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옥 앞 시위천막…가스버너에 석유난로까지 '안전사고 무방비'
본연의 목적 아닌 장기 거주, 불법 알박기, 취사, 창고 등으로 악용
시민 불편·안전사고 초래…천막 설치에 대한 규정·제한 법령 없어
국내 대기업 사옥 인근에는 여지없이 시위 문구로 장식된 천막이 하나씩 설치돼 있다. 수 개월에서 수 년씩 철거하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며 ‘고정시설물’로 간주될 정도다.
시위자들이 장기·철야 시위의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이들 천막은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대부분 차로 인근이나 인도에 설치돼 있어 교통사고를 유발하거나 시민들의 통행에 장기간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앞 보도에서 천막 시위를 벌이고 있는 A씨는 주로출퇴근 시간에만 시위를 하면서도 불법 천막을 9개월째 철거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주는 것은 물론 인근 도로를 지나는 차량의 시야도 가려 교통사고 위험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천막이 집회·시위 본연의 목적이 아닌 장기 거주용으로 사용되며 각종 안전사고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시위자들은 지자체의 강제 철거 등을 막기 위해 시위 참가자들이 열악한 천막 안에서 24시간 노숙하거나 집회 및 시위를 하지 않는 시간에도 장시간 거주하면서 각종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천막 안에는 집회·시위와 상관없는 취사와 난방 도구는 물론, 인화물질 같은 위험물질이 반입되는 사례가 많다.
2007년부터 7년 넘게 복직투쟁을 벌였던 B기업 노동자들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해당 기업 본사 앞에서 24시간 천막농성을 벌이면서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압력밥솥과 고무파이프를 이용해 임의로 난방시설을 만들기도 했으며, 지난 2012년 한 증권사 노조는 두꺼운 비닐을 덧댄 천막 안에서 석유난로를 피우면서 겨울철 농성을 이어 갔다.
지난 2013년 C기업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 앞에 설치한 농성 천막은 방화로 화재가 나 천막 한 동이 전소되는 것은 물론 덕수궁 담장 서까래까지 그을리는 등 자칫 국가 문화재까지 소실될 위기까지 초래했다.
현대차그룹 사옥 앞 시위자인 A씨도 천막 안에 화재를 유발할 수 있는 휴대용 가스버스 등을 버젓이 설치해놓고 있다.
이처럼 인화물질로 인해 불법 천막은 화재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으며, 특히 겨울철에는 시위 참가자들이 천막 내에 난로를 피우는 경우가 많아 화재 발생 가능성도 높다.
더구나 천막의 소재가 대부분 화재에 매우 취약할 뿐만 아니라 소화기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불이 날 경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소화장치가 있다 해도 시위자가 천막을 비운 사이 화재가 발생하면 초기 진압이 불가능해 화재가 확산될 우려가 크고, 인근 시민들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다.
수년 동안 시위천막이 설치됐던 국내 대기업 사옥 인근에 거주하는 김모 씨는 “한겨울 심야에 천막 근처를 지나다 불빛이 새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종 문제가 제기됨에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상 천막 설치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나 설치를 제한하는 법령은 없는 상태다.
점용허가를 받지 않은 보도나 차도 등에 설치된 불법천막의 경우 도로법에 의해 지자체의 행정 조치 또는 민·형사소송 등을 통해 제한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자체는 불법 천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집회·시위자들과 충돌을 우려해 먼저 자진 철거 요청을 하지만, 이에 응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이후 수차례에 걸쳐계고장(강제 집행 알림)을 통지하더라도 시위자들은 대부분 버티기로 일관한다. 행정대집행에 나서면 행정기관이 집회·시위를 방해한다는 억지와 시위자들의 민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현행 집시법상 천막 관련규정이 없다 보니, 소음 등과 달리 집시법 개정 추진시 천막은 구체적으로 논의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확성기 사용(소음)’에 대해서는 집시법상 이를 제한하는 조항을 갖추고 있고, 소음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취지의 입법안이 21대 국회에만 총 9개가 발의돼 있는 반면, 시위천막을 규제하는 입법안은 전무하다.
집시법 차원에서 이를 제한하는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대기업 인근 거주자나 행인들은 계속해서 불편을 감수하고 안전사고 위험에까지 노출돼야 하는 실정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천막은 현수막이나 확성기와 달리 집회나 시위의 목적과 의도를 표현하는 데 전혀 관련이 없는 시설물인데다, 우리나라 불법 시위의 핵심 시설물이 돼가고 있다”면서 “관련 법령을 통해 시민들뿐 아니라 시위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천막 설치에 대해 구체적인 제한 규정을 마련할 시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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