입문을 반대할 줄 알았는데, 허락해 주셨다"고 돌아봤다. 한 씨는 "난 학창 시절 체육 시간만 되면 혼자 교실을 지켰다. 그런 아픔을 겪었으니 운동하고 싶다는 아들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헌신을 떠올리며, 한성정은 운동에만 집중했다. 한 씨는 "배구부 아이들이 단체로 훈련을 빠지고 도망갈 때, 성정이는 홀로 남아 운동했다. 이러면 선배들이 혼낼 텐데, 성정이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전 도망갈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선배들도 성정이의 사정을 이해하고 봐줬다"고 한다. 한성정은 "아버지가 힘들 게 돈 버시는 걸 알고 있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홍익대를 대학배구 최초 정규리그 전승 우승으로 이끈 한성정은 졸업 전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고려해 일찍 돈을 벌기 위해서다. 1순위 지명권을 얻은 우리카드는 주저 없이 전체 1순위로 한성정을 지명했다. 한 씨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당시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다. 아들 이름이 가장 먼저 호명되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다들 나만 쳐다보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는 "1순위 입단은 하늘이 돕는 거 아닌가. 판·검사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아닌가"라며 '아들 바보'답게 말했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들을 아버지는 몰래 응원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까' '주변에서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며 경기장에 가지 않았다. 아들은 "다른 부모님은 배구장에 오시는데 아버지는 왜 안 오시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네가 괜히 기죽을까 봐"라고 답했다. 한성정은 "오히려 그 말씀이 너무 서운했다"고 한다. 아들은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아버지가 오시면 제가 더 힘이 나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씨는 "아들에게 '아빠가 창피하지 않냐'고 했더니 '전혀 아니에요. 내가 남의 눈치를 왜 봐요. 누가 아버지 욕하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에요'고 말하더라. 눈물이 확 쏟아졌다"고 떠올렸다. 한성정은 "내가 잘하면 주변에서 '좋은 아들을 뒀다'고 칭찬하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더라.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뛴 이유"라고 말했다.
한 씨는 "가정 환경이 어려워 큰아들인 성정이가 일찍 철이 들었다. 자식 때문에 속 끓인 적은 없다"며 "옛날에는 주머니에 돈도 없어 기죽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몸이 이래도 아들 두 명을 다 키웠다"며 "양쪽에 두고 걸으면 든든하다"며 으쓱했다.
이들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한성정이 유치원에 다닐 때 옥천 시내로 나가 임대 아파트에 거주했다. 한성정이 프로에 입단하자 임대 아파트에서 나와야만 했다. 한 씨는 "성정이가 프로 입단해 수입이 생기자 거주는 물론 영세민 조건도 취소됐다"고 말했다.
한성정은 입단 계약금 1억5000여 만원을 아버지께 드렸다. 한 씨는 "그렇게 큰돈은 처음 봤다. 현금으로 찾아 거실 바닥에 다 펼쳐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한 씨는 "빚 갚는 데 다 썼다. 오히려 모자랐다. 그동안 훈련비와 생활비로 빚이 더 많았다. 또 영세민인 우리에게 대출 보증을 써준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도 해야 했다. 어려울 때 도와준 분들께 감사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빚은 최근 모두 청산했다.
한성정은 지금도 용돈을 제외한 수입을 아버님께 드린다. 현재 아버지와 남동생이 살고 있는 한성정이 마련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 아버지가 살았던 옛 흙집 터에 2층짜리 멋진 주택을 지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나를 애지중지 보살펴 주신 할머니가 내게는 엄마 같은 분이다. 할머니가 옛집에 돌아와 살고 싶어 하셨다"며 설명했다.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한성정은 오는 6월 백년가약을 맺는다. 결혼의 최우선 고려 사항 중 하나가 아버지였다. 한성정은 "내가 '평생 아버지 뒷바라지를 해야 할 수 있다'고 하자 예비 아내도 '당연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씨는 "며느리가 마음씨가 참 착하다"고 말했다. 한성정은 "예비 장인도 교통사고로 한 팔을 잃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도 장인어른, 장모님께 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한 씨는 "옛날에 비하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무시하는 태도는 당사자가 바로 안다.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고 했다.
한성정은 "어머니도 지적 장애가 있었다. 아버지가 '너는 강한 사람보다 약한 사람을 존중하고 더 챙겨라' '길 가다가 몸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줘라' '약한 친구가 맞고 있으면 네가 맞더라도 꼭 말려라'고 하셨다. 내가 공부를 못하면 넘어가셨는데 예의 없게 행동하거나 약한 사람을 돕지 않으면 엄하게 혼내셨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 씨는 아들이 KB손해보험으로 트레이드되자, 전 소속팀 우리카드가 제작한 등신대를 갖고 집에 왔다. 자신이 갖고 오지 않으면 버려질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다. 그렇게 아끼는 아들을 경기장에서 보고 온 뒤에도 중계 재방송을 보고 또 본다. 최근 한성정은 아버지에게 75인치 대형 TV를 선물했다. 한 씨는 "아들이 은퇴하거나 내 몸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아들 경기 보러 다녀야지"라고 했다.
