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휠체어 사고나면 보험처리 無?...보다 못해 보험사 직원이 만든 스타트업 ‘이디피랩’[신기방기 사업모델]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3. 4. 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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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직원으로 근무하던 심준원 씨.

2014년 한 초등학생이 장애인이 조작하던 전동보장구(전통휠체어)에 부딪혀 전치6주의 사고가 난 뉴스를 접했다. 가해자인 장애인은 배상능력이 없어 그대로 검찰에 송치됐다. 보험사 종사자이다 보니 ‘당연히 보험 처리가 됐을 텐데 왜 검찰 송치가 됐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좀더 자세히 사건을 들여다봤다. 알고보니 우리나라에는 해당 보험 상품이 없었다.

해외 사례를 찾아봤다. 영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이런 보험상품과 플랫폼이 잘 발달돼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전동보장구 전용상품 개발에 대한 의지를 품게 됐다. 하지만 당시 대형보험사 입장에서는 시장규모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하는 분위기였다. 회사 내에서 상품을 만들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전동보장구 전용보험 플랫폼 ‘휠체어코리아닷컴’ (이디피랩 제공)
그길로 창업한 스타트업이 이디피랩이다. 이후 지난 6여 년 간 끈질기게 보험사, 각 지자체를 설득한 끝에 전동보장구 전용보험을 만들고 플랫폼 ‘휠체어코리아닷컴’까지 출시했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 기준 전국 24개 지자체가 파트너로 등재됐고 1만 5000여 명의 장애인이 쓰는 서비스로 키워냈다. 참고로 지자체는 관내 노인, 장애인들을 위해 자체 예산으로 단체 보험가입을 시켜주고 있다. 다음은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심준원 대표와 일문일답.
보험사에서 근무하다 스타트업을 창업한 심준원 대표 (이디피랩 제공)
Q. 장애인, 노인이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 보험이 필요한 이유는?

소비자보호원 조사에 따르면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이하 전동보장구) 이용자의 35.5%가 사고를 경험했다 한다. 3명중 1명꼴이다. 전동보장구는 인도로 운행해야 하지만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있어 승차감이 좋지 않은 데다가 노점상이 있을 경우 지나는 도로의 폭이 줄어들어 행인과 충돌 위험도 높아진다. 따라서 도로변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 주정차한 차량에 피해를 입히거나 운행중인 차량과의 충돌 위험도 있다. 전동보장구를 안심하고 타고 다니기 위해서, 피해자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라도 보험이 필수적이다.

Q. 그동안 왜 없었을까?

보험사에 몸담고 있었을 때 보니까 장애인 시장에 대한 ‘편견’이 존재했다. 장애인 대상 시장이 작은 데다가 보상에 불만을 품은 장애인이 보험사를 상대로 시위를 하기라도 하면 기업 이미지 하락이 더 클 수 있다는 내부 우려도 있었다. 그래서 운행자의 78.7%(2017년 소비자보호원 조사)가 전용보험 상품에 대해 필요성을 느꼈지만 보험사들은 그동안 장애인 대상 상품개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 그러다 2018년 시범사업 후 편견이 줄어들고 최근 장애인과 어르신들의 공통 이동수단인 전동보장구 안심보험에 대해 지자체들의 지원이 잇따르자 보험사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디피랩에 따르면 전동스쿠터(월 3800원)가 전동휠체어(월 900원)에 비해 사고발생율이 4배가 높아 보험료가 차이가 난다. (이디피랩 제공)
Q. 아무래도 사회적 약자가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례가 많을 텐데 보험료 부담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우선 보험료가 부담을 느낄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전동휠체어의 경우 1년에 한번내는 보험료가 1만원(월 900원) 수준, 전동스쿠터는 4만5000원(월 3800원) 수준인데 반해 사고 당 2000만원(사고 당 자부담 20만원)까지 횟수에 제한없이 보상해 준다. 참고로 전동스쿠터가 전동휠체어에 비해 사고발생율이 4배가 높아 보험료가 차이가 난다. 또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과 어르신들을 위해 자체 예산으로 전동보장구 안심보험을 지원하는 지자체가 늘어나고 있으며, 서울시와 충청남도는 지자체의 이런 노력에 추가로 지원을 하고 있다. 올해 4월 말 기준으로는 전국 26개 지자체가 지원을 하고 있거나 하기로 확정했다.

Q. 지자체 단위로 늘어나고 있다는 건 반갑다. 다만 이런 서비스가 전국구로 퍼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까지 오는데 6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인데 벌써부터 영업현장에서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장애인과 어르신들을 위해 추가 담보를 개발해 시장에서 검증하고 확대해 나가야 하는데 단순히 ‘수익시장’으로만 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없이 가입자 확보 경쟁으로 치우치려는 경향이 있어 우려스럽다.

보험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은 어느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만큼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보다 하찮게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장애인과 노인의 영역은 그동안 등한시 해 왔기에 이제야 비로소 ‘한걸음’을 뗀 정도에 불과하므로 앞으로도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각계 각층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서비스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Q.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자선활동이 아닌 이상 수익모델은 뭔가?

지금은 초기단계라 보험 판매에 따른 수수료 수입이 전부다. 앞으로는 전동보장구를 운행하는 어르신과 함께 이들의 자녀세대인 4050세대가 회원의 절반 이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 세대간 고객연결, B2B-B2G-B2C로 연결되는 채널확대, 그리고 수익성이 확보된 사업모델을 개발중에 있다.

Q. 앞으로 어떻게 회사를 키울 생각인가?

휠체어코리아닷컴의 슬로건은 ‘간편하게 안전하게 자유롭게’다. 어르신들이나 장애인들이 누군가의 도움만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독립적 인격체로서 차별없이 혼자서도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하며, 그 근간은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이 될 것이다. 과거 보험사들이 장애인 시장을 외면해 왔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가 관심을 가져볼 만한 시장이 분명히 있다. 장애 유형에 따른 리스크가 달리 존재하므로 전용보험 상품이 필요하고, 어르신으로 대상을 확대하면 시장은 더욱 커진다. 또한 이들의 보호자인 4050세대는 노후를 걱정하며 준비를 시작하는 세대이므로 고객확장성을 토대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하나씩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소량다품종’ 보험상품 개발을 위해 ‘소액단기보험사’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가령 농아자들을 위해 화상으로 ‘수화(手話)’를 이용한 서비스 가입과 청구,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는 큰 글씨와 쉬운 표현의 보험약관 등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을 비롯한 금융 선진국의 경우 이러한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소액단기보험사가 시장 검증을 하고 나면 대형 보험사나 빅테크가 이를 인수하는 사례도 많아 유망한 시장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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