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따려고 시작한 누드모델, 10년 동안 배운 것

정규리 2023. 4. 2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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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수록 '그런 여자'는 없고 '그렇게 보는 시선'만이 있더라

10년차 누드모델 정규리의 시선. 사진으로 찍히고 그림으로 그려지고 이미지로 소비되는 '대상'의 관점으로 누드모델 일을 다룹니다. <기자말>

[정규리 기자]

"그런 여자는 없다."*

내가 누드모델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한 참여관찰 및 인터뷰 대상 물색을 위해서였다. 학문으로서의 여성학에는 다양한 세부 주제가 있는데, 여성 노동, 정책, 철학, 젠더 폭력, 역사, 인식론 및 방법론 등이 있다(물론 이보다 훨씬 다양하다).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으로서,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러움, 여성다움, 여성노릇 등 '여성성'이라는 규정 자체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인간 종의 성적 이형(sexual dimorphism, 같은 종의 암컷과 수컷이 크기, 모양, 색상 등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공작 수컷의 깃털, 숫사자의 갈기 등이 대표적)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성을 둘러싼 모든 것을 남과 여, 둘로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믿음은 분명히 인류가 만들어 낸 상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내가 성적/낭만적으로 끌리는 여성들이 가진 어떤 성질들-겁이 없고, 적극적이고, 활동적이고, 운동을 잘 하고, 운전을 잘 하고, 목소리가 크고, 리더십이 있고 등등-은 '남성성'이라고 통째로 묶일 이유가 전혀 없다.

성기의 종류에 따라 한 사람의 행동과 사고, 노동과 사랑과 돌봄과 삶이 둘 중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예를 들면 여자는 '원래' 출산과 양육을 하기 위한 존재이기 때문에 고등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믿음-에 반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면, 나는 너무나도 당연히 페미니스트다.

'데모 복장'이 된 '클럽 복장' 
 
 2011년 10월에 뉴욕에서 열린 SlutWalk NYC의 사진
ⓒ David Shankbone, flickr
2011년에는 캐나다 토론토를 시작으로 '슬럿워크(Slut Walk)'라는 캠페인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캐나다의 한 경찰이 '여성이 강간당하지 않으려면 매춘부(Slut)와 같은 옷을 입지 않아야 한다'고 발언한 데에서 촉발된 페미니즘 운동이다. 
범죄의 피해자에게 오히려 '네가 원인을 제공했다'라고 비난하는 피해자 책임론(Victim-blaming)에 분노하며, 나는 슬럿워크의 스태프로 활동했다. 짧은 원피스, 짙은 화장과 하이힐 등 '클럽 복장'은 그대로 데모 복장이 되었다.
 
 2011년 잡년행진 홍보포스터
ⓒ 슬럿워크코리아
그해 7월 '잡년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시청 앞 대한문에서 진행되었던 퍼포먼스에는 엄청난 취재 인파가 몰려와 자연스럽게 포토라인이 조성될 정도였다. 시위의 동기와 메시지를 전하는 언론은 적었고, 대부분의 취재진은 시위 참여자의 '매춘부 복장'을 로우앵글로 찍기 바빴다. 

'그렇게 보는' 사진이 사용된 기사의 댓글들은 예상대로였다. 저런 옷을 입으니 강간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 드센 여자는 줘도 안 먹는다는 말, 뭐 대단히 야하지도 않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었다.

슬럿워크의 시위 방식이 촌스럽다거나 충분히(즉, 효과적으로) 야하지 않다는 비판, 혹은 여성 신체를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슬럿워크의 핵심 메시지, 즉, 성폭력의 원인은 여성이 아닌 가해자에게 있다는 메시지는 슬럿워크를 옹호하는 사람과 비판하는 사람 모두에게 아주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전제가 되어 논의조차 생략되었다는 것이 바로 성과라고 생각한다. 

퍼포먼스 사진에 달린 성희롱 댓글들은 그 자체로 2011년 한국사회에 슬럿워크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같은 몸, 같은 복장이어도 이성애적 남성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는 '저항하는 몸'은 불쾌하거나 유해한 것으로 해석된다. 동일한 복장이었지만, 홍대 밤거리의 클럽에서는 구애의 대상이 되고, 대낮 도심의 페미니즘 시위에 나갔을 때는 '줘도 안 먹는다'는 모욕의 대상이 되는 차이가 재미있었다.