한성정은 "밤 운전이 너무 위험하고 피곤할 것 같아서 경기장에 힘들게 오지 말라고 만류한다. 그러면 '집에서 보면 재미없다'고 하신다"며 "아버지께서 날 뒷바라지 해주셔서 이렇게 성장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뒷바라지하겠다. 바라는 점은 딱 한 가지다. 앞으로 건강하셔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옥천=이형석 기자
1m34㎝ 성장 멈춘 지체장애 부친…"일찍 철이 든 아들, 든든하다"
한성정 "아버지 창피한 적 한 번도 없다, 이제는 내가 뒷바라지"
프로배구 KB손해보험 한성정(27·1m95㎝)은 매 경기 시작 전과 종료 후 팬에게 특별한 인사를 한다. 그 팬의 키는 1m34㎝. 둘의 신장 차는 61㎝에 이른다.
키 작은 팬은 불편한 몸으로 200㎞(옥천↔의정부체육관 편도 기준) 거리를 운전해 경기장을 찾는다. 그가 한성정을 만나는 시간은 찰나처럼 짧다. 그러나 팬이 느끼는 행복은 영원처럼 길다. 애틋한 아버지와 아들은 배구장에서 이렇게 만난다.
한성정은 배구계에 소문난 효자다. 그는 아버지 한은범(58)씨의 손을 매만지며 "날 위해 온갖 일을 다하셨다. 내가 어릴 적, 차가운 물 속에서 오랫동안 수도 관련 일하며 동상에 걸리셨다"며 "요즘에는 손도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 지문도 거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한 씨는 지체장애 3급(왜소증)이다.
한성정은 2022~23시즌 총 34경기에서 234득점을 올린 아웃사이드 히터(레프트)다. 공격은 물론 수비와 리시브 실력도 좋다. 2017~18년 전체 1순위로 우리카드에 입단, 2021년 12월 KB손해보험으로 이적했다. 지난해 생애 첫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어 KB손해보험과 총액 5억원에 계약했다.
아버지의 작은 등허리를 보며 아들은 크게 자랐다.
아버지는 걷기도 전에 다쳤다. 형이 어린 한 씨를 업고 있다가 뒤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당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평생 불편한 삶을 살아왔다. 한성정은 "최근 병원을 갔더니 아버지의 장기가 자리를 잡은 상태여서 수술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큰 아들 한성정을 품에 안기까지 걱정이 많았다. 한 씨는 "내가 어릴 때부터 약을 많이 먹었다. '혹시나 장애를 안고 태어나지 않을까' 하고 속을 많이 끓였다"고 털어놓았다. 간호사로부터 '아이가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나도 아들 낳았다"고 기뻐했다.
걱정과 달리 한성정은 유치원 때부터 또래보다 한 뼘 이상 키가 컸다. 초등학교 시절 배구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한 달 넘게 지도자들이 매일 집으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만류했다. 한 씨는 "영세민이어서 국가 보조금으로 생활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몸이 성치 않아 써주는 곳이 없었다. 트럭 운전이나 상수도 정비 등 막노동을 했지만, 수입이 변변치 않아 최저 생계비로 생활했다. 그런데 운동하는 자식을 키우려면 돈이 엄청나게 들지 않나"라고 했다.
