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개성공단에 中 끼면 일 커진다" 정부 초강력 경고 배경
정부가 최근 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사용을 문제로 삼으며 강력한 ‘경고장’을 잇따라 보내는 배경은 향후 중국 자본의 개성공단 진입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여권의 고위 인사가 19일 밝혔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중국 인력이나 시설이 개성공단에 유입될 경우, 이는 단순히 한국측 자산에 대한 관리 등 남북간의 문제를 넘어 심각한 정치ㆍ외교ㆍ군사적 사안으로 비화할 소지가 있다.
여권 고위 인사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에 중국을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운영하려 한다는 정황이 파악돼 분명한 경고와 강력한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만약 북한과 중국 당국이 정책적으로 개성공단 운영 움직임을 보일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간 다양한 정보자산을 통해 북한이 중국을 향해 사실상의 개성공단 투자 유치 사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파악했다.
이미 개성공단 내 30여개 공장이 가동된다는 사실은 물론, 무역회사로 가장한 ‘송도무역총회사’ 등을 통해 북한 당국이 사실상 직접 개성공단을 중국에 홍보하는 정황과 접경지에서 개성공단 시설을 활용한 ‘위탁 임가공’ 브로커들이 활동하는 내역도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내용은 대통령실에도 보고돼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논의됐다고 한다.
정부는 대책 논의 직후인 지난 6일 통일부를 통해 ‘개성공단 자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대북통지문을 보내려고 했지만, 북한은 통지문 접수를 거부했다. 그리고는 바로 다음 날인 7일 남북통신연락선ㆍ군 통신선을 통한 교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북한의 무책임한 태도가 이어지자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장관 명의의 성명을 내고 “북한의 위법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법적 조치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며 국제사회와도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통일부 장관 명의의 성명이 나온 것은 10년 만이다. 개성공단 관련 문제를 국제사회와 공조해 풀겠다는 것으로, 그만큼 이번 사안을 중대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의 이 같은 초강경 대응은 해당 사안이 초래할 수 있는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익명을 원한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만약 개성에 중국이 관여하게 되면 향후 개성공단 문제는 남북이 아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란 G2가 직접 관여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 될 수 있다”며 “군사적 측면에서도 만약 휴전선 인근인 개성에 중국 자본이 들어갈 경우 이는 일종의 ‘인계철선’의 역할까지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중국 자본이 직접 들어갈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2017년 9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안 2375호에는 “북한과의 모든 합작ㆍ합영사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를 무시할 경우, 이는 안보리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당시 안보리가 제재결의안 2375호를 의결했던 과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해당 제재안이 나오기 전 북한은 실제로 개성공단을 사실상 중국에 팔아넘기려고 시도하다 ‘꼬리’를 밟혔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10일 당시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선언하자, 북한은 바로 다음 날 남측 자산을 동결하고 한 달 뒤 개성공단 자산의 청산을 선언했다. 일방적인 자산 몰수 선언 이후 북한은 홍콩과 중국 자본을 상대로 본격적으로 개성공단 유치전을 벌였다. 제재결의안은 이러한 정황이 파악된 이후에 의결됐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과거 북한의 중국 자본 유치전에 김양건 당시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정권의 고위층이 직접 개입했던 정황이 확인되기도 했다”며 “개성공단 관련 건에 대해서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북한과 중국이 당국 차원에서 언제든 정책적으로 관여해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공교롭게 북한은 지난달 27일 코로나 국경 봉쇄 이후 처음으로 주북한 중국대사의 입국을 허용했다. 또 지난 18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친서엔 “북ㆍ중간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의 고위 인사는 “설마 북한과 중국이 국제사회의 제재 등의 부담을 안고 개성과 관련해 그렇게까지 무모한 결정을 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안전성을 미리 확보해 둬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북한의 개성공단 불법 활용과 관련한 법적조치를 취할 뜻까지 밝힌 상태다. 다만 유엔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나 국내 사법 기관의 판단을 구하더라도 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을 경우 사실상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정대진 원주한라대 교수는 “정부의 강경한 대응은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일종의 ‘내용 증명’ 보내며 법적 근거와 명분을 쌓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물론 실효성은 떨어지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북한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측면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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