한편, 슬럿워크는 여성의 신체, 특히 가슴이나 엉덩이, 다리와 같은 소위 '성적 부위'를 부각하며 시위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도구로 삼는다며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비판은 레즈비언인 나를 굉장히 심란하고 머리 복잡하게 만들었다.

인간을 성적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 스스로를 성적인 존재로 전시하는 것은 페미니스트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일까? 성적 매력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은 반-페미니즘적인 것일까? 페미니스트인 동시에 다른 여성의 몸을 욕망하고, 또 여성 앞에서 나를 기꺼이 성적 대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나의 욕구는 비판받아야 하는가?

이처럼 슬럿워크에 참여했던 경험은 내가 무엇을 더 배우고 싶어하는지, 무엇을 더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Kenneth Clark의 <누드의 미술사> 책 표지
ⓒ 열화당출판사
참여관찰 연구를 하다가 모델이 되었다

<누드의 미술사: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연구>라는 책에서 누드를 주제로 서양미술사를 연구한 케네스 클라크에 따르면, 누드란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창안한 예술 형식으로, 단순히 옷을 벗은 상태인 알몸(naked)과는 구별된다.

최초의 여성 누드상은 기원전 350년 경의 프락시텔레스가 제작한 <크니도스의 비너스> 여신상이다. 이 작품의 모델인 프리네는 고급 매춘부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인체가 사용된 예술작품은 신이나 영웅, 전사의 위대함과 용맹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고, 주로 남성의 나체가 사용되었다. 여성의 신체는 열등한 것이라고 여겨졌기에, 여성의 나체는 타락, 죄악, 징벌 등을 표현할 때 동원되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 보티첼리
여성의 신체가 아름다움, 이상적 여인, 여신 등으로 본격적으로 표현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 이후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등이 여성의 나체로 미의 이상을 표현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술 작품의 제작을 위한 것이라도 누드모델은 비천한 직업이었고, 누드모델로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매춘부 외에는 없었다고 한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쓰게 되었을 때, 나는 문헌 연구나 통계 등의 양적 연구보다는 참여관찰과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질적 연구를 하고 싶었고, 누드모델은 꽤 괜찮은 소재 같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된 작품의 5%만이 여성 작가에 의한 것인 반면 누드화의 85%는 여성을 소재로 했다는 게릴라 걸스의 주장은, "화가와 모델이라는 상징적 지정석은 특정한 성별에 의해 '나뉘어' 점유되어왔다"는 김애령(2006)의 문장으로 잘 정리된다. 남성은 보는 사람, 여성은 보여지는 사람이라는 전제에 도전하고 싶었고, 실제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경험이 궁금했다.

검색 사이트에서 '누드모델'을 검색하자, 가장 먼저 뜬 화면은 성인 인증을 하라는 것이었다. 누드모델 체험을 해봤다는 남성의 블로그 글이나 누드모델과 성관계를 맺는 내용의 야한 소설 등 쓸모 없는 페이지들을 건너, 곧 모델협회를 찾아냈다.

일정 기간 동안 '훈련'를 받고 일을 시작했다. 내가 느끼기에 누드모델 일은 시작하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지속하기가 어렵다). 먼저 미술 동호인의 화실,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 일을 나갔고, 익숙해지자 대학교 수업도 받게 되었다.

서울 뿐 아니라 청주, 대구, 제주도에서 나를 찾는 곳이 생겨 전국을 돌아다녔다. 동료 모델들과 친분을 쌓았고, 다양한 모델들이 다양한 필요와 욕구로 일을 지속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델 일의 의미는 사람마다 달랐다. 예술이어서 하는 사람도 있었고, 예술이 아니어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돈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었고, 돈이 되지 않는 선에서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학생 정체성은 점점 옅어지고, 모델 정체성이 짙어졌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다양한 작업에 참여했고, 몇몇 인터뷰에도 응했으며, 근사한 포트폴리오도 마련했다. 결국 학위 논문은 마치지 못했지만, 평생의 직업을 찾았다.

'그런 여자'에 대해 쓰려고 시작한 일을 통해, 사실 '그런 여자'는 어디에도 없고 다만 '그렇게 보는 시선'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슬럿워크를 취재했던 기자들과, 10년 전 누드모델을 바라보았던 나의 시선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누드모델 일은 나에게 또다른 여성학 수업이었다.

* '그런 여자는 없다'는 '게릴라 걸스'의 책 제목이다. 게릴라 걸스는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익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모임이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를 패러디하여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나"라고 적힌 포스터로 유명하다.
 
 게릴라 걸스의 포스터
ⓒ 게릴라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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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블로그(www.chilworl.kr)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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