감독과 면담 후 한 씨는 아들에게 '배구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성정은 "형편이 어려워서 학원도 다니지 못했다. 당연히 배구 입문을 반대할 줄 알았는데, 허락해 주셨다"고 돌아봤다. 한 씨는 "난 학창 시절 체육 시간만 되면 혼자 교실을 지켰다. 그런 아픔을 겪었으니 운동하고 싶다는 아들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헌신을 떠올리며, 한성정은 운동에만 집중했다. 한 씨는 "배구부 아이들이 단체로 훈련을 빠지고 도망갈 때, 성정이는 홀로 남아 운동했다. 이러면 선배들이 혼낼 텐데, 성정이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전 도망갈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선배들도 성정이의 사정을 이해하고 봐줬다"고 한다. 한성정은 "아버지가 힘들 게 돈 버시는 걸 알고 있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홍익대를 대학배구 최초 정규리그 전승 우승으로 이끈 한성정은 졸업 전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고려해 일찍 돈을 벌기 위해서다. 1순위 지명권을 얻은 우리카드는 주저 없이 전체 1순위로 한성정을 지명했다. 한 씨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당시 쟁쟁한 선수들이 많았다. 아들 이름이 가장 먼저 호명되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다들 나만 쳐다보고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는 "1순위 입단은 하늘이 돕는 거 아닌가. 판·검사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아닌가"라며 '아들 바보'답게 말했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들을 아버지는 몰래 응원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까' '주변에서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하고 염려하며 경기장에 가지 않았다. 아들은 "다른 부모님은 배구장에 오시는데 아버지는 왜 안 오시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네가 괜히 기죽을까 봐"라고 답했다. 한성정은 "오히려 그 말씀이 너무 서운했다"고 한다. 아들은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아버지가 오시면 제가 더 힘이 나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씨는 "아들에게 '아빠가 창피하지 않냐'고 했더니 '전혀 아니에요. 내가 남의 눈치를 왜 봐요. 누가 아버지 욕하면 내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에요'고 말하더라. 눈물이 확 쏟아졌다"고 떠올렸다. 한성정은 "내가 잘하면 주변에서 '좋은 아들을 뒀다'고 칭찬하니 아버지가 좋아하시더라. 내가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뛴 이유"라고 말했다.
한 씨는 "가정 환경이 어려워 큰아들인 성정이가 일찍 철이 들었다. 자식 때문에 속 끓인 적은 없다"며 "옛날에는 주머니에 돈도 없어 기죽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몸이 이래도 아들 두 명을 다 키웠다"며 "양쪽에 두고 걸으면 든든하다"며 으쓱했다.
이들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한성정이 유치원에 다닐 때 옥천 시내로 나가 임대 아파트에 거주했다. 한성정이 프로에 입단하자 임대 아파트에서 나와야만 했다. 한 씨는 "성정이가 프로 입단해 수입이 생기자 거주는 물론 영세민 조건도 취소됐다"고 말했다.
한성정은 입단 계약금 1억5000여 만원을 아버지께 드렸다. 한 씨는 "그렇게 큰돈은 처음 봤다. 현금으로 찾아 거실 바닥에 다 펼쳐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한 씨는 "빚 갚는 데 다 썼다. 오히려 모자랐다. 그동안 훈련비와 생활비로 빚이 더 많았다. 또 영세민인 우리에게 대출 보증을 써준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도 해야 했다. 어려울 때 도와준 분들께 감사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빚은 최근 모두 청산했다.
한성정은 지금도 용돈을 제외한 수입을 아버님께 드린다. 현재 아버지와 남동생이 살고 있는 한성정이 마련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 아버지가 살았던 옛 흙집 터에 2층짜리 멋진 주택을 지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나를 애지중지 보살펴 주신 할머니가 내게는 엄마 같은 분이다. 할머니가 옛집에 돌아와 살고 싶어 하셨다"며 설명했다. 할머니는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한성정은 오는 6월 백년가약을 맺는다. 결혼의 최우선 고려 사항 중 하나가 아버지였다. 한성정은 "내가 '평생 아버지 뒷바라지를 해야 할 수 있다'고 하자 예비 아내도 '당연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 씨는 "며느리가 마음씨가 참 착하다"고 말했다. 한성정은 "예비 장인도 교통사고로 한 팔을 잃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나도 장인어른, 장모님께 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한 씨는 "옛날에 비하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무시하는 태도는 당사자가 바로 안다.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고 했다.
한성정은 "어머니도 지적 장애가 있었다. 아버지가 '너는 강한 사람보다 약한 사람을 존중하고 더 챙겨라' '길 가다가 몸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도와줘라' '약한 친구가 맞고 있으면 네가 맞더라도 꼭 말려라'고 하셨다. 내가 공부를 못하면 넘어가셨는데 예의 없게 행동하거나 약한 사람을 돕지 않으면 엄하게 혼내셨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 씨는 아들이 KB손해보험으로 트레이드되자, 전 소속팀 우리카드가 제작한 등신대를 갖고 집에 왔다. 자신이 갖고 오지 않으면 버려질 것을 안타깝게 여겨서다. 그렇게 아끼는 아들을 경기장에서 보고 온 뒤에도 중계 재방송을 보고 또 본다. 최근 한성정은 아버지에게 75인치 대형 TV를 선물했다. 한 씨는 "아들이 은퇴하거나 내 몸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아들 경기 보러 다녀야지"라고 했다.
한성정은 "밤 운전이 너무 위험하고 피곤할 것 같아서 경기장에 힘들게 오지 말라고 만류한다. 그러면 '집에서 보면 재미없다'고 하신다"며 "아버지께서 날 뒷바라지 해주셔서 이렇게 성장했다. 이제는 내가 아버지를 뒷바라지하겠다. 바라는 점은 딱 한 가지다. 앞으로 건강하셔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옥천=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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