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55동 670칸 건물이 자리했다는 강원감영

운민 2023. 4. 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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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별곡] 원주 4편,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원주 구도심 이야기

[운민 기자]

▲ 강원감영 후원 강원감영의 북쪽 공간에는 후원권역을 새롭게 복원해 이곳의 좋은 볼 거리로 자리매김 했다.
ⓒ 운민
 
<택리지>를 지은 이중환이 원주를 평하기를 "두메(산)가 가까워 난리가 나면 숨어 피하기 쉽고, 서울과 가까워서 세상이 평안하면 벼슬길에 나가기가 쉽다. 그래서 한양 사대부들이 이곳에 살기를 좋아한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현재도 무관치 않다.
원주는 수도권과의 교통이 편한 이점을 바탕으로 강원도에서 가장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 출발점이 바로 택지 개발을 통한 시가지 확장에 있었다. 원래 원주의 중심지는 구 원주역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동과 자유시장 쪽으로 이어지는 중앙로 주변이었다. 또한 이곳에 많은 군부대들이 있다 보니 주말만 되면 외박을 나온 군인들로 중앙로 일대가 붐비기도 했다.
 
▲ 선화당 강원감영의 중요권역인 선화당은 강원관찰사가 정무를 보는 공간이다.
ⓒ 운민
 
그러다가 90년대 후반 택지개발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 무실, 단구동의 택지개발은 원주의 상권은 180도 바뀌게 된다. 현재 강원도 유일의 백화점을 비롯해 영화관, 시외, 고속버스터미널 등이 위치해 최고의 번화가로 성장했다. 원주의 성장세는 이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2005년 전국에서 유일하게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연이어 유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전 대상 공공기관의 난색 등으로 인해 위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원주 발전의 쌍두마차로 한 획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는 조금 쇠퇴했지만 조선시대 이래 줄곧 원주의 중심지로 자리 잡은 중앙로 일대의 문화적 자산은 어느 동네도 대신할 수 없다. 그 중심에는 강원감영이 현재도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조선시대 강원도의 행정과 군사, 사법의 전 분야를 맡은 강원감영은 왕조가 개창한 이래 줄곧 원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른 도가 수차례 고장을 옮겨다니며 감영이 바뀌었기에 드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원주는 중앙에 있는 왕의 명령이 가장 신속하게 전달될 수 있는 요충지이다.

강원도에서 인구와 토지 면적이 가장 풍부한 지역임은 물론 남한강 물길이 한양과 연결되어 각 지방에서 거두는 세금을 모아 도성으로 옮기기 편리했기 때문이다. 감영에는 관찰사라 불리는 지방관이 재직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지역에 대한 행정권과 사법권, 군대 통솔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1년에서 2년 정도에 걸쳐 강원도 곳곳을 다니며 지방 수령을 감시하는 역할도 행했다.
 
▲ 옥사 강원감영에는 옥사가 복원되어있다.
ⓒ 운민
 
여름에는 영동지방인 강릉과 삼척에 다른 계절에는 춘천과 원주에 머물렀다. 하지만 17세기부터 원주에 계속 머물게 되면서 이곳 강원감영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선화당을 비롯해 수많은 건축물이 감영에 들어서게 되었고, 1891년에는 55동 670칸의 건물이 자리했다고 한다.
청백리 황희 정승이 세종 5년(1423)에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되어 선화당에 머물렀고, 선조 13년(1580)에 관찰사로 임명된 가사문학의 대가 정철은 자신의 임지인 강원도를 둘러보고 유명한 <관동별곡>을 지은 것으로 유명한 강원감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원형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복원공사가 시작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 구 조선식산은행 중앙로에는 일제강점기때 건립된 구 조선식산은행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운민
 
원주감영의 답사는 야트막한 돌담길을 돌아 정문인 포정루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만 건물의 배치가 일직선이 아니라 측면을 돌아 들어가야 하기에 구조가 좀 더 복잡하고 부지에 비해 체감하는 규모가 넓어 보인다.

중삼문을 지나면 길은 우측으로 꺾이며 감영의 메인구역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그 정문인 내삼문에서 방문자는 관찰사를 만나기 전 마지막으로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쳤다. 비로소 중심 전각인 선화당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선화당은 제법 당당하고 관찰사의 권위가 느껴지는 건물로 한때 일본군수비대, 강원도청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옛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선화당 주변에는 내아와 관리사 등 여러 건물이 더러 남아 있지만 대부분 빈 터라 쓸쓸한 정서가 가득하다.

그래도 측면에 위치한 강원감영 전시관에선 유물과 각종 그림 등을 통해 예전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고, 그 옆에는 옥사가 재현되어 있다. 조선시대 후기 천주교박해 당시 원주의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는데 이곳 옥사에서 김강이, 최해성, 최 비르지타 등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감영이 만약 이 공간으로 끝났으면 다른 관아건물들과 큰 차이가 없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을 새롭게 복원하면서 선화당 뒤편으로 후원 공간까지 재현해 놓아 감영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고 있다.

연못을 중심으로 봉래각, 영주관 등을 건립해 신선의 세계를 재현해 놓았는데 한가운데 세 개의 섬을 만들어 전각을 짓고, 모두 신선 세계의 이름을 부여해 놓았다. 이곳은 관찰사의 사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손님 접대와 연회의 장소로 사용하였다. 관찰사들은 후원에서 풍류를 즐기면서 스스로를 '봉래주인', 즉 신선 세계의 주인이라 칭했다.
 
▲ 원주중앙미로예술시장 원주는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중앙시장의 2층에 미로예술시장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마련했다.
ⓒ 운민
 
다시 중앙로로 나오면 만만치 않은 연륜을 지닌 은행건물을 살필 수 있는데 현재도 은행건물로 사용되는 이곳은 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이다. 조선식산은행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경제적 침략을 자행하던 기관으로 그 당시 수탈을 당하던 원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장소다.

이곳을 지나면 최근 TV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던 원주중앙시장과 미로시장을 만나게 된다. 중앙시장 상가건물 2층에 자리한 미로시장은 젊은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콘셉트를 지닌 가게는 물론 각종 포토존을 설치해 놓아 이목을 끌고 있었다. 현재 구시가는 예전만큼 번성하진 않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다시금 활성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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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경기별곡 시리즈 마지막 3권인 <여기새롭게경기도>가 출판되었습니다. 강연, 기고 문의 ugz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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