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제3지대

태원준 2023. 4. 20.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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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룡 감독의 1968년 영화 '제3지대'는 조총련과 민단의 암투에 휘말린 재일교포 가족의 수난을 그렸다.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좌우의 이념적 틀을 벗어던지는 새로운 노선을 주창한 저서에 '제3의 길'이란 제목을 붙였듯이, 제3지대 정치는 중도와 실용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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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논설위원


최무룡 감독의 1968년 영화 ‘제3지대’는 조총련과 민단의 암투에 휘말린 재일교포 가족의 수난을 그렸다. 제목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곳, 그러면서 양측에 동조하는 세력이 병존하는 일본을 가리켰다. 자유주의자와 공산주의자가 뒤섞인 재일 한인사회는 양분된 한반도에선 존재할 수 없는 지대란 의미였다. 일본이란 물리적 공간을 뜻했던 이 말은 훗날 좌우로 갈린 한국 정치판에서 좌도 우도 아닌 세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차용됐다.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좌우의 이념적 틀을 벗어던지는 새로운 노선을 주창한 저서에 ‘제3의 길’이란 제목을 붙였듯이, 제3지대 정치는 중도와 실용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파 정책을 받아들여 노동당 정권을 창출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자신을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며 집권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은 제3지대 성공 사례가 종종 나오는데, 한국에선 그러지 못했다. 국내 첫 제3지대 정당격일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은 1992년 총선에서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지만 그의 대선 패배와 함께 흐지부지 소멸됐고, 박찬종의 신정치개혁당, 이인제의 국민신당, 문국현의 창조한국당 등도 당의 간판 인물과 짧은 운명을 같이했다. 제3지대의 상징적 정치인이 된 안철수는 당을 만들고 접기를 여러 번 반복했고, 2017년 대선의 제3지대 후보였던 반기문은 중도 포기했다.

지난 대선의 제3지대 후보(김동연 안철수)는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흡수됐다. 극명한 양극화 대선 이후 한국의 양당 정치는 더욱 극심한 대결의 장이 돼버렸다. 정치에 혐오를 느끼는 무당층이 급증하자 금태섭 김종인 등이 다시 제3지대론을 꺼내 들었다. 내년 총선에서 30석 이상을 목표로 신당을 만들 거라고 한다. 마침 거대 양당에 유리한 소선거구제를 뜯어고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 정치사를 보면 성공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데, 여야가 경쟁하듯 뻘짓만 해대는 지금의 정치판을 보노라면 꼭 그렇지만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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