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개성공단 몰래 돌리는 北...中자본 유치 정황 딱 걸렸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중국 기업의 투자나 일감을 유치하기 위해 북·중 접경지역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업가들에게 공단 내 설비와 시제품 등의 사진을 보낸 정황이 파악됐다. 정보 당국은 향후 북한이 사실상의 개성공단 투자 유치전에 나설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19일 관련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은 "북한이 중국을 상대로 개성공단 내 기계금속·전자 공장의 가동을 위한 투자 유치를 시도하고 있다"며 "북한에서 공단 내 설비와 시제품을 촬영한 사진 30여장을 주요 중국 측 관계자에게 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중앙일보가 다수의 대북 소식통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관련 문건에는 북한과 중국 측 관계자가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과 북·중 양국의 국기가 책상 위에 나란히 놓여있는 중국 기업의 사무실, 단둥(丹東)에서 신의주를 거쳐 개성까지 물자를 싣고 이동할 수 있는 화물차량의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개성공단 내 설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등장한다. 해당 설비를 통해 생산할 수 있는 제품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북 소식통들은 "북한에서 보내온 사진 등을 통해 기존에 만들어 놨던 제품은 북한 당국이 이미 암암리에 모두 유통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다만 아직 개성공단 내 설비는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시설물이 그나마 보존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선 "평양에서 개성까지 이동하는 동안 7곳의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고 개성 인근에서만 3번의 통행 확인 도장을 받는 구조라 설비의 밀반출이나 이전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북한은 의류나 봉제 등 단순 노동력이 투입되는 분야가 아닌 기초적인 전자 제품 등 소위 '돈 되는' 품목에 대한 생산 능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 대북투자·유통·임가공 등의 사업을 하는 A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보내온 사진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G사의 등속 조인트, C사의 액정 및 회로기판, J사의 휴대폰 부품, S사의 페트병·휴대폰케이스 등의 시제품의 모습이 담겨있었다"며 "중국 측 접경 지역에선 개성에서 관련 물건을 싸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브로커들도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에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된 직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중 접경에서 활동하는 또 다른 인사는 본지에 "개성공단 폐쇄 직후 북한 당국이 적극적인 자본 유치전을 벌이다가 그동안 코로나 봉쇄 등으로 주춤했다"며 "최근 국경 봉쇄를 해제하려는 시기를 앞두고 과거와 같은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중앙일보는 2017년 2월 24일 북한 당국이 북·중 접경지역인 단둥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기업을 만나 개성공단에 대한 투자를 유지하려 한 정황을 포착했고 다수의 중국 기업이 개성공단을 수차례 방문한 것은 물론 시제품까지 생산했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최근 북한이 개성공단을 불법 가동하고 있는 정황이 확인되기는 했지만, 개성에 중국 자본을 재차 유치하는 듯한 정황이 재차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익명을 원한 국책기관 관계자는 유엔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에 대한 중국 자본의 유입 가능성과 관련 "북한이 중국 기업에 개성공단 관련 투자를 받는 방법은 임가공 물량을 유치하거나 공단 내 시설을 직접 임대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며 "개성공단 시설을 외부에 직접 임대하는 것은 제재 상황에서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지만, 임가공의 경우 상대적으로 절차가 복잡하지 않은 방식으로 우회로를 찾아낼 여지가 아예 없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류는 사실상 북한 김정은 정권의 비호 또는 정책적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대북 소식통은 "중국 기업들은 현재 대부분 '송도무역총회사'나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해외동포 관련 조직을 통해 개성공단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 기업들이 개성공단 제품의 품질이 우수하고 단가가 저렴해 상대적으로 높은 물류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 기업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개성공단의 전기는 개성시 인근에서 공급을 받고 있고 자체적으로 발전기도 갖추고 있어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려움이라면 통신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재 평양에선 중국의 위챗은 물론 한국 카카오톡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성에선 무선통신망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중국과 교신을 하기 위해선 개성 시내에 있는 숙소(호텔) 등 제한된 곳에서 이메일로 작업 지시서 등을 주고받는 상황이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해 북한이 개성공단 설비를 가동하기 위한 신규 투자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다만 북한 당국의 투자유치 정황이 사실이라면 국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재산권을 주장하는 동시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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