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동탄 전세사기, 시작일 뿐” 전세 폐지론까지

정진용 2023. 4. 20. 11: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피해 신고 속출…극단적 선택 피해자들도
당정 “전세사기 피해자 우선매수권 검토”…공공매입에는 선 그어
전문가 “너무 쉽게, 많이 전세대출 받는 구조 문제”
안상미 대책위 공동위원장이 18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송금종 기자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대전, 대구에 이어 부산에서도 전세 사기 피해 신고가 의심 사례가 빗발치고 있다. 전문가는 앞으로 피해 규모가 전국에서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전세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에서도 피해 신고 속출

20일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부산에서 빌라와 오피스텔 90호실 가량을 소유하고 있는 부부가 최근 전세 계약만료를 앞두고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

부산 사상구와 진구, 동구, 부산진구에 있는 4개 빌라·오피스텔 세입자 90여명은 최근 피해 대책위를 그리고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등 사기 피해가 의심된다면서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피해자는 모두 89가구, 전세금은 약 54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부부는 건물 4채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46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부부가 서류상 주소로 등록해 둔 곳에는 비닐하우스만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건과 별도로 부산진경찰서는 전세보증금 18억가량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부산진구의 한 오피스텔 건물 실소유자 A씨와 공인중개사 등 6명을 사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이들은 2020년 7월 중순부터 세입자 20여 명에게 건물 소유주가 바뀐 것을 숨긴 채 전세 계약을 지속하고, 이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들은 건물 소유자가 바뀐 걸 알았을 때 이미 경매에 넘어간 상태였다는 입장이다.

인천전세피해지원센터. 쿠키뉴스 자료사진 
인천 전세사기 피해자 극단 선택 3명째…모두 2030세대

경기 화성시 동탄에서도 전세사기 의심 피해가 줄을 잇자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전날 화성동탄경찰서에는 오피스텔 등 250여채 전세사기 의심 사건과 40여채 전세사기 의심 사건 등 총 60여건이 접수됐다. 현재 피해자 조사가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은 계약 대부분은 하나의 부동산에서 중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천에서는 전세사기 피해로 극단적 선택을 한 20~30대 청년이 3명에 이른다. 인천 미추홀경찰서는 지난 17일 오전 2시12분쯤 미추홀구 한 주상복합아파트에서 A씨(31)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A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혼자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전세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상태였다. 앞서 지난 2월14일과 28일에도 이른바 ‘건축왕’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20∼30대 피해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는 대부분 사회 초년생들이다. 최근 논란이 된 ‘빌라왕’ 전세사기는 이른바 건축주·임대인·중개인 등과 짜고 세입자에게 시세를 속여 집값보다 더 많은 전셋값을 받아 챙기는 방식이다. 부동산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2030 세대가 이들을 당해내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연합뉴스

발등 불 떨어진 정부…당정 “전세 사기 피해 임차인 우선매수권 부여 검토”

정부는 급히 전세사기 관련 대책을 내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 전세사기 방지 종합대책에 △경매로 넘어간 주택에 대한 임차인 최우선 변제액 및 변제기준 상향 △연 1~2%대 저리 대출(전세대출 대환대출 포함) △긴급거처 지원 등을 담은 대책을 내놨지만 전세사기 예방에 치우쳐 있어 이미 발생한 피해를 구제하기에 역부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정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전세사기 근절 및 피해지원 관련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결과 브리핑을 통해 “현 정부 들어 네 차례 (전세사기)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범정부 특별단속도 실시하고 있지만 피해자 구제나 주거안정 확보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에 대한 금융권의 경매·공매 유예 △전세사기 피해주택 경매 시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 부여 검토 △피해 임차인을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주장하는 전세사기 물량에 대한 정부의 공공매입에 대해서는 논의 자체가 소모적이라며 선을 그었다. 

전세제도 폐지론도 고개를 든다. 외국에서는 월세가 일반적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집값의 50~80%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내고 계약기간 동안 거주하는 방식의 전세 제도가 가장 흔한 유형의 임대차 관행으로 굳어진 국가는 한국뿐이다. 고금리 시대가 되고 집값이 폭락하면서 전세 제도가 경제 뇌관이 됐고, 무분별한 갭투기로 전세사기가 잇따르면서 전세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피해 사례, 시작에 불과…전세제도 손봐야”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 특임교수는 “정부가 지금 내놓은 대책은 이자 없이 전세대출금 줄 테니까 전세를 또 들어가라는 말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겠나”라며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여기저기서 제2의, 제3의 동탄 전세사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최 교수는 “전세대출을 너무 쉽게, 많이 받을 수 있게 규제를 풀어준 부작용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 정말 작정하고 사기 친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은 당연히 법적처벌하고 재산을 몰수해야겠지만, 대부분의 집주인은 법 테두리 안에서 전세를 계속 놓았던 사람들”이라며 “집값이 폭락하고 역전세난 생기니까 부작용이 이제 터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단기적 대책으로는 집주인이 파산해서 ‘배 째라’식으로 버티지 못하게 나중에 집값이 오르면 전세금을 돌려 주는 조건으로 이들의 파산유예를 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근본적으로는 전세 제도를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깡통전세, 부동산PF, 갭투자, 빌라왕 이 모든 문제가 다 전세제도에서 비롯됐다”며 “전세값은 올라도 문제고 떨어져도 문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전세값이 급등해 입차인이 계약갱신을 원할 경우 전세 보증금을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임대차3법을 시행하지 않았나. 이번에는 또 고금리, 미분양으로 전세값이 떨어지니까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공공분양에서 시행 중인 반값아파트(공공이 땅을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공공분양주택) 제도 등 선진형 주택공급체계를 민간분양으로도 넓혀야 한다”며 “정부는 앞으로 전세제도 연착륙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봤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