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의 배신]②전국 곳곳 시한폭탄…“전세제도 손봐야”
전국 곳곳에서 무자본·갭투자 방식의 전세사기 사건이 시한폭탄처럼 터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기준금리 급등과 주택가격 하락의 영향이다. 업계선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면서도, 한편으론 차제에 사(私)금융의 성격이 짙은 전세제도 자체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 일대에서 주택 1100여채를 사들여 전세 사기를 벌이다 사망한 김모씨(42·일명 빌라왕), 인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주택 2700여채를 보유한 남모씨(61·일명 건축왕) 사건 이후로도 전국 각지에서 임차보증금을 둘러싼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최근엔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오피스텔 250여채를 소유한 임대인 박모씨가 파산하면서 임차인들이 임차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같은 지역에서 40여채 오피스텔을 보유한 지모씨도 파산 신청을 하면서 임차인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외에도 경기, 부산, 경북, 포항 등지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상태다.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런 사건은 기본적으론 ‘역전세’와 유사하다. 기준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주택시장 침체로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임차보증금을 되돌려 주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특히 전세사기 사건은 특정 임대인들이 무자본·갭투자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주택 수를 불려놓은 만큼 파급효과가 더 크다.
문제는 이런 사고가 앞으로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단 점이다. 관련 업계에선 빌라 공급이 많고 전세가율이 높은 서울 서부, 경기 남부, 인천 지역에서 이런 전세 사기 등 임차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강서·강동·송파·도봉·은평구의 빌라 전세가율은 79~86%, 인천 미추홀·서·남동·부평구는 81~92%에 달했다. 특히 건축왕 사건이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전세가율이 92%에 육박했고, 빌라왕 사건이 빚어진 강서구는 신축주택의 전세가율이 100%에 달하는 경우도 여럿 존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주택 입주물량이 쏟아질 예정인 지역은 이에 따른 전세가 하락과 역전세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단 우려가 크다. 일례로 경기 화성시와 인천 서구의 경우 2023~2024년간 2만2000여가구, 용인시의 경우 1만7000여 가구, 인천 미추홀구는 1만3000여가구의 입주 물량이 발생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사금융’의 영역인 전세제도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토연구원은 지난 2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보증금 예치제도’ 도입을 제시한 바 있다. 임차보증금을 일정 수준 이상을 예치토록 하고, 예치하지 않은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보증금 반환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도록 해 보증금 미반환 위험에 대응토록 하자는 것이다.
금융권 차원에서는 '비소구 주택담보대출' 활성화와 '책임분담형 대출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은 채무자에 부도가 발생할 경우 채무자의 상환책임을 해당 담보물로 한정토록 해 채무자에게는 담보물 외 추가 상환 의무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대출하는 금융회사도 대출시 신용도 평가 등을 제대로 해야 하고, 잘못 대출을 했다면 담보물이 넘는 채무에 대해서는 손실을 분담해야 하는 것이다. '책임분담형 대출제도'는 주택가격지수와 대출제도를 연계해 주택가격이 상승 또는 하락하면 이에 따라 차주와 금융회사가 이익 또는 손실을 나누는 것이다.
강민석 KB금융경영연구소 부동산팀장은 "전세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한편, 전세가율이 과도한 주택에 대해선 대출을 제한해 부실 발생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면서 "이 경우 대출이 나오지 않는 임차인은 전세 대신 월세로 돌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런 사고를 막는데 유효